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집 和
우리 집 가장 안쪽에 엄마의 방이 있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엄마의 물건들이 이곳 저곳에 널려있다.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5월의 달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흐물흐물 사물의 경계들이 파랗게 드러났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그래서 엄마가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잠시 어딘가로 외출한 것만 같았다. 아니면 병원 침대에 희미하게 누워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4개월은 병원에서만 지냈기 때문에 엄마 방은 어쩌면 엄마가 없는 채로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부재가 실감되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해지자 엄마는 침대에 물건들을 쌓아놓는 습관이 생겼다. 시나 가사를 적어 둔 수첩, 알록달록한 약봉지, 작은 초콜릿들, 누군지 알 수 없는 명함들, 그 외 잡동사니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 엄마가 덮던 이불도, 엄마가 늘 보고 있던 텔레비전도, 어느샌가부터 입지 못했던 옷들도 모두 그 방 안에 있었다.
고작 이 물건들이 엄마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엄마가 낳아버린 나도 엄마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지 않을까. 엄마의 죽음으로 내 음악이 시작되어버렸다면, 내 음악이 곧 엄마의 새로운 삶이지 않을까.
지금 그대 계신 곳 대체 어딜까
이 맘에 이 밤에 어디에
지금 그대 평온히 주무시고 있나
이 맘에 이 밤에 그렇게
내 안에서 숨을 쉬며 노래하세요
그대가 원했던 그 멜로디로
내 안에서 꿈을 꾸며 고백하세요
그토록 잡고 싶던 호흡으로
지금 나는 여기에 서 있어요
공허와 무게와 나란히
지금 나는 그대를 품고 있어요
공허와 무게와 그렇게
내 안에서 숨을 쉬며 노래하세요
그대가 원했던 그 멜로디로
내 안에서 꿈을 꾸며 고백하세요
그토록 잡고 싶던 호흡으로
내 안에서 살아 계세요
엄마의 침대 위에서 흥얼거리며 순식간에 완성시킨 노래이다. 보통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붙이는 편인데, 가사와 멜로디가 동시에 찾아왔다.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가 그려졌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쉬기 위해 가쁘게 호흡하는 엄마가 그려졌다. 그리고 내가 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다.
가사와 멜로디가 완성되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갔다. 서툴게 피아노를 연주했다. 화성학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지만 내가 원하는 분위기에 맞춰 음들을 쌓았다. 이 곡은 전자음악이 되어서는 안되었다. 현악기를 추가했고, 북소리를 추가했다. 만들고 싶은 소리를 위해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소리들을 쌓았고 깎아냈다.
대학교에 갓입학했을 때 학교 가요제에서 수상했던 적이 있다. '목마회'라고 불리우는 학교 가요제 수상자들끼리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성인오빠를 만났다. 그 당시에는 말도 별로 섞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접점이 계속 생겨서 이상한 방식으로 가까워졌다. 알면 알수록 성인오빠는 비상한 사람이었다. 경제학과에서 국어국문학과로 전과했으면서 노래와 피아노를 참 잘했다. 실제로 머리가 엄청 좋기도 했고, 그 사람이 치는 피아노는 다른 색깔을 가졌다. 일반 피아노 연주자로부터 들을 수 없는 클래식한 무게가 있었다. 끈질긴 고민 끝에야 나올 수 있는 화음이었다. 나는 그게 참 좋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이었다.
성인 오빠에게 숨을 들려줬을 때 자신이 치겠다고 선뜻 먼저 말했다. 그 오빠의 작업실에서 피아노를 수정하고 수정했다. 음악 이론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추상적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지만, 오빠는 언제나 그 이미지를 피아노로 잡아내었다. 간주 부분의 피아노가 가장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는 해냈다.
'긿은 잃은 아이느낌으로'
'갑자기 온 화면히 흔들려야해'
'안개 낀 숲속을 달리고 있어'
현악기 편곡도 순식간에 오빠가 해버렸다. 피아노에 현악기가 주된 음악이다보니 진짜 현악기 소리를 녹음하고 싶었다. 컴퓨터로 그려낸 현악기 소리는 너무 인위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오케스트라를 섭외해서 녹음하기에는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인터넷으로 오케스트라 녹음을 끈질기게 검색했다. 그러던 중 한 개인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각각 녹음해서 오케스트라 소리를 만들어준다는 뉴욕의 한 연주자를 찾았고 메일을 보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꽤나 괜찮은 퀄리티의 현악기 소리를 받을 수 있었다.
보컬 녹음은 원테이크로 갔다. 3번을 통째로 부르고, 2번째로 부른 것을 썼던 것 같다. 녹음과 믹싱을 맡아준 은정언니는 나의 서툰 감정들과 소리들을 아름답게 바꾸어주었다. 모든 소리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김범수 엔지니어님의 마스터링까지 거친 음원은 부끄럽게도 감동적이었다.
<Credit>
작사 : 카코포니
작곡 : 카코포니
편곡 : 카코포니, 조언
피아노 : 조언
녹음 & 믹싱 : 곽은정 (@KWAK STUDIO)
마스터링 : bk! of Astro Bits(@AB room)
2018년 10월 4일, 앨범 발매 직후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바로 계획했다. 그 때 작성했던 연출노트를 함께 적는다. 이 뮤직비디오를 함께 만들어 준 나의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다시 표현하고 싶다.
단테의 여행은 지옥에서, 연옥으로, 연옥에서 천국을 향한다. 지옥에서 벌을 받고, 연옥에서 죄를 묻은 나는 구원의 천국으로 향할 차례이다. ‘숨’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나는 천국을 표현하고 싶었다.
로제타의 뮤직비디오에서 색으로 지옥을 표현했던 것처럼, 숨의 뮤직비디오에서도 색으로 천국을표현하고 싶었다. 여러 장치들을 통해 해석되기 이전에, 영상을 접하는 순간 천국이라는 느낌을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천국은 따뜻하고, 평온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영상의 전반적인 연한 노란색은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온화함을 연상시키게 한다.
연기는 구름을 연상시켜 하늘을 상징한다. 흐드러지는 꽃잎은 천국의 향기로운 꽃밭을 상징한다. 또한 천국의 땅은 금으로 되어 있다는 성경의 말을 빌려, 나는 금색 장신구를 착용했다. 특히 목걸이에는 베르사체의 상징인 ‘메두사’가 그려져 있는데, 이로써 시간이 멈추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천국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생각이나 관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에서 나는 뒤의 화면의 나와 번갈아 가면서 노래를 부른다. 인간의 오만으로 세워진 바벨탑 이전에는 인간은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 하나의 언어는 이제 천국에만 남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하나됨을 하나의 목소리로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처음으로 나와 같은 목소리와 대화한다. 같은 목소리들은 마지막 가사를 화음으로 함께 부른다.
피아노만 연주되는 순간에서 나로부터 카메라가 멀어진다. 화면의 나로부터도 카메라가 멀어진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서서히 사라진다.
3분 16초의 영상은 끝이 나고 나의 지옥-연옥-천국으로의 여정은 끝이난다. 이제 천국에 남은 엄마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를 남긴다.
‘내가 당신의 숨을 쉬고 있어요.’
4분 16초에 모든 것은 끝이난다. 4월 16일, 엄마가 떠난 마지막 날을 마음에 새기면서.
카코포니 - 숨 뮤직비디오
<카코포니는 어떻게 음악을 만들까>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