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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 Apr 26. 2024

잘 지내?

바람이 건네오는 위로의 말들

잘 지내지?

생각이 나서 연락했어.


잘 지내고 계신가요?

계절이 바뀌어서 연락드려봤어요


그림 하고 싶다고 했었지?

시작했어?


계획에 없던 퇴사를 감행한 지 딱 1년이 흘렀고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일단 숨어들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설명하기 싫었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 아닌 아쉬움이 나를 짓눌렀다. 마치 그것은 내가 하지 말았어야 할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고, 그에 대한 책임이 오로지 나에게만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작은 존재였던 나는 행여 퇴사 이후의 나의 행적이 남은 이들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워, 내가 먼저 소식을 전하지 않고 가만히 가라앉고 있었다.

평일과 휴일의 경계가 사라지고 날짜감각마저 무뎌지는 시간들이 하루하루 쌓여가고 직장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었다.

간간히 물어오는 안부들은 꽁꽁 얼어붙은 나를 녹여내기 시작했다. 최대한으로 솔직하면서도 지금의 나의 상태를 두루뭉술하게 전하며 얼굴 한번 보자는 인사로 마무리되었다.


미안했다.

적어도 조금은 더 가깝고 친근하여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공유하며 보낸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다. 그들에게조차 설명하지 못했고 알려주지 못했으며 어찌 그리 하루아침에 나는 조직을 떠날 수 있었을까.


어느 날엔가 그들의 문자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자세히 되새김질하며 지금 내게 필요한 영혼의 영양제를 심장 한가운데 꽂아두었다.


"그대의 즐거움은 이 조직에 있지는 않았을 뿐,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순간들이길"


"너무너무 고생 많았어"


"언젠가 같은 부서에서 일하길 기대했는데 많이 아쉬워"


"끝맺음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마음이 가는 대로 감정을 쏟아냈으면 좋겠다.

비워내야 새로 채울 수 있지 않을까."


" 일단은 뭘 하기보다는 심심해질 때까지 그냥 있어보기가 필요할 거 같아"


"종종 생각나고 언제나 응원합니다."


"좋은 풍경 많이 보고 좋은 음악 많이 들으며 나를 채워가는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기세요"


"혹시 지금은 좀 여전히 불확실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훗날 돌아보면 그래도 그때 그러길 잘했다 생각하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네 마음의 조금의 환기가 생기면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의미 없고 재미있는 수다도 떨고 만나서 웃자.  친구야. "


한 편의 시와 같은 어여쁜 말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분주히 움직여 아이를 학교 앞에 태워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도

장을 보며 과일을 집어드는 순간에도

무심히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보다가도

말풍선이 둥둥 떠다녔다.

답이 정해지지 않은 결정을 내렸음에도 아직까지 오답을 낸 것 같아 찝찝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 나에게 친구가 전했다.


"말끔하지 않은 상태라도 너 자신으로 당당하게 지내고 있어.

그러다가 얼굴도 보여주면 더없이 좋고."


나는 그들의 말을 비타민 먹듯 아침마다 생각하려 했고, 요가를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도 운동은 꼭 하라는 선배의 말이 떠올라 6개월 더 연장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으니 이쯤이면 과거는 정리하고 미래를 계획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조금은 해방될 수 있었다.


넘어져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울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글쓰기 수업을 다닐까 하는 고민에 빠져있을 때 동갑내기 동료의 연락을 받았다.

경제학 책과 독서노트를 내밀며 나를 응원해 준다는 말이 참으로 신기했다. 오른손에 연필을 쥐었지만 경제적 자유를 고민하던 내게 귀인처럼 다가왔다.


멈춰있는 시간을 지나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어 글쓰기에 다가갔고 퇴사 1주년이 되는 날에 누군가가 읽어봐 주길 바라는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오른다. 겁도 없이 연재를 선택한 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으나 이마저도 포기한다면 후회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보기로 한다.


그리고, 뒤늦게 엄마에게 글쓰기 얘기를 꺼냈다.

생활문예 공모전에 글을 냈다고 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슬며시 물어본다.

그때 그거 어떻게 되었냐고.

담담한 목소리에 기대감이 차 있었지만 합격소식 따위는 사치였다.

작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임을 느끼면서도 변명은 하지 않았다.

사실 탈락의 아픔은 나도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웠기에.


며칠이 지나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했더니 엄청 들떠서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고...

'책을 내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이게 말이지... '

'아, 엄마한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지?'

글을 썼으면 보내보라는 말에 이거 볼 수 있겠냐고 걱정을 했다. 나도 복지관에서 요새 다 배워서 할 줄 안다며 자신 있게 보내라고 한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엄마가 글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앱을 어떻게...'

엄마가 생각하는 작가가 되려면 종이책이 나와야 할 텐데... 이를 어찌하나.

다음에 만나면 글을 보여줘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아직 글은 보지 못했지만 내가 일주일마다 새 글을 써야 한다고 투정 아닌 작가흉내를 냈더니, 예상치 못한 말들을 쏟아낸다.

"그거 스트레스 받는 거면 하지 마라.

일도 그만두고 나왔는데 뭐 하러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그걸 한단 말이고...

네가 힘 안들고도 술술 써지는데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천재적인 재능이면 좋겠지만, 혼자 애를 쓰는데 다른 사람들이랑 비슷한 얘기 하는 거면

그거 뭐 하러 힘들여서 하노, 그런 거 하지마라이"


정곡이 찔려서 아프고

걱정이 와닿아 눈물 나고

재능 없다 생각하니 발끈하고

나를 미치게 하는 엄마표 화법이다.


부산에 가면 그래도 나의 글을 보여줄 것이다.

과거의 혼란과 미래의 불안까지 끌어안아

현재를 흔들어대지만,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가려 한다. 내가 나를 다듬어 가다가 그들에게도 내가 필요한 때가 오

"오늘의 안부"를 묻고 싶다.

그렇게 또 연결되고 싶다.


당신, 잘 지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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