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 은행나무
<종의 기원>은 <7년의 밤>, <28>을 통해 한국 소설계에 충격파를 던져준 정유정 작가의 신작이다. 이전의 두 작품을 구입하기는 했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최신작을 먼저 읽는다는 것이 그리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신작도 진작부터 인터넷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 한터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이렇게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작가와의 인연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소설의 프롤로그를 보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소설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독자의 주위를 환기시키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장편 소설이라고 할라치면 그런 가능성은 더욱 확대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시작 부분에서부터 몰입의 시선을 거둘 수 없는 것은 소설이 주는 영상미가 이미지로 각인되는 효과 때문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림들은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특히 초반부의 세례식 장면은 천주교 성당에서 익히 보아오던 것들이라 더욱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런 성스러운 장면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초입과는 달리 전개부에서는 피가 낭자한 호러물을 연상케 하는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연출된다. 마치 지옥의 한복판에서 생경한 장면들에 노출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할 만큼 그 공포는 뼛속으로 사무칠 만큼 예리하게 다가온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다.
<종의 기원>에서 보이는 것은 어떤 시간적인 흐름에 의한 사건 전개나 범인을 추적하는 것처럼 첩보물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의식의 흐름을 기술한 것처럼 한 가지 사건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가 이어지게 만드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이런 기법을 택했던 것은 우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장편 소설이라는 장르에는 걸맞지 않게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지 않는 것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내면의 심리를 묘사한 것은 주로 단편 소설에서 쓰이는 기법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언뜻 단편 소설을 읽는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던 것은 아마도 소설의 흐름이 심리 묘사나 의식의 흐름을 추적하는 방향으로 전개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설을 읽으면서도 항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이미 벌어진 사건을 토대로 그것을 액자 소설이라는 구조 속에 욱여넣다 보니 현재 상태에서 주인공이 처한 위치가 어느 지점인지 늘 인식해야 했다. 그러니 그걸 토대로 사건의 진행 사항과 흐름에 동조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이런 고난도의 기법이 소설적인 재미를 불러일으키는데 일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이 줄거리만 따라가다 보면 결말이 보이는 드라마의 극본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소설을 읽어보면 이야기의 탄탄한 구조 속에서 작가의 섬세한 필치가 어우러지는 작가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간결한 문체를 지향하면서도 촘촘히 얽어낸 구조는 단단하고 완숙된 소설의 경지를 한결 드높여주는데 일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