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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5회)

단오풍정

by 정작가


극이 시작되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여장을 하고 여인네들의 멱감는 풍경을 그리던 신윤복과 김홍도는 곧 위장이 들통나 줄행랑을 치게 된다. 이후 신윤복과 김홍도는 평시대로 옷을 갈아입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성(性)을 숨기려는 신윤복과 김홍도의 아슬아슬한 눈치싸움이 펼쳐진다. 이들의 이런 여정은 사실 도화서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생대회에서 기인한다. 주제에 맞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대다수 생도들이 취재하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만 유독 신윤복은 외부로 나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이런 설정은 주인공인 신윤복을 위기에 빠트리는 합리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라는 생각도 든다.


김조년이라는 대행수가 연회에서 계월옥의 주인인 목계월이 마련한 그림 선물을 두고 설명하는 대목은 김홍도가 당대 화가로서의 입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는 후에 나오는 장면에서 도화서의 취재 결과 발표 시 심사위원들 앞에서 발끈했던 김홍도의 위치가 어땠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 사전 포석은 자연스럽게 당시 화단의 거목으로서 김홍도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김조년 역을 맡은 류승룡은 <킹덤>에서 해원 조씨의 거두로 자리하면서 세자와 대척점에 있었던 것처럼 이 드라마에서 또한 천민 출신의 세도가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서 등장한다.


이번 회차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기생 정향과 신윤복의 대면이다. 늦은 밤, 단오 풍경을 그린 그림을 정향에게 펼쳐 보이고, 이 장면으로 들어오라는 신윤복의 메시지에 정향은 옷을 벗고, 그의 의견에 동참한다. 이 부분에서 흑백의 실루엣으로 신윤복이 정향의 어깨선을 손가락 이어가며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예술적인 형상미를 끌어올린 명장면으로 남는다. 또한 이들의 행동을 훔쳐보는 김조년의 표정에서 정향과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잡을 수 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은연중 탈의를 요구했던 신윤복의 의지대로 그림을 그린 후 정향의 옷고름을 매어주는 모습은 정향이 신윤복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는 장면이다. 정향의 표정 또한 신윤복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 차 있음을 포착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게 되는 단편적인 장면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장면이 이어질 다음 상황을 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일종의 복선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번 회차에서는 그런 장면이 다소 과도하게 나와 극의 흐름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왕이 활을 만지며 옛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 도화서에 쫓겨난 신윤복의 형인 신영복과 단청실 원로 허심의 손녀인 허옥과의 에피소드, 김홍도가 폐가에 들러 옛 기억의 추억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이런 장면들이 자연스러운 이어짐이 없이 산발적으로 몰아서 나오는 극의 전반부를 보면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번 회차에서 가장 큰 흐름은 신윤복이 과연 제대로 그림을 그려 정해진 시간 안에 도화서 취재 시간을 마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달렸다. 여기서 신윤복은 두 차례 위기 상황에 접한다. 도화서 최고 직책인 별제를 맡은 장벽수의 음모로 신윤복의 완성된 스케치 그림을 탈취한 것이 첫 번째다. 이 과정에서 장벽수의 심복은 신윤복을 마른 우물에 빠트리게 되는데 실제 우물의 깊이를 유추해 보면 중상 이상의 부상을 당해야 될 신윤복의 상태가 생각보다는 멀쩡하다는 점이다. 이런 합리적인 의심은 드라마적인 요소를 감안해서 시청자들이 수긍하고 넘어갈 대목일 수도 있지만 스승인 김홍도와 우연하게 조우하게 되어 우물에서 구출이 이루어진 장면은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다소 참신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관헌들의 도움을 받아 두레박 줄로 우물을 벗어나는 장면에서 청개구리가 올라가는 장면을 삽입시킨 것이다. 이 장면은 그들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표현해 준 상징적인 장면으로 보인다. 막 우물에서 건져 올려진 신윤복에는 스케치 그림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다시금 주인공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신윤복은 절망의 눈물을 흘리며 체념한 듯 김홍도를 쳐다본다. 이에 스승인 김홍도는 신윤복에게 말한다.


“뭐든지 좋다. 모두 떠올려 보라. 보이는 거, 들리는 거, 맛, 냄새 모든 느낌은 다 통해 있어서 하나만 기억하면 다 따라오게 되어있다. 자 한 가지만 기억해 내라. 자 보이느냐? 자 뭔가가 보이느냐? 자 집중해라 뭔가가 보이느냐? 보이느냐?”


그제야 신윤복은 낮에 계곡에 있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당시 그네를 타고 멱을 감던 여인들의 풍경을 기억해 낸다. 신윤복은 김홍도에게 업혀 가면서도 그 장면들을 계속 되뇐다. 이로 인해 탈취당했던 스케치를 복원해 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낸다.


극에서 주인공은 지속적으로 시련을 겪게 된다. 그런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환호하고,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번 회차에서도 주인공의 위기는 계속적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 위기가 별제 장벽수의 음모로 신윤복의 스케치 그림을 탈취한 것이라면, 두 번째 위기는 어렵사리 풍경 장면을 떠올려 그린 그림을 춘화로 매도하여 아예 경연장에서 내쫓기려 한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김홍도는 신윤복의 조력자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주인공은 두 화원일 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신윤복에게 좀 더 비중을 둔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지형이 춘화를 그려 도화서에서 내쫓기더니 동생 놈은 여인네를 떼거지로 그려. 형제끼리 도화서를 능멸할 셈이냐? 썩 나가거라."

“아닙니다. 별제어른. 저것은 춘화가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저것은 숨 쉬고, 이야기하고 소리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오직 단옷날에만 살아 숨 쉬는 여인들의 모습을 본, 절대 춘화는 아닙니다."


이 대화는 두 번째 위기 상황에서 신윤복이 별제에게 끌려가면서 춘화로 폄훼당했던 그림, 신윤복의 <단오풍정>이 당시로서는 다소 외설적 그림으로 비칠 수도 있는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신윤복의 <단오풍정>이란 작품을 보면, 경연장에서 신윤복의 그림을 춘화로 매도하는 별제의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조선시대 단오절에 봄직한 여인네들의 일상적인 풍경과 멱감는 여인들을 훔쳐보는 다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훔쳐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실감 나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이색적인 부분은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회차에서 화룡점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은 생도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신윤복이 훗날 <단오풍정>으로 기록될 그림에서 여인의 유두점을 찍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들은 모두 숨죽이며 긴장감을 유지하다가 제대로 점이 찍히자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한다.


시간을 알려주는 향초의 역할은 극의 긴장감을 유도하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별제의 음모로 스케치 그림을 절취당하고, 마른 우물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과연 신윤복에 제때 그림을 그려 제출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에 떨게 된다. 이런 긴장감은 극을 몰입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로 당시 고증을 통해서든 연출이든 간에 시간의 흐름을 인지시키는 장치로서는 뛰어난 발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분은 주상전하이시다.”


극의 말미에 나오는 이 말은 신윤복이 특선 화원으로서 도화서에 들어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이로써 당시 임금이었던 정조가 신윤복을 지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드라마 첫 화면 문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바람의 화원>은 역사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극화한 작품인 만큼 역사적 사실과 배치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드라마를 볼 필요가 있다.


☞ 6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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