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감독(2011) / 대한민국
전쟁은 늘 권력이 있는 자들의 대리전이다. 권력은 이념을 핑계로 수많은 청춘들의 목숨을 전장으로 내몬다. 보이지 않는 실체. 그들은 힘없고, 선량한 청춘의 넋으로 권력을 보전한다. 영화 <고지전>은 그런 전쟁의 부조리의 희생양이 된 청춘들의 이야기다. 하루에도 몇번씩 주인이 바뀌는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그들은 참호를 파고, 적들을 향해 총알을 날린다. 선량한 친구조차 악귀(?)처럼 만들어버린 전쟁의 냉혹한 현실. 그 속에서도 인간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이념을 초월해 아군의 우편으로 적군의 편지가 전달되기도 하고, 술병이 오가기도 한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이런 기막힌 상황이 전개되는 것은 전쟁을 치르는 군인들 또한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 때문이다. 때론 인간적이면서도 때론 살육의 악귀가 되어야하는 야누스적인 운명 앞에 그들은 절규하고, 아군을 몰살시키기도 한다. 도저히 제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고통은 몰핀조차도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판문점에서 열리는 정전회담은 수년간 진행되었지만 정작 죽어나가는 것은 병사들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지전은 새로운 중대장이 부임하게 되면서 이전과는 양상이 달라지게 된다. 수없이 전투에 참여한 그들은 새로운 지휘관을 명령에 따르지만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방첩대의 임무를 띄고 고지전에 합류하게 된 주인공은 미심쩍은 상황에 대한 의문을 풀려하지만 그것은 전시에는 무용지물이자 사치라는 것을 알게되고, 결국 부대원들의 전열에 합류하게 된다. 전쟁이 만들어낸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은 그 자체가 지독한 아이러니인 셈이다. 육박전을 하면서도 서로 얼굴을 외면한 채 가슴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 현실. 정신이상자가 되어 동료의 등줄기에 총탄을 발사하고, 부대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중대장을 죽일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부조리로 응축된 모든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전장은 수없이 많은 생명을 앗아간 죄인들이 겪어야만 하는 '지옥'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