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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망지 Oct 30. 2022

금성의 하루는 116일입니다

두시부터 다섯시간, 서른한번째 편지


Kia Ora, 31번째 발신 


10월의 마지막 주입니다! 물론 다음주 월요일까지는 엄연히 10월의 날짜를 품고 있지만, 주 단위로 보자면 이번 주가 마지막 주이긴 하니까요. 10월의 말미가 되면 마음이 왠지 들뜨면서도 우울해집니다. 가을도 벌써 보내줘야할 것만 같고,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것 같으니까요. 겨울은 코가 먼저 알아챕니다. 겨울냄새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어느 아침의 찰나가 있기 마련이고, 고이 아껴두던 목도리를 슬그머니 밖으로 빼놓습니다. 해는 더 짧아지겠고, 이제 하루의 낮과밤은 절반씩을 가지지 않겠지요. 낮보다 밤이 더 길어지고, 해를 맞을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듭니다. 출퇴근을 일삼는 저는 더더욱이 해를 볼 시간이 없습니다. 출근길의 잠깐과 점심시간의 잠깐, 다 합쳐도 야외에서 햇빛을 정면으로 내리쬐는 시간은 한시간이 채 되지 않습니다. 매일의 광합성이 영 부족한 느낌이라, 요즘은 의무적으로 비타민도 챙겨먹고 있답니다.  


햇빛은 인간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빛의 명과 암, 그 두가지의 구분만으로 시간과 장소의 분위기는 확확 달라지곤 합니다. 제가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겠습니다.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이 어두컴컴한 암으로 물들여있는 것이 싫습니다. 암에선 대상을 구별하기가 힘들고 청각적인 요소에 더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이걸 놓칠리 없는 연출자들은 그래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공포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밤으로 두나 봅니다. 영화를 떠나서 현실에서도 인간은 밤에 공포를 더 느끼곤 하니까요. 낮과 밤의 길이는 계절에 따라 서로 상대적으로 반비례하며 달라집니다. 낮이 밤보다 긴 시간들, 정확히는 하루의 절반 이상이 낮인 한여름들. 저는 이 시기를 좋아합니다. 어떤 나태를 부려도 해는 절 기다려주있으니까요. 겨울은 그에 비하면 쌀쌀맞은 편입니다. 조금만 늦장을 부리며 침대에서 늦게 일어나보면 벌써 해가 시래기처럼 시들시들해져있습니다. 금방이라도 고개를 넘어갈 것 같은 기세로요.  


금성의 자전주기는 116일입니다. 금성의 하루는 116일입니다. 낮과 밤을 공평하게 반으로 나눈다고 한들, 각각 무려 58일인 셈이지요. 두달씩 낮이고 두달씩 밤이라니, 금성에서 사람이 살았다면, 우린 어떤 하루들을 보내고 있을까요. 글쎄요 하루라는 개념으로 치환해보자면, 저는 잠을 밤에 전부 몰아서 자고 말았을 겁니다. 두달간 자고 두달간 움직이고. 뭐 어디까지나 가정부터 말이 안되는 일이니까, 우리 물리적, 생물적 법칙에선 벗어나 생각해봅시다. 애초에 낮과 밤이 매끄럽게 단 둘로 나뉠 리도 없고, 한낮이 2달 연속된거라면 사람이 당연히 살 수 없겠죠. 지지않는 태양에 금방 타죽고 말았을테니까요. 뭐 아무튼 하루가 116일이라는 걸 곰곰히 떠올려봅니다. 막연해서 오히려 두렵네요. 전 가끔 하루가 너무 짧다고 생각이 들어서 딱 36시간이었어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근무시간은 그에 비례하게 늘어나선 안되고요. 뭐 더 늘어난 시간을 갖고 있는 건 자아탐구의 시간을 폭발적으로 늘려줄 수 있을 것 같긴한데, 116일은 좀 과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컨대 인사말처럼 “내일 또 보자”라는 말을 남용할 수도 있겠네요. 내일은 너무도 먼 날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어제는 정말 예전의 일이 되어버리겠습니다. 어제가 순식간의 나의 역사로 치부되고 내일은 광활한 미래처럼 다가오네요. 문득 지구인이어서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의 24시간이 애틋하게 느껴지네요. 그리고 애정하는 사람들에겐 아끼어서 전하고픈 말 “내일 또 봤음 좋겠다”  


지구인이라 행복한 오늘입니다. 셀라!

낮도 밤도 안온함으로 가득 차있기를 바랍니다 


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

2022년 10월 24일 PM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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