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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Dec 29. 2021

그놈의 불편한 구석

낡은 것들이 점점 많아질 때 삶은 얼마든지 분석이 가능하다. 


-시 '소립자2' 中, 허연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





불편함. 그게 자꾸 눈에 띈다. 


내가 느끼는 불편한 구석이 도드라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직우 차선에서 뒤차의 우회전 깜빡이에 신경 쓰는 그런, 

주차를 하고도 옆 차와의 간격이 너무 붙었나 싶어서 다시 한번 움직이는 그런, 

일을 마쳤는데도 뭔가 빠뜨린 거 같아서 같이 일하는 사람한테 몇 번 확인하는 그런,


뒤차가 나에게 항의를 하거나, 주차한 차문에 콕 들어간 자국이 있거나,

일이 잘못돼서 난감한 경우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불안한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든다. 


"왜 그럴까" 이전에 "어떻게 할까"를 고민해서

"일이 일어나면 반응하자"라고 나름의 원칙도 세워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놈의 불편한 구석은 계속 불거져 나온다. 순간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 이사 온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쾌적하고 별다른 거슬림이 없음에도 집안을 서성거릴 때가 많다. 

구석구석에 눈길을 주면서 뭐가 어긋나지 않았나 혼자 감시하면서. 


처음에는 이사에서 온 디프레션인 줄 알았다. 

오래 살던 풍경을 한순간에 바꿨으니 낯설어서, 

그 낯섦을 일상으로 바꾸는 시간을 혼자 감당해야 해서 생기는 일시적인 슬럼프 같은.


그런데 어쩌면 이것도 불편함에서 오는 행동이겠다 싶다. 

새로 정리해 놓은 이 풍경이 왠지 임시적인 것 같아서, 

누군가 불쑥 들어와 갑자기 이 평온을 어그러뜨릴 것 같아서, 스스로 불안해한다. 



이런 불편함은 아마 나의 점유권이 약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 공간이 내 꺼라는 생각이 아직 들지 않고, 

그럼으로 인해서 내가 점유하는 것 자체가 당연하지 않다는 식의 마음가짐. 

그래서, 이 집 어느 구석이 지금의 모습과 달라진다 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방관 혹은 체념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이건 집에 대한 애착과는 별개로,  

집에 대한 나의 주장이 아직 약한 단계여서일 수도 있다. 


내 물건으로 여기저기 내 취향을 묻혔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이 집 본연의 모습을 신경 쓰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는 멈칫하고 양보하게 된다. 

예를 들면, 하이그로시로 번쩍이는 부엌과, 

새로 도배를 한 벽지는 내 영역이라기보다는 이 집의 영역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전에 살던 낡은 집에서는 부엌이건 벽이건 

생각나는 대로 아무거나 붙여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왠지 이 집에선 그럴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집에서 100% 편하게 쉬지 못하고 자꾸 두리번대는 게 아닐까 싶다. 



당연히, 애써 도배한 벽지를 일부러 망가뜨리거나, 잘 관리된 부엌장을 억지로 막 쓸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 부분들이 내 영역이라는 생각은 들어야 할 듯하다. 

집이라는 게 내가 아무리 조심해서 쓴다고 해도 생활의 흔적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사람을 없을뿐더러, 

혹여나 내가 무리한 일을 하다가 평범한 수준 이상의 훼손이 있으면 수리하면 끝날 일이다. 

그 정도의 책임감은, 이 정도의 공간을 점유하면서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건 앞서 말한, 운전할 때 뒤차를 신경 쓰는 거나, 

회사일을 하면서 불안함을 드러내는 걸 바꾸는 데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운전이나 일을 할 때 그게 온전히 내 영역이 아니어서

외부 요인이 나에게 쉽게 타격을 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대신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어차피 책임질 건 나 자신이고, 

어떤 일이건 대충 수습할 정도의 경험과 여유는 '내재화'했다는 일종의 확신 같은 게 필요하지 싶다. 



집들이를 거부하는 중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이유를 대고 있지만, 이유는 한 가지다. 

아직 나도 이 집이 어색해서. 


하루가 지나고, 구석구석이 눈에 익으면 나아질 것이다. 

늘어놓은 내 물건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 이 집을 온전히 점유한다는 기분은 점점 들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 지금 느끼는 불편함을 '딱 그만큼의 불편함' 정도로만 대하면 되지 싶다. 

그러다 보면, 이 집도 나와 같이 세월을 따라가며 누가 와도 어색하지 않은 나만의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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