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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by 정작가


이 장에서 톨스토이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다음과 같다.


미학에 관해서 논술한 이들 모든 정의로부터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미는 결국 두 개의 근본적인 개념으로 귀착된다고 톨스토이는 말한다.


미란 ‘독립적으로 그 자체 내에 존재하는 어떤 것’과 ‘우리가 그 대상에 대해 개인적 이익을 갖지 않고 쾌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다.


첫 번째 정의를 신봉하는 철학자는 피히테, 셀링, 헤겔, 쇼펜하우어를 비롯하여 프랑스 철학자 쿠쟁, 주프루아, 라베송-몰리엘 등이고, 두 번째 정의는 영국 미학자들과 러시아 사회의 젊은 층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고 밝힌다. 이런 상반된 견해는, 객관적인 미의 개념과 쾌감을 주는 것은 미(美)라는 주관적인 관념에 기초한 정의를 이분법적인 논리로 가르는 것에 기초한다.


톨스토이가 미의 정의를 개략적으로 두 가지로 분류해 놓긴 했지만 다양한 사상의 세례를 거치면 그 범위가 고정되지 않고, 철학과 종교는 물론 인생 자체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은 ‘미의 개념이 극히 명백한 것 같지만 정확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또한 미의 연구와 발전 측면에서도 보면, 미학의 창시기 때는 형이상학적인 정의가 우세하던 시절에서 현대로 올수록 경험적 특징에 기울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미의 개념을 완전히 도외시하는 미학자까지 등장했다는 현실을 언급하며 이런 주장은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고 미는 그저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인해 객관성을 담보한 것이거나 쾌락의 요소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또한 객관적인 의미로 절대적인 완전함을 보장한다손치더라도 결국은 주관적인 정의인 쾌락으로 수렴한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주장이다.


톨스토이의 미에 대한 견해는 앞서 제3장에 보여준 수많은 미학의 이론적인 토대들도 결국은 보편적인 의미에서 미(美)를 정의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한다.


미에 관한 객관적 정의란 있을 수 없다.


이런 단정적 판단에 근거하여 톨스토이는 현재의 미학이 과학이라 칭하는 지적 활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진정한 미학은 아니라고 규정한다. 이런 판단의 근저에는 쾌감을 준다는 이유로 예술적인 이론을 정립하여 여기에 이론을 맞추려는, 이를테면 스스로 정한 규범에 그 가치를 함몰시키는 누를 범하게 된다고 톨스토이는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학에 대한 보편적인 정의에 예술작품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입맛에 맞춰 거꾸로 예술론이 고안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 또한 사회 상층 계급의 전유물로 전락되어버린 현실을 개탄하는 거장의 날 선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미에 대한 톨스토이의 견해는 다음과 같은 문구에서 더욱 생각할 여지를 준다.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이 결코 예술을 정의하는 기초가 될 수 없으며, 또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여러 가지 대상이 예술다운 것의 전형이 될 수도 없다.


수많은 예술론이 보편적으로 규정하는 쾌락 지향에 근거한 미학에 대한 관념이 본질적으로 예술의 의의나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본질적인 예술의 속성인 ‘다른 현상과의 관련을 통해 비로소 그 의의를 갖는’ 예술의 가치를 한낱 쾌락이라는 ‘거짓되고 배타적인 목적’으로 환원되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톨스토이의 예술관에 기인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수백만 명의 노력이나 인명 · 도덕까지도 희생으로 제공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의 관점에서 보면, 수많은 미학자들의 이론이 아무리 많더라도 결국은 ‘쾌락은 그것이 쾌락이니까 좋다’는 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단정한다. 이는 예술의 본질적인 가치가 어떤 현상 속에서 새롭게 정의되는 과정을 거부하고, 그저 소수 계층이 주장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예술의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실은 예술의 참다운 정의가 아니고, 현재 있는 예술을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트릭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예술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오늘날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예술이라는 개념이 미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것에서 찾는다. 이는 미(美)의 정의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이는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만큼 권력을 가진 소수 계층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될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이라는 보편적인 인류의 정신적인 유산조차도 소수의 욕망과 필요에 의해 변질되고, 그런 예술의 한계로 인해 그와 관련된 일에 복무하는 사람들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지키려고 했던 정신적인 영역인 도덕적 가치조차도 팽개쳐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목도했던 거장의 안목은 예술 이론의 몰가치성을 더욱 날 선 관점에서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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