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선도(群仙圖)
이번 ‘군선도’ 편에서는 신윤복이 절필을 선언하고 부상을 당한 후 다시금 붓을 잡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한사코 다시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맹세한 신윤복은 스승인 김홍도의 집요한(?) 설득으로 다시금 그림을 그리게 된다. 청의 사신에게 선물할 그림은 도화서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그림 중에 선택되지 않는다. 나름 의미를 직조하여 왕에게 그림의 가치를 설명해 보지만 정조는 탐탁하지 않게 여긴다. 그러는 중에 김홍도가 그린 그림을 갖고 등장한다.
군선도(群仙圖)는 신선의 무리를 그린 그림을 말한다. 청국의 사신에게 선물로 보내 줄 그림 중에서 극중 임금인 정조가 택한 김홍도의 그림이 여기에 해당된다. 사실 이 군선도의 모델은 거리나 시전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조선의 백성이다. 청의 황제에게 선물할 군선도에서 자국 백성의 모습이 느껴지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정조는 김홍도의 입을 통해 비로소 그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투계판(鬪鷄判)에서 김홍도가 하는 대사는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부여하는 의미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닭들이 왜 싸우는지 알고 싸우는지, 우리가 밥을 왜 먹는지, 알고 먹는지 하는 물음 따위는 실상 우리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라는 것들이 실체가 없는 이상향임을 직관하게 한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다.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고 안 보이는 것이 안 보이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화가의 말 또한 우리가 오감으로 인식하는 것들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렇다면 또 실제로 여성이면서 남장을 하고, 다시금 여성임을 연기하는 신윤복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김홍도의 여장은 금방 들통이 났지만 신윤복의 남장이 관습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보이는 것의 가치가 얼마나 허술한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역설적으로 시각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화가의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도 담을 수도 있었던 군선도는 정조가 말했던 것처럼 청에 선물하기에는 아까운 작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회에서는 그림에 대한 화가의 철학적인 식견 외에도 영상미가 뛰어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김홍도와 신윤복이 밤을 새워 군선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붓놀림을 통해 그려진 그림을 묘사하는 장면이 그렇다. 낮에 거리에서 만났던 인물들이 그대로 그림 속의 신선으로 변해가는 장면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이 결코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교과서에나 봄직한 신윤복 그림의 배경이 그대로 영상으로 재연된 장면을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 5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