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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망지 Oct 26. 2022

어쩔 수 없이 서울을 사랑하고 있듯

두시부터 다섯시간, 일곱번째 편지



제법 가을 냄새가 나는 9월의 세번째 금요일입니다.     


오늘 아침엔 가을이 왔음을 느끼게 해주는 두가지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저는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으로 음악을 재생하고 샤워를 하러 가는데요, 요즘은 유튜브 뮤직을 이용하고 있어서 첫 화면에 뜨는 여러 곡들 중에 그날따라 마음에 드는 곡으로 재생 목록의 첫 시작을 선택하는 편입니다. 그 이후는 유튜브의 훌륭한 알고리즘이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들을 끝없이 추천해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부쩍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들로 아침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버스커버스커는 봄 노래로 유명한 밴드지만, 저는 왠지 모르게 이 밴드의 노래에선 가을이 잔뜩 떠올라요. 아마 제가 그들의 1집보다 2집을 더 좋아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모두가 아는 구슬픈 보컬의 구성진 가락이 가을 자락을 꽉 잡고 늘어져있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론 가을과도 참 어울리는 밴드라고 생각해요. 오늘 첫 곡은 제 기억컨대 아마 '정말로 사랑한다면' 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노래로 하루를 시작해도 마음이 끈적이지 않는다니, 여름이 다 간 것 같거든요.      



그리고 가을을 체감하는 또 하나. 여름 향수의 향기가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올해 여름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며 그 두달을 온전히 향기로 포장하고 싶어 포르투갈에서 큰맘 먹고 사온 향수가 있습니다. 구찌의 "메모어"라는 향수인데요. 향기를 통해 과거의 기억으로 데려다준다는 어쩌구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나온 구찌 최초의 젠더리스 향수인데, 캐모마일 노트가 베이스노트로 쓰여서 캐모마일 냄새와 맛 둘 다 좋아하는 제겐 최적이었습니다. 선후관계가 어떻든 의미부여를 잔뜩 하고 산 향수라서, 언제든지 그 향을 맡을 때면 22년의 여름으로 돌아올 수 있겠구나, 싶은 그런 기대가 있었어요. 이러나 저러나 제가 정의한 제 올 여름의 냄새니까, 돌아와서도 종종 이 향수를 뿌렸고, 그런 날엔 괜히 아득해지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이 향수 냄새가 어딘가 설익은 느낌이었어요. 이제 여름은 다 지나간 느낌. 날은 제법 느리지만 쌀쌀해지고 있고, 9월은 여름이라 부르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으니까, 여름은 이쯤에서 마무리된 거겠죠. 저는 내일부터 향수를 바꿔 써야겠습니다.     



운이 좋아 오늘도 살아 남았습니다. 어제 믿을 수 없는 기사를 보았어요. 신당역 화장실에서 동료 직원에 의해 살해당한 역무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쉽게 예상이 가듯이 피의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이죠. 몇 번이나 반복되는 데자뷰일까요. 서울은 치안이 좋은 도시랬는데, 도심의 한복판, 환승역도 있어서 번화한 신당역에서, 그리고 함께 직장을 다니던 동료라니, 보편적으로 안전한 요소들이 또 이렇게 믿을 구석이 못 되어버리죠. 저 역시 그 곳을 자주 오갔고, 심지어 범행이 일어나던 날, 그 시각에 바로 옆에 있던 청구역에서 전 아마 오호선을 갈아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미 알던 사람에 의한 살해라면, 제가 유의해야할 건 장소도 아닌 셈이네요. 세상이 위험합니다. 내가 다른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평생을 모를 공포도 있었겠죠?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면 또 지겹도록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됩니다. 하나의 사례로 모든 남성을 일반화하지마라. 남녀갈등을 조장하지 마라. 우린 얼마나 더 많은 여성을 잃어야 눈치 안 보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느끼는 우리의 공포에 대해 떠드는 것도 모조리 입막음 당하곤 합니다. 이유는 단지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하나로 묶여 그런 시선을 받는 게 '기분'이 나쁘니까. '기분'과 '생존'은 같은 차원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할 말이 많지만 이 편지에서만큼은 여기서 줄일게요. 오래오래 살아남읍시다 우리. 힘 있게 분노하길 바라요.   

   


한강이 생각보다도 더 아름다운 강이란 걸 어제 알았습니다. 그간 이 곳 서울을 고향으로 줄곧 한강의 등줄기와 함께 자랐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가까워서 한강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유럽의 여러 강들을 스치듯 지나고 오니, 이 곳 여기, 한강이 그럼에도 가장 아리따운 강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요. 괜한 국뽕으로 하는 말도 아니고, 어제 제가 본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거든요. 번쩍이는 불빛들을 성대하게 품으며 물줄기를 가득 머금은 강은 그 빛들을 이리저리 길게도 번지게 만드는데, 고흐의 팔레트를 엿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파동은 또 동그랗게 동그랗게 퍼져나가고, 그럼 또 물감처럼 번진 빛들은 그 안에서 헤엄치고. 좌측으로는 잠실월드타워, 우측으로는 남산타워. 서울의 유명한 것들은 다 내 시야에 한 눈에 들어오는데, 작고 옹기종기 모여있으면서 또 이렇게 밤에 발광을 멈추지 않는, 이 잠들지 않는 도시가 그렇게도 생명력 있게 느껴지더라고요. 포르투에서 봤던 동루이스 다리와, 지금은 이름도 기억 못하는 유럽의 어느 강의 야경도 미친 듯이 아름다웠는데, 동호대교와 성수대교가 눈에 걸리던 한강도 결코 밀리지 않았습니다.



저와 친구들의 뒤쪽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시간대로 보아, 행색으로 보아, 퇴근길에 한강에 들린 것 같았는데 뒤쪽 벤치에 앉아 조용히 도시락을 챙겨먹더라고요. 식사를 마친 그는 우리의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하염없이 강을 바라봤습니다. 그 순간 어렴풋이 어쩌면 내 미래의 한 장면도 이럴 수가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그게 반갑고도 어색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서울에 한강이 없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을 거라고 했어요. 강은 강으로 존재하고 흐르고 있을 뿐인데, 그걸 밤에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이 물줄기와 이 도시의 생명력을 느끼고 있으니 마구마구 살고 싶어지더라고요. 잃어버린 생동감을 되찾고 싶다는 그런 욕망들요. 그치만 웃기죠, 우리는 퍽 우스갯소리로 한강에서 자살한다. 한강물에 뛰어 들겠다 농담을 하곤 하고, 실제로 마포대교는 그런 불명예스러운 일을 마스코트처럼 지니고 있는 랜드마크이니까요. 그걸 다 알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이 강이 없었다면 이 도시는 참 메말라있겠다. 모두가 죽고 싶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근을 아무리 많이 해서 도시에 불빛이 반짝반짝 가득하면 뭐하나요. 적당히 반사해서 고요히 비춰줄 줄도 아는 강이 도시의 한가운데로 흘러줘야 그 빛에서 뿜어 나오는 고통들도 조금은 상쇄되겠죠. 관성처럼 힘들 땐 물을 찾게 되고, 이 도시 곳곳을 갈 지자로 흐르고 있는 강이 있어 별안간 위안이 되는 삶입니다.     



이번주의 어느날의 밤이었을거에요. 심야버스를 타고 신촌에서 동대문까지 넘어가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시간은 새벽 서너시였고, 집으로 돌아갈 수단은 택시밖에 남지 않았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한밤중이기도 했고, 그날따라 동대문에도 택시가 유독 안 오더라고요.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어플로 택시를 잡아 타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날 술을 많이 마시긴 했습니다. 기억상 소주 1병, 흑맥주 1잔, 칵테일 3잔, 데낄라 2샷. 마지막 데낄라를 마실 때쯤은 이미 몸과 영혼이 분리가 될 지경이었어요. 그런 몽롱한 정신을 붙잡고 귀가는 안전하게 잘 해내고 있었는데, 택시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소리, 그러니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신청곡의 노래가 오히려 또렷하게 들리더라고요. 곡은 영화 라라랜드에 나왔던 Citty of Stars, 그 정신없는 와중에 이상하리만큼 평소보다 잘 들리는 그 노래가 그렇게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 기분과 마음으론 나도 저기 엘에이 뒤쪽 언덕위에서 노오란색 원피스를 빼입고 멋진 탭댄스를 추고 있는 것만 같은데, 현실은 내일 출근을 해야해서 서둘러 택시에 몸을 실은 채 중력에 힘을 맡기고 축 늘어진 몸뚱어리를 지니고 있으니까.      


가끔은 현실이 제일 잔혹한 것 같습니다. 나도 이 도시의 별일수도 있는건데, 그건 모두 취중몽상이니까. 이미 그 영화의 내용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노래가 흘러나왔을 때 그리 반갑고 가슴이 뛰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알잖아요 영화의 주인공들이 어떤 노력과 어떤 선택들을 하는지,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전 요즘 무모한 사람이 멋있어 보입니다. 덜렁 내 꿈 하나 믿고 엘에이라는 꿈의 도시로 가서 무작정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돈벌이는 카페알바로 충당하는 미아나, 돈벌이가 잘 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재즈음악 한 우물을 끝없이 파는 세바스찬이나, 자신의 꿈에 인생이라는 큰 한판을 전부 걸 수 있는 그 객기와도 닮은 용기가 너무나도 부럽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던질 수 있을 정도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꿈이 있다는 것도요. 핑계를 대자면 전 객기는 부릴 수 있는데, 아직 그 재료로 삼을 꿈을 못 찾은 것 같아요. 자꾸 꿈을 "그래 너가 내꿈이야"라고 공인하려고 하니까, 이것저것 재게 되는 것 같아요.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신중해야할 것 같은 부담감과 책임감. 전 제가 한번 걸면 끝까지 걸어낼 거라는 걸 아니까 더없이 신중을 가하게 됩니다. 아니죠 사실, 저는 요즘 부쩍 깨달아요. 이게모두 내가 한국인이라 그래.     



한국인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니까. 이건 한국인의 특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당장 넓게 봤을 때 우리의 국가, 우리의 국적을 말합니다. 이것에 대해선 또 할 말이 엄청 많아요. 최근에 본 "성적표의 김민영"이라는 영화에서도 이 "한국인"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다루는데, 제 생각과 너무 닮아있는 부분이 많아 흠칫흠칫 놀라곤 했습니다. 이번 주의 마지막 편지는 일부러 아쉬움으로 끝내보려고 해요.     

한국인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성적표의 김민영 영화 이야기는 다음주의 첫 편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서울을 사랑하고 있듯, 한국인인 내가 좋고, 한국인인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친애하는 한국인 친구들. 좋은 주말 보내길 바랍니다     



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

2022.09.16 PM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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