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혁 감독(2017) / 대한민국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 영화의 제목을 보면 지금의 우리 상황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위로는 중국과 북한, 아래로는 일본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고립된 섬에 갇혀있는 우리 모습은 흡사 인조가 갇혀있던 남한산성과 궤를 같이하는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당대의 영화는 그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했던가? 영화 속의 상황과 지금이 완전히 같은 상황은 아니라 할지라도 현재가 백척간두의 상태라고 하는 것에는 그 누구도 함부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북핵의 위협, 군비 확장과 영토 분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주변 열강들의 모습을 보면 지금 상황은 마치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긴장감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는 태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남한산성>이 주는 메시지는 사뭇 크다고 하겠다.
<남한산성>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장면인 인조의 삼전도 굴욕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명분과 실리 앞에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신하의 충정 어린 읍소가 볼만하다. 영화에서는 두 신하의 밀리지 않는 간언이 극의 흐름을 시종일관 이끌어가고 있다. 관객들은 두 신하의 각기 다른 주장 중 하나에 방점을 찍고 자신의 생각을 펼쳐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흔히 알려진 우화 중의 하나인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모티프는 이 영화에서 기로에 서 있는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어떤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정작 영화 속 인물이 된다면 과연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마주하게 되었던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위기 상황에서 누가 과연 국가를 위해 힘을 썼는가 하는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선조가 해전의 영웅이었던 이순신을 붙잡아 백의종군의 길을 가게 만든 것처럼 인조 또한 결과적으로는 충직하게 전장에서 싸운 장군과 장수에게 각기 곤장과 사형을 언도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말만 앞섰지 정작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던 신하들과 영상은 무모한 명령에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힘없는 민초들과 대비된다. 우리 현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IMF 시대에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는 반복된다. 단지 그 상황과 사람들이 다를 뿐이다.
<남한산성>은 미문의 작가로 알려진 김훈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소설을 영화로 옮기다 보니 스펙터클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에 치중하기보다는 두 신하 간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조의 굴욕장면이 최고의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영화는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냥 무력감과 허탈감, 안타까움의 정서가 내리 꽂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영화가 반드시 교훈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된다는 메시지 정도는 암묵적으로 전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또한 영화 속에서 가끔씩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무거운 극의 흐름과 상반되는 다소 코믹적인 요소가 있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정극답게 진지한 방향으로 극을 이끌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한 편의 영화는 시대의 일면을 반영한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와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합당할까? 명분을 위해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면 지금 잠시 굴욕적이라도 인조처럼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까. 그렇다고 마치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하는 방백처럼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