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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May 23. 2021

병원을 알리는 대신, 많은 이들에게 의미가 되자.

광고를 고민하던 한 개원의가 도달한 결론


 

  이두형, 하나 뿐인 나의 이름을 걸고 그 무게감을 느끼며 정식으로 병원을 시작한 지 2주차의 마지막 날이 저문다. 예상했던 정도를 훌쩍 넘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병원을 들러주시고 깊은 마음을 나눠 주시는 중이다. 과분할 따름이다.




  누구나 자신의 이상과 현실을 고민한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치료적 세팅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만나고 싶다.' 는 이상만으로 월세와 생활비를 해결할 수는 없다. 쌓아둔 부도 없고 어떠한 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간 조그맣게 모은 돈과, 그에 수 배가 넘는 신용을 통해 진료실을 꾸리는 경우라면 그 현실에 대한 조바심은 더욱 가중된다. 그 초조함에 대한 보상으로, 이미 자리를 잡으신 수많은 선배 원장님들을 찾아 뵙고 조언을 구했다.


  현수막을 게시하는 법, 네이버 검색 순위를 올리는 법, 대형 전광판과 지하철, 버스 광고를 활용하는 법, 심지어 인근 아파트의 거울에 이름을 새기는 법 까지 다양한 노하우를 들었다. 집에 들어와 몇 시간 동안 들은 방법들을 노트북에 정리하는 손길에는 불안이 가득했었다.


  그 초조함을 들켰나 보다. 하루는 먼저 개원을 한 의국 직계 선배가 나를 불렀다. 그 불안을 십분 이해한다고. 모두가 통과의례처럼 거치는 과정이라고 나를 다독이며 잔잔히 이야기를 해 주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안그래도  돼. 어떻게 병원을 알릴까, 기술적으로 뭘 할까 굳이 고민하지 말고 그냥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할애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으로, 어떻게든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따뜻하게 전해 드린다고만 생각해. 그동안 배운 대로 또 해온 대로. 그렇게만 하면 필요하신 분들은 어떻게든 여기를 알게 되시고 저절로 찾아주시게 돼."


  집에 오면서도 어쩐지 그 말이 계속 생각이 났다. 그 이후로 많은 돈이 드는 광고에 대한 고민은 내려두었고, 이름 석자 크게 들어간 현수막 하나만 달았다. 그리고 병원을 여는 마음, 찾아 주시는 분들을 대하는 마음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3년 이상 오랜 기간동안 꾸준히 운영해 와서 참 소중하고 애착이 가지만 내 블로그의 활성도 자체는 쑥스러울 정도로 낮다. 하루에 몇십 분, 많아도 수백분 정도가 방문해 주신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도 반갑고 고마운 숫자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통해 병원 홍보를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오랫동안 교류한 이웃분들 중에는 파워블로거 분들도 많은데 그 분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나 보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분들께서 댓글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여러 방법들을 알려주셨다. 그에 따라 제목에 대구 정신과 라는 키워드를 넣고, 글에 지도 링크를 추가했다.


  그리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시진 않았지만 꾸준히 써 온 시간이 3년 이상 되다 보니 쌓인 글도 수백 편 이상이나 되었다. 며칠에 거쳐 하나 하나 글마다의 제목을 바꾸고 링크를 추가하며 그 글들을 쓸 때의 마음을 다시 만났다. 개원을 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때 부터 써 온 글들이다.  진료실 뿐만 아니라 글로도 필요하신 분들께 마음을 전하겠다는 초심이 새삼스레 떠올랐다.이 글들이 혹 책 한권이 될 수 있을까? 두근거렸던 소박하면서도 거대했던 꿈도 생각났다.


  성인이 아닌 지극히 범인인지라 당연히 글을 씀으로써 내 삶에도 유익한 것들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그 마음이 부끄럽진 않다. 쓰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과 행복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부족한 글을 통해 위로 받고 조금이나마 마음을 데운 분들이 늘어남에 말미암기 때문이다. 나를 내려놓으면서까지 타인을 위하지는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란 그렇게 읽는 이들도, 나도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나온 시절이었고, 그 덕에 많은 인연과 기억이 남았다.




  온라인 마케팅, 특히 검색자가 많은 네이버 마케팅에는 많은 돈이 든다고 들었다. 병원 개원 초기 수십 통 이상의 온라인 마케팅 제안 전화를 받았다. '대구 지역 정신과를 검색하면 원장님 병원은 거의 끝에서 노출이 되셔서 실질적으로 환자분들이 보실 수 없으신 것이나 마찬가지신데 괜찮으실까요?' 라는, 개원 초기 원장의 불안을 자극하는 다소 무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런데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대구 정신과 를 검색하면  활성화가 안된 내 블로그의 글이 블로그 검색 란에서는 가장 상위에 뜬다. 지금도 지도 검색에서 내 병원은 한참 밑에 있어 거의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블로그 글을 읽으신 분들이 하나 둘 진료실 문을 두드린다. 취미삼아, 그리 많이 읽어주시지 않음에도 속마음을 풀듯 써온 블로그 글들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을 지탱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마케팅적인 측면으로 네이버 블로그의 순위를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알기에 아직도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세상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아서 고마웠다. '지금 처럼만, 단지 초심과 진심만 잘 간직하며 묵묵히 과정을 이어나간다면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한 편의 글을 쓰더라도 읽으시는 분들에게 의미가 있는 글을 쓰자, 하나의 영상을 만들더라도 보시는 분들의 시간이 의미가 있기를 바라자. 따로 나를 알리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쌓인 의미가 알 수 없는 과정을 통하여 내 삶을 이어줄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믿음만을 잘 간직하자. 그리고 그 믿음에, 그동안 써 온 글들에 부끄럽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 광고에 대한 고민 대신 그 다짐을 되새기기로 했다.


  그렇게 일찍 잠든 가족들이 내게 선물한 한 시간의 주말 여유 동안 보고 싶었던 논문을 몇 페이지 읽고, 글을 쓴다. 내일 진료를 예약하신 분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이 진료실 문을 두드리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주저함을 넘어왔음을 알기에, 그 마음들과 진심으로 마주하자 한 번 더 다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떠올릴 마음이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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