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에 ‘사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해졌어요. 처음엔 막연히 저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사는 게 뭐죠?’ 수십명에게 질문했지만 그들의 답변은 저를 실망시키고 당황시켰습니다. ‘회일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다 이런 식이였지요. 내 질문의 의도는 ‘산다’라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고 ‘산다’의 의미를 정의하고 싶었던 것인데, ‘단순히 저보다 나이만 많았던 이들’은 ‘사는게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힘들죠?’로 이해한 것이였죠. 걱정해준 것이야 고마웠지만 제가 찾던 답이 아니였습니다. 그 후엔, 막연히 나이가 많은 이들이 아닌 ‘현명한 이들’의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먹는 것은 자동이고, ‘지혜를 먹는 것’은 수동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나이를 먹는것과 지혜로와 지는 것은 정비례하지 않는 것이였죠.한참을 고민하던 어느 아침, 문득 깨달았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습니다. 산다는 것은, 그러니까 죽어간다는 것이죠. 사는 것은 자기 목숨을 무엇인가에 바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이들이 다니기 싫은 직장에, TV에, 남을 비난하고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데 자신의 목숨을 바치다 죽습니다. 하루 하루가 모여 일년을 만들고 10년을 만들고 인생을 만듭니다. 내 인생의 의미를 찾고 내 꿈을 찾는데 목숨을 바치고, 그렇게 내 목숨을 바쳐 찾아낸 내 꿈을 이루는데 내 목숨을 바쳐야 하지 않을까요?
어느 책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스승과 제자가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하루는 제자가 헐레 벌떡 뛰어가 스승에게 다급히 말했습니다.
‘스승님 어떻게 하죠!! 제 하나뿐인 친구가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여유로이 말했습니다.
‘너는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또 다른 책에선 이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보면 나는 생각한다네. 저 아이도 곧 죽겠지.’
물론 갑자기, 처음 이런 생각을 접하는 분은 막연히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죽음은 당연한 것이고 피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것을 직시하면 결국 사는 것은 매일 매일 죽어간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겁니다.
라이언 킹이라는 영화에서도 아기사자 심바의 아버지가 자연을 바라보며 아기사자를 교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심바. 나도 언젠가 죽게 된다. 내가 죽으면 나는 흙이 되지. 그 흙에서 식물이 자라나고, 식물을 초식동물들이 먹지. 우리는 그 초식동물을 먹고 살아간단다. 결국 인생은 순환이란다.
저는 오늘 밤을 이 글을 쓰는데 제 인생을 바쳤습니다.
오늘 하루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어디에 바쳤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