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같은 분홍색 바다를 봤다

헨리 포타스트, chums

by 이원율

분홍색 바다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이 고개를 내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는 한 작은 숙소에서 짐을 풀었다. 나와 아내는 이번 휴가의 설렘 덕에 그간의 비루함을 버텨왔다. 낡은 곳이었지만 눈만 뜨면 바다가 보였다. 눈을 감고 코만 씰룩여도 소금기를 품은 바닷바람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숙소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나 대신 아내가 선물처럼 찾아낸 공간이었다. 나는 그때쯤 일 때문에 유독 지쳐있었다.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내 몸에서 말라비틀어진 파편이 하나, 둘 떨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평일 교회의 한쪽 구석 벽을 밝혀주는 촛불처럼, 부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했다. 세상 모든 것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아내는 그런 내게 딱 맞는 숙소를 찾아냈다.


우리는 숙소 근처 가정식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오늘 운전 중에서 본 이름 모를 꽃과 열매들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런 다음 귤과 김이 폴폴 나는 차를 마시면서, 앞으로 함께 해야 할 미래를 그려봤다.


그리고 이날 늦은 오후, 숙소로 돌아와 창 너머를 보고 멍하니 보고 있던 우리는 분명 전설 같은 분홍색 바다를 봤다.


있는 힘껏 내달리는 듯한 붉은 노을, 장난감을 문 강아지의 속내만큼 투명한 바다가 맞닿는 순간, 온 세상이 분홍빛으로 물든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분홍돌고래가 등장하는 신화는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때마침 신화처럼 돌고래가 펄쩍 뛰어올랐다면, 분명 분홍빛의 자태를 드러냈을 것이다. 숙소의 바닥마저 아련히 물들었다. 파자마 차림의 나와 아내는 손을 잡은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분홍색 파도가 부서지면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한 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짧아지는 향 막대와 같이, 내 삶의 비루함도 서서히 가벼워지는 듯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내게 바다를 가르쳐준 이는 아내라고. 여행길에 놓인 우리의 숙소에는 늘 바다가 함께 했다.


또 언제였을까.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한 숙소에서 바다를 보던 중 심상찮은 일을 겪었다. 아침 햇살이 금가루처럼 은은히 떨어졌다. 윤슬 품은 바다는 묵묵하고 잔잔했다. 눈을 감고 있는 아내는 바로 옆 흰색 이불을 코끝까지 덮어쓴 채 옅은 숨소리를 뱉어냈다. 온 세상이 아직 잠에 취한 듯했다. 나는 내 몸이 기분 좋은 미열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엄마에게 들킬 것을 알면서도, 숨죽인 채 옷장 안에 숨어있는 듯한 따뜻함이었다.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바깥 공기가 찾아온다. 저 멀리 세상 끝에서부터 온 세상을 품은 물결이 다가온다. 나는 충전기에 꽂힌 스마트폰처럼, 서서히 충전되는 중이었다. 이 느낌을 이 이상으로 정확하게 옮길 수가 없다.


“왜 바다를 좋아해.”


아내에게 물은 적이 있다. "넓고, 푸르고, 시원해서 좋아." 눈앞에 바다가 있는 양 즐거워하면서 대답한다. 그래.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로 이보다 더 알맞은 말이 있을까.


아내를 알기 전부터도 나는 종종 바다를 찾아가기는 했다. 가슴이 꽉 막혀 들어 더는 살 용기가 없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자전거 한 대를 빌려 타고, 무작정 지방의 해안도로를 내달렸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을까. 왜 하필 또, 또 나여야만 하는 것일까. 며칠을 달렸다. 아무도 없는 그 길 위에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삶을 원망했다. 몇 번을 울고 나서야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치기 어린 나를 부모처럼 감싸줬던 것은 끝없이 펼쳐진 길, 묵묵히 따라와 빛을 뿜어주던 해와 달 뿐만은 아니었다. 바다가 있었고, 물결도 있었다. 부서질 줄 알면서도 그럼에도 매번 부딪히는 파도가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미지(未知)로 가득하다는 점을 알려주는 짙은 남색 바다도 함께였다.


가끔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않을 때는 습관적으로 머릿속에서 한 장면을 그려본다.


은퇴를 맞은 아내와 함께, 분홍색 바다를 낀 조용한 동네에서 남은 생을 보내는 삶을 상상한다. 따뜻한 양파 수프를 내어주는 레스토랑, 겨울이면 딸기 파르페를 파는 카페, 모든 이의 사랑방이 되는 낡은 교회가 있다. 블루베리 베이글을 파는 빵집과 이 동네를 배경으로 한 잡지를 훑어볼 수 있는 독립서점도 있다. 참견을 좋아하는 경비원, 평소에는 말이 없지만 맥주를 마시면 옛 시절의 모험담을 늘어놓는 등대지기, 길고양이를 지나치지 못하는 옆집 부부가 있는 곳….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의 동네처럼, 따로 음악을 틀 필요도 없을 만큼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마을이다.


물론, 그런 동네에서 산다고 해도 속상한 일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넘실대는 분홍색 바다가 곧장 해열제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기왕 여생을 보내는데,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리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Chums, Edward Potthast, oil on canvasboard, 12 x 16, Keny Galleries..jpg 헨리 포타스트, chums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낮은 곳으로 중 일부 발췌』


분홍색 파도가 차츰 밀려옵니다.


흰옷을 맞춰 입은 두 아이는 차츰 바닷물에 스며듭니다. 처음에는 신발이 젖습니다. 그다음 종아리와 허벅지 위로 바닷물이 스며들어오고, 이내 가슴께까지도 파스텔톤의 흐름에 스며들 것입니다.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겠지만, 그런데도 그간 생애 중 가장 심각한 것을 쥐고 고민에 빠진 듯도 합니다. 그런 이 아이들에게, 장밋빛 윤슬을 뿜어내는 바다는 분명 큰 도움을 줬을 것입니다. 그런 상상도 합니다. 엄마가 신발에 담긴 흙과 바닷물을 털고 가자고 하자, 그러기 싫다고. 이 바다를 가장 가까운 곳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고 투덜대는 모습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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