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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Sep 25. 2021

꽃의 쓸모

<소소한 감동을 잊은 너에게>

   꽃을 안은 아내가 꽃처럼 활짝 웃는다.     


   손에 꼭 쥐고는 이렇게 예쁜 것은 처음 보는 양, 이런저런 각도로 계절의 만개(滿開)를 살펴본다. 향을 맡고 아기 강아지의 털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레 쓰다듬어본다. 꽃은 집에서 가장 좋은 유리병으로 옮겨진다.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서 기지개를 켠다. 봄은 프레지아, 여름은 수국, 가을은 코스모스, 겨울은 동백…. 나는 꽃도 좋고, 그런 꽃을 보고 좋아하는 아내를 보는 일도 좋아 종종 꽃을 산다. 하루가 포근해진다. 햇살을 온 몸으로 받는 꽃은 내가 세상 가장 비루한 날을 맞이하고 있을 때도 주일 아침 같은 성스러움마저 안겨주곤 한다.  

   

   다소 투박한 내게 꽃의 즐거움을 알려준 이는 엄마였다.     


   나는 엄마가 꾸며놓은 꽃 정원을 보고 너무 예뻐서 눈을 떼지 못하곤 했다. 온 가족이 달 동네 한 켠 자리잡은 낡은 주택에서 움츠러든 그 때, 엄마는 "집이 너무 음침하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꽃과 나무를 한아름 안고 왔다. 엄마는 며칠간 땀을 뻘뻘 흘렸다. 아빠는 물론 아직은 받아쓰기가 인생의 전부였던 형과 나까지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그 결과 마당, 옥상, 마당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모두 사계절 내내 꽃을 품게 됐다. 그 집에 입이 있었다면 "잊고 있던 다홍치마를 입혀줘 고맙다"고 했을 것이다. 


   가장 감동적인 풍경은 처마 끝자락에 그물망을 이어 만든 나팔꽃 하늘밭이었다. 해가 뜨면 흰 나비와 무당벌레가 날아왔다. 달빛에 젖어들면 마당이 풍덩 빠져들어야 할 것 같은 남색으로 넘실댔다. 마당 한가운데서 코를 박고 서늘한 꽃향기에 빠져들고 싶을 정도였다. 엄마는 가정집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이 나팔꽃일 것이라고 했다. 나는 식물 책을 읽고, 나팔꽃의 꽃말이 '기쁜 소식'이란 점을 알았다. 가끔 까치가 나팔꽃에 앉을 때면 진심으로 설렜다. 


   "이건 너가 책임지는 거야." 그 무렵, 엄마는 내게 이제 막 세상 빛을 본 봉숭아가 담긴 화분을 건네줬다. 착실하게 자란 봉숭아는 세상 가장 눈부신 붉은색을 안겨줬고, 엄마와 내 손톱에 그 찬란함을 전해줬다. 엄마는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집안 곳곳 꽃과 나무들에 반짝이는 장신구를 둘러줬다. 언젠가 아빠와 산타클로스가 머리를 맞대 함께 쓴 편지를 받았다. 그때 산타클로스도 "이렇게 예쁜 정원이 있는 집은 처음 본다"는 문장을 남겼다. 엄마도 이 글을 보곤 나만큼 기뻐했다.     


   이렇게 꽃과 자란 나는 꽃에게 위로를 받는 법도 배웠다.     


   초등학생 시절의 종종 지병처럼 어지럼증을 앓았다. 증상이 훅 덮칠 때는 학교 생활이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틀림없이 어지럼증이 찾아올 것으로 점쳐질 땐 담임 교사에게 이야기를 해 조퇴를 했다. 운이 좋으면 비틀거리면서 집을 찾아갈 수 있었지만, 공습이 예상보다 빠를 때는 길가에 쪼그려 앉아 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그럴 땐 길가에 피어있는 꽃을 보는 거야. 예쁜 것을 보면 아픔도 덜하고, 시간도 금방 가거든." 엄마는 내게 모든 기다림의 순간 꽃을 보는 법을 알려줬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어지럼증을 참지 못해 골목길에서 휘적거릴 때는 개나리를 보고 민들레를 봤다. 그러면 덜 외로워졌다. 나보다도 더 작고 생기 있는 아이들에게서 용기도 얻었다. 


   그런가 하면, 대학생 때는 이런 적도 있었다. 뒤늦게 찾아온 속칭 ‘대2병’을 앓고, 그렇게 나를 한 없이 동정한 시기였다.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나는 늘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존재였다. 뭘 해도 안 될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그땐 고개를 들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우울감은 돼지처럼 뒤룩뒤룩 살이 쪘다. 그렇게 한 달 넘게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나 자신을 망치는 방법으로 세상에 반항하던 시기였다. 


   이제와서 돌아보면, 그 당시 믿었던 몇몇 사람에게 등 돌려진데 대한 충격으로 더 이상 내 공간 밖으로 나가는 데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삶에서 도망치기 위해 기약 없이 집 안에 틀어박혀본 사람은 안다. 말하는 법은 물론, 거울 보는 법에 심지어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법도 잊어버린다는 것을. 4월의 어느 날, 투박한 동네 친구들이 그런 나를 집 안에서 억지로 끄집어냈다. 그때쯤 나는 반항할 기운조차 없을 만큼 늘어져있었다. 그들과 함께 찾은 곳은 벚꽃이 만개한 큰 공원이었다. 


   온 세상이 분홍빛이었다. 걷는 사람, 뛰는 사람,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 나들이 온 가족, 손을 마주잡은 연인 등 모든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벚꽃을 즐기고 있었다. 무언가를 견디고 있을 그들에게, 벚꽃은 성심성의껏 꽃잎을 뿌려줬다. 친구들은 폐인이 돼 계단을 후들거리면서 겨우 내려가고 있는 나를 보고도 그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그간 왜 연락을 받지 않았는지도 굳이 궁금해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벚꽃 명소를 보여주겠다"며 나를 이끌고 갈 뿐이었다.      


   해가 질 무렵, 우리는 싸구려 맥주를 한 캔씩 들고 벚꽃나무들 틈에 빙 둘러 앉았다. "야, 힘내라." 친구들이 입을 열었을 때, 주황색 물감이 쏟아진 것 같던 하늘에서 벚꽃잎이 후두둑 떨어졌다. 손을 모으면 벚꽃잎으로 된 비가 한가득 고일 듯했다. 그제서야 울음이 터졌다.   

  

   누군가는 처가집에 가는 것을 꺼린다고 하지만, 나는 종종 아내와 함께 처가집에서 휴가를 보낸다. 팔레트보다 더 다채로운 꽃을 볼 수 있는 멋진 정원이 딱딱히 굳은 마음을 뭉근하게 해준다.     


   창원 가장자리에 있는 처가집은 널찍한 마당을 갖고 있어 멋스럽다. 반짝이는 잔물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는 뜻으로 '윤슬정'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 얼마나 좋니." 아버님과 어머님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꽃을 자랑한다. 호기심이 많은 아내는 그런 부모님에게 졸졸 붙어 꽃의 이름을 묻고, 그 자태와 정성에 끊임없이 감탄한다. 영상으로 오랫동안 담아두고픈 장면이다.     


   꽃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내게, 이와 관련한 또 다른 행운도 있다. 집 근처에 기가 막히게 예쁜 꽃을 섞어파는 꽃집이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쓴 날에 꽃 한 다발을 샀다. 꽃을 안고 꽃처럼 활짝 웃을 아내를 위해, 또 그런 꽃과 아내를 보고 더욱 행복해질 나를 위해.



구스타프 클림트, 꽃이 있는 농장 정원

   꽃꽂이가 잘 이뤄진 꽃다발 같은 곳입니다. 빨간색과 노란색, 흰색과 보라색 등 각양각색의 꽃이 풀밭 위에 활짝 피었습니다. 서로 다른 무리에서 생활하던 풀벌레 식구들도, 이곳에선 서로의 취향에 맞춰 화목히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바라기와, 그 꽃을 감싸주는 널찍한 잎들이 마치 사람의 형상처럼 보입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가슴 깊이 사랑하는 이에게 꽃을 선물한 경험이 있겠지요. 또, 꽃을 받은 그 사람은 분명 꽃처럼 활짝 웃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클림트가 그 사람을 본따 이런 붓질을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혹은 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본 클림트가 자신의 마음 속 피어나는 꽃들을 생각해 그림을 그린 게 아닐까하는 상상도 합니다. 

    

   탄생 배경이 어떻든 간에 참 향기로운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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