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제각화
이번 회차의 첫 장면은 정조가 도화서의 고위 관리와 대면하면서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감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정녕 모르겠는가? 이 그림의 가치를.”
“주상전하께서도 이 그림을 속되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이 바로 핵심이네 ~ 이것은 보이는 것 너머를 꿰뚫어 본 자의 솜씨다. 겹겹이 가려진 껍질 속에 숨겨져 있던, 있는 그대로의 인간,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극에서는 서징의 딸 서윤의 유년 시절이 그려진다. 서윤은 신윤복이다. 신한평이 서윤을 양자로 들이는 과정을 회상하는 장면이나 자기 부인과 대화하면서 친자인 영복과의 관계 속에서 신윤복을 언급하는 것은 신윤복이 여성임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이는 혹시라도 이전 회차에서 신윤복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시청자들에게 사전 정보를 주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이는 극의 말미에 신윤복과 정향이 운우지정을 나눌 수 없는 현실을 목도하게 한다. 드라마는 특성상 긴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진행된다. 이 때문에 회차마다 시청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된 정보를 자주 노출해야 극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이번 회차에서 객관적 상관물로 등장하는 것은 노리개다. 신윤복이 정향을 만나러 가면서 시장에서 미리 구입했던 노리개를 선물로 주려는 장면이 나온다. 정향이 약속으로 자리를 비운 뒤, 그가 남겨두고 간 노리개 그림 또한 그녀의 운명을 암시하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시전의 큰 손인 김조년과 정향의 대면에서 김조년은 그녀와 잠자리를 흥정한다. 정향은 전 재산을 준다면 그리 하겠노라 말한다. 이는 정향이 김조년의 요구를 거부하기 위한 반응이었지만 이로 인해 정향은 스스로 위기의 한 복판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게 된다.
정조를 대면하는 김홍도와 신윤복이 엎드려 있는 장면에서 카메라의 시선 처리는 돋보인다. 정조를 바라보는 신윤복의 시점에서 시청자들의 관점을 배려한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정조는 그들 간의 관계를 명징하게 규정한다. ‘내가 아끼는 화원과 또 그가 아끼는 화원’이라는 표현은 이들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준다.
여기에서 정조는 이들에게 동제각화를 명한다. 동제각화는 같은 주제로 각자 그림 그리는 것을 말한다.
“같은 소재로 각자 그림을 그려오라. 도성 안의 살아있는 사람들을. 솔직한 모습 그대로. 나는 백성들의 삶을 내 눈으로 보고 싶다. 하지만 군왕이라는 자는 이 좁은 궁궐에 매여있는 몸이 아니겠는가. 이 순간부터 너희는 내 눈과 다리를 대신해 거리의 화원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마치 화원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 현실에서도 진실을 밝혀주는 언론의 역할을 고대하는 듯한 군주의 담화로 읽힌다.
그림의 시제를 찾아 떠나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행적은 존 버거의 저작 <다른 방식의 보기>를 떠올리게 한다. 시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장면은 김홍도와 신윤복이 자체적으로 만든 네모 틀과 둥근 틀로 그릴 그림의 구도를 결정하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결국 정향은 수천 냥에 몸을 팔려 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김조년과 목계월이 품평하듯 정향의 신체를 훑어보는 대목은 정향으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아무 말 없이 눈물 한 방울을 떨구는 장면은 정향의 복잡한 심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복선은 별 의미 없이 지나가는 장면에서 포착할 수 있다. 어진화사에 대한 언급이 두 차례나 등장하는 것을 보면 머지않아 일어날 사건을 암시하는 촉매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번 회차에서 가장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은 신윤복과 정향의 마지막 이별신이다.
“마지막 밤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서둘러야 한다고 편지에도 이르지 않았습니까?”
“편지라니?”
“이제 와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화공에게 연주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가야금 연주가 끝난 후, 정향은 말한다.
“이제 화공의 농현(줄을 왼손으로 떨어서 음을 장식하는 기법)을 기다립니다.”
“농현이라니.”
“소리를 내는 악기가 어디 가야금뿐이겠습니까. 사내의 손에 울고 웃는 최고의 악기는 여인의 몸이겠지요. 이제 이년, 물건으로 팔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정인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이 부분의 대사는 자칫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페니미즘적인 관점에서는 다소 우려가 될 소지도 있는 부분이다. 또한 당시 조선 시대 기생의 지위는 단순히 유희의 대상이나 풍류차원을 넘어 예술가적인 측면에서도 재조명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살펴보면, 정향 또한 입체적인 인물로 그리기보다 기생을 대표하는 평면적인 인물로 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는 기생의 지위를 화류계의 여성으로 한정 짓는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저고리를 푸는 정향과 이런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신윤복이 노리개를 움켜쥐는 장면에서 잔잔한 배경음악이 깔린다. 드라마에서 음악이 주는 효과는 배우들의 감정과 상황을 고조시켜 감정적 이입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자주 활용된다. 여기에서도 애절한 음률은 두 정인의 비극적 정서를 잘 표현해 낸다. 다소 느린 화면으로 정향의 시선과 신윤복을 번갈아 가며 보여주는 카메라의 시선은 등장 인물의 심리적 긴장과 갈등 상황을 미묘한 관점에서 포착해낸다.
그리고 정향이 막 누우려 하는 순간
“난 그리할 수 없소.”
“천한 기녀의 몸이라 꺼리시는 겝니까?"
"아니요. 그것이 아니요."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포커싱은 정향에게 맞춰진다.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마치 원망하듯 신윤복을 바라보는 정향의 표정과 미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녀를 향해 내리깐 신윤복의 시선은 미세한 감정의 결을 잘 표현해 낸다.
“그럼 무엇입니까?”
“내게도 그대는 다시없을 정인이요. 허나 그대를 품을 수는 없소.”
“이년 비록 술자리의 유희거리로 지냈으나 단 한 번 두 아무에게나 마음을 내보인 적이 없습니다. 오직 내 음률을 알아봐 주고, 내 영혼을 알아봐 준 단 한 사람만을 애타게 기다려왔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역으로 정향이 흐릿해지고, 아웃포커싱이 신윤복을 향한다.
“이제야 그 사람을 만났는데,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천한 기녀에게 그것조차 사치였단 말입니까.”
“아니오. 그것이 아니오.”
“그럼 무엇이란 말입니까?”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정향
마지막 이별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애절한 노래는 더욱 그들의 슬픈 운명을 고조시킨다.
그대가 피어나네요. 마음이 담긴 손끝에 닿을 수 없는 외로움을 실어 그 이름 불러 보네요. 그대가 꽃처럼 웃네요. 두려워 돌아설수록 그대의 눈빛 내 앞길이 되어 날 오라 손짓하네요.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 내 마음 멈출 수 없어. 그대란 세찬 바람에 내 맘 한 자락도 멈출 수가 없어. 사랑아 사랑아 바보 같은 사랑아. 미련한 가슴아 떠나갈 줄 알면서도 그대를 원해요. 그대를 꿈꿔요. 가슴이 아파 눈물이 흘러도 ~
☞ 7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