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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코포니 Apr 08. 2020

kk

1집 和

 '숨'은 이 앨범, '和' 의 문을 여는 곡이었다. 숨은 피아노 연주로 곡이 끝나는데, 일부러 종결된 느낌으로 피아노가 끝나지 않게 했다. 피아노 연주를 했던 성인오빠도 마지막이 너무 끝나지 않은 느낌이라 코드를 바꾸려고 했고, 마스터링 엔지니어님도 소리가 점점 줄어지게 페이드 아웃을 해서 처음 음원파일을 보내줬지만 나는 원래의 의도를 지키기로 했다.

 

 이는 동화 같은 '숨' 뒤에 이어지는 2번 트랙 kk 때문이었다. 둘은 정말 상반되는 곡이었지만,  이 앨범의 문을 환상적으로 연 다음에 나는 바로 절망을 보여주고 싶었고, 이어지는 개연성을 주고 싶었다. 비록 내가 음악을 하고, 노래를 부르겠다는 결심은 아름다울지라도 그 바로 밑에는 큰 어둠이 깔려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숨의 마지막 반복되는 피아노의 음계와 kk의 처음 부분의 신디사이저의 음계를 같게 하여 이어지도록 했다. 아름다움의 층에 갑작스럽게 난 구멍으로 감정을 추락시키고자 하였다.


 지겨운 하얀 벽 팔을 찌르는 바늘들 깊네

 날 안쓰러워하며 자신의 삶의 위안을 찾네 


 피 진통 날 놓아주지 않아 젊은 내 몸을 놓아 

 숨 고통 날 안아주지 않아 내 아픔을 팔아 

 내 이름을 불러줘 내 노래를 들어줘 

 피 진통 


 그만 줘 호흡도 역겨워 

 날 기도한다 하며 나의 미래를 없애고 있네 


 피 진통 날 놓아주지 않아 젊은 내 몸을 놓아 

 숨 고통 날 안아주지 않아 내 아픔을 팔아 

 내 이름을 불러줘 내 노래를 들어줘 

 피 진통 


 가사를 읽으면 짐작할 수 있듯이, 엄마와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병원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적었다. 나는 종종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와 내가 동일시되는 기분을 느꼈다. 육체적으로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주제에도 병실에 함께 생활하면서 나는 그 지겨운 병원에서 병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사는 엄마 입장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의 입장이기도 하다.


 한 번은 엄마에게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빌려간 사람이 병문안에 왔다. 사실 병문안에 왔다기보다는 엄마가 그 사람에게 연락해야 한다고 연거푸 말했기에 내가 따로 연락을 해서 온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돈을 빌려준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 사람만 병원에 왔다. 우스운 일이다. 장례식에는 참고로 아무도 오지 않았다. 더 우스운 일이다.


 병원에서 엄마는 그 퉁퉁 부은 몸으로 그 사람에게 차용증을 한 번 더 작성하라고 했다. 그 사람은 순순히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금액이 적힌 차용증을 썼다. 내 이름 앞으로 적어줬다. 엄마는 그게 나에 대한 사랑이었나 보다. 그 사람이 떠나고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사람은 말로는 병문안이고, 엄마를 위해 기도한다 했지만 엄마가 곧 죽는다는 것을 알고 안도하는 듯했다. 내 이름 앞으로 적힌 차용증으로 내가 어찌하지 않을 것도 알고 있는 듯했다.


 기분이 더러웠다. 엄마의 죽음으로 안도하고 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이. 엄마는 무슨 기분이었는지 모르겠다. 함께 병들었던 내 기분과 비슷했을까. 그 사람이 다녀간 후에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통쾌한 복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 사람의 뜻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엄마는 매일 피를 흘렸고, 고통스러워했고, 서서히 죽어갔다.


 엄마가 생전에 걸었던 재판 소송들이 엄마가 죽은 후에도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파산신청을 해버리고 도망 다니는 사람을 쫓아다니며 돈을 받을 성격도, 돈에 대한 집착도 없었다. 


대신 이 노래로 역겨운 감정을 박제했다. 노래는 영원할 테니,  어쩌면 더 큰 형벌이 되지 않을까.

 

 아, 여담으로 kk는 앨범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녹음했던 곡이었는데, 곽기사님께서 발음이 너무 안 좋다고 첫 녹음 후 퇴짜를 맞았다. 볼펜 물고 일주일 연습하고 갔다. 일주일 만에 잘 고쳐왔다고 칭찬을 받았고, 다행히도 다른 곡들의 녹음을 진행할 수 있었다. 발음 교정 디렉팅이 없었더라면 지금보다도 더 듣기 힘든 곡이 되었을게 분명하다.



 


 문독이와 kk 뮤직비디오를 찍을까 어쩔까 고민하던 도중, 문독이가 말했다.


k와 k의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거기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사실 kk란 곡명은 프로젝트 파일을 대충 저장하기 위한 손짓에 불과했는데, 딱히 피와 진통을 울부짖는 노래에 어울리는 제목도 없어서 kk로 이름이 굳어져버렸다. 의미 없는 이름에 의미를 부과해버린 문독이의 질문 덕분에 나는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쓸 수 있었다.


 'k와 k는 같은 존재이지만, 정반대의 존재가 되게 하자. 한 k에게는 '선'을, 한 k에게는 '악'을 부여하자. 선한 슬픔을 악한 절규가 잡아먹도록 하자. 마치 슬픔에 가라앉지 않고 1집으로 포효를 한 카코포니처럼.'


 한 장면, 장면의 연출은 모두 이런 큰 구조 속에서 그려지게 했다. 둘의 구분이 힘들게 일부러 교차 편집한 장면도 있었는데, 사실은 선이든 악이든 한 끗 차이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양 극단은 맞닿을 수밖에 없으니까. 사실은 같은 하나이지만, 전혀 다른 둘로 보이기를 바랐다. 



 스튜디오의 빨간 천과 함께 촬영한 장면은 k와 k의 이야기와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장면이다. 붉은 자궁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려 했는데, k와 k의 갈등이 새로운 이야기의 잉태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태어나는 존재가 되어야 했으니 누드 촬영은 그랬기에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다행히 나는 부끄러움이 없었고, 나의 친구들은 빨간 천을 잘 흔들어주었다. 


 어두운 주제이지만 정작 촬영은 즐거웠다. 소규모의 촬영인 데다 합이 잘 맞는 친구들과 작업해서 원하는 장면들이 바로 나왔고, 대부분의 편집도 촬영 당일 다 해버렸다. 



카코포니 - kk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jBfgEV6lVD8





 <카코포니는 어떻게 음악을 만들까>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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