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빌 vol.1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2003) / 미국

by 정작가


복수는 식혀서 먹어야 맛있는 음식과 같다.


영화의 첫 화면에 새겨진 글귀다. 흑백화면으로 처리된 첫 장면은 충격적이다. 얼굴에 피투성이가 된 채 공포에 질린 채 떨고 있는 한 여자. 뚜벅뚜벅 다가오는 남자의 구두굽소리. 피에 묻은 얼굴을 닦아주는 남자의 손수건. 그 손수건에 선명하게 찍힌 이름 'Bill'. 나지막이 속삭이는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한 발의 총성. 암전.


<킬빌>은 영화 제목 그대로 빌을 죽이기 위한 한 여인의 복수를 그리고 있다. 마치 이소룡의 복장을 닮은 이색적인 여전사의 패션만큼이나 처음에 들려오는 음악도 이채롭다. '킬빌 - 1부'에서는 두 명에 대한 복수의 행로가 그려진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를 둔 한 여자와 어린 시절 부모의 살해장면을 목격한 후 킬러가 된 도쿄의 야쿠자두목으로 성장한 여자에 대한 복수가 그것이다. 이들은 주인공에게 위해를 가한 암살단 '데들리 바이퍼스'조직의 일원이다. 한 여자는 가정주부로 한 여자는 조직의 보스로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이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가는 주인공에게 있어서는 그런 상황들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비록 고의적이지는 않지만 딸에게 엄마의 죽음을 보여준 것에 대한 연민만이 남을 뿐이다. 부모의 죽음을 목도한 후 킬러의 세계에 입문한 야쿠자두목. 그녀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수십 명의 조직원들은 목숨을 잃고, 불구의 몸이 되어버린다. 치열한 싸움이 끝난 후, 맞닥뜨리게 된 결전의 공간은 그야말로 역설적으로 낭만적인 공간이다. 소리 없이 내린 눈과 정원의 풍경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 공간에서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죽음만이 공간을 물들일 뿐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색조는 붉은 핏빛이다. 마치 고어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살육하는 인간의 광기와 살육되는 인간의 신음소리만이 가득할 뿐이다. 물론 이런 장면은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끔 해준다. 팔다리가 잘리는 장면도 지극히 희화화된 장면으로 처리된다. 실제 그런 상황에서 과연 그런 표정과 제스처가 나올지 의문이 들만큼. 결혼식장에서 하객들이 살해당하고, 자신은 총탄을 맞고 4년 동안이나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는데 아기를 임신한 배는 홀쭉하고. 이런 상황이 복수극을 향한 단초를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다소 과하다 싶은 정도의 살육게임은 과연 누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의문을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자극적인 장면이 꽤 들어있는 작품이다. 영화자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그저 오락용 영화로서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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