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집 和
'결국'은 1집 [和] 앨범 중에서 가장 격한 감정의 목소리로 부르고 표현한 노래다. 하지만 앨범 중에서 가장 이성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연하게 너를 아프게 했던
완벽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없고
주고 갈 수 있는 것만 있다니
손에 쥐려 했는데
결국 너는 마음에 남는 사람인걸
악착같이 버텼는데
결국 너는 영원히 남은 사람인걸
결국 결국 결국
모든 슬픔은 여기에 남기고
완벽한 너의 세상 속에서
나를 세상에 던져놓고
훌훌 떠나 날아가버려도
손에 쥐려 했는데
결국 너는 마음에 남는 사람인걸
악착같이 버텼는데
결국 너는 영원히 남은 사람인걸
결국 결국 결국
결국 결국 결국
나는 예술가의 불행은 시대와 상황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확고한 자신의 세계와는 달리 우연성과 타인으로 가득한 현실세계는 예술가들을 좌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허나,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그려졌듯이 나는 예술가가 완벽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 작품을 통해 우연성에 반항하고, 동시에 극복할 수 있다고는 믿는다.
분명 예술가로 태어난 우리 엄마에게 엄마의 시대와 엄마를 둘러싸고 있던 상황은 많은 불행을 낳게 만들었을 것이다. 원하지 않고 받아들여야만 했던 우연성에는 여성의 예술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겠고, 돈을 최고로 여기는 사회도 있겠고, 몸에 갑자기 생겨버린 암도 있겠고, 아마 나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안타깝게도, 우연성이 주는 좌절에 매몰되었던 것 같다. 타인에 맞춰가며 자신을 잃었던 것 같다. 차마 이를 뚫고 소리를 낼 용기를 가질 수 있을 리 없다. 엄마는 엄마의 세계를 언젠가부터 잊고 살다 죽었다.
하이데거가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말하며 존재의 피동성 그 자체에 주목했다면, 나는 그 피동성에 '엄마'라는 주체가 마침내 발생함을 느꼈다. 그러니까, '엄마'가 나를 세상에 던지고 간듯한 인상을 받았다. 오히려 내가 태어났을 때보다도 엄마의 죽음은 나를 태어나게 했다. 또한 우연성에 굴복한 엄마의 삶이, 불안 속에서 흔들렸던 엄마의 자세가 역설적으로 내가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제시했다.
인간이 살면서 가질 수 없는 '완벽함'과 '영원함'은 '죽음'만이 가질 수 있는 성질이다. 죽음은 그 자체로 완벽하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언제나 우연하게 고통받을 것이며, 타인에게 농락당할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는 우연성의 세계를 죽일 수 있는 존재이다. 흐르는 시간을 멈추게도 할 수 있고,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 수 있다. 타인을 자신의 세계 속에서 완벽하게 그릴 수도 있다. 우연성에 매몰되지 않는다. 우연성을 오히려 재료로 사용한다. 나는 그런 자세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화장터에서 엄마의 화장 순서를 기다리며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주변을 걷다보니 건물의 벽에 적혀있는 글귀들을 하나 하나 보게 되었다. 그중 '모든 슬픔은 여기에 두세요'라는 문장이 적힌 벽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아마도 그 말은 누군가를 여의고 이 세상에 남은 가엾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적힌 문장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내가 받기보다, 엄마에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우연하게 겪었던 좌절을 다 여기에 두고, 그곳에서는 부디 엄마가 잃은 세상을 펼쳤으면.
엄마의 차례가 되었다. 차례가 되어도 사실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없었다. 검은 방에 들어가 엄마가 한 줌의 재로 변해서 나오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엄마가 태어난 날과 엄마의 이름과 엄마가 죽은 날이 유골함에 새겨졌다. 유골함에 그 재를 담았다. 그것이 엄마가 되었다.
해가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엄마를 두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시 한 편, 엄마가 좋아하던 브로치, 가족사진, 꽃으로 유골함 옆을 꾸몄다. 나보다도 엄마를 오래 아는 친척들이 눈물을 훔쳤다. 친척들은 나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별로 말이 없던 삼촌들도 나를 따로 불러,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말했다. 엄마는 엄마 자신은 잘 몰랐지만, 소중한 사람이었다.
결국, 엄마는 떠나버렸다. 나는 집에 어정쩡하게 돌아와서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정말 작은 건반 하나와 싸구려 usb 마이크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만든 노래가 'kk'와 지금 쓰고 있는 '결국'이었다. 플러그인 사용도 익숙하지 않았고, 원하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오던 시기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샘플들의 소리를 자르고 붙이고, 겹쳤다. 이게 맞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알 수 없다고 해서 안 할 수는 없었다. 레퍼런스 곡도 없었고, 순전히 나로부터 이 음악이 시작되었으니 어떻게든 해낼 수밖에 없었다.
현악기와 기타는 가상악기로 연주했는데, 현악기는 그래도 원하는 느낌으로 어느 정도 구현해냈지만 기타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불가능했다. 기타를 칠 수 있는 사람을 알 리가 없었고, 예전에 잠시 홍대에서 공연을 했을 때 내 음악을 좋아했던 정현이에게 무작정 연락을 했다. 정현이는 고맙게도 도마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건우를 소개해주었다. 안 그래도 도마 음악은 참 좋아했었다.
사실 그 데모 음원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부족하고 말이 안 되는 상태였는데, 건우는 흔쾌히 해주겠다고 했다. 지금 와서 물어보니, 그 당시에는 이 노래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꼭 연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정현이네 집에서 기타 녹음을 다 같이 하기로 했다. 기타를 전혀 몰랐던 내가 가상악기로 연주한 멜로디가 실제 기타로는 영 치기가 어려워 꽤나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하지만 밤새 포기하지 않고 연주해준 건우 덕분에 내가 원했던 멜로디 그대로 연주가 된 기타 연주 파일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은 믹싱 엔지니어인 은정 언니가 정말 큰 활약을 한 곡이다. 사실 나는 1집을 칭찬받으면, 1집은 곽은정 기사님의 작품이었다고 말을 하고 다닌다. 그 정도로 내 곡들을 잘 완성시켜 주셨다. 사운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에도, 뭔가 엄청나게 좋아졌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정리와 개성이 동시에 공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아마 은정 언니가 없었더라면 이 강력한 느낌들이 효과적으로 절대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처음 믹스 파일을 받았을 때 '결국' 울부짖는 부분에 디스토션을 넣어주셨는데, 그 아이디어가 참 마음에 들어 원래 목소리랑 반반 섞어 지금의 소리가 될 수 있었다.
'결국'은 문독이랑 둘이 제대로 영상을 시작한 첫 번째 뮤비이다. 원래는 세부적인 시나리오가 있었던 뮤비였다. 그런데 처음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고 촬영본을 확인하니 에너지가 너무 잘 표현이 되어서 시나리오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독이와 원테이크 영상 위주로 뮤비를 진행하기로 과감하게 결정을 했다.
문독이가 '숨'에서 카메라를 맡기는 했지만, 짐벌을 이용한 촬영은 처음이었다. 조립하는 게 여간 쉽지 않아, 거의 한 시간을 끙끙거리는 동안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다 들었다. 짐벌 사용도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과연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문독이는 천재였고 금방 짐벌에 적응해서 촬영해버렸다. 우리는 함께 소리 지르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찍었다. 그 순간만 생각하면 아직도 쾌감이 가시질 않는다. 가장 처음 찍어서 서툴지만, 그래서 우리가 여전히 가장 좋아할 수밖에 없는 뮤직비디오이기도 했다. 화장과 메이크업은 은서가 맡았다. 대강의 시안만 보여줬는데도 나를 정말 악마에 홀린 사람처럼 표현해주었다. 사실 그 외에도 조명도 도와주고,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언제나 은서에게는 참 고맙다.
나는 이 뮤직비디오가 kk 뒤에 이어지는 뮤직비디오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선과 악의 대립 이후, 선은 악에게 잡아먹히고, 다시 그 존재가 '결국'에 등장하여 폭발하는 모습으로 보였으면 한다.
카코포니 - 결국 뮤직비디오
<카코포니는 어떻게 음악을 만들까>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하루 늦게 업로드를 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4월 16일은 세월호 6주기이자 어머니의 기일입니다.
마음이 참 복잡한 하루였습니다. 모두 평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