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 정신과 의사 Sep 22. 2019

힘들다는 그 말, 이제는 더 이상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가 아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지친 분들은 종종 세상을 보는 눈, 마음의 틀도 어두워 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필요 이상으로 타인의 시선이 부정적일 것이라 의식하고, 사실 이상으로 삶을 가혹하게 느낀다. 이러한 마음 속 시선의 왜곡이 관찰될 때면, 인지 치료의 원리와 방법론에 입각해서 ‘과연 우리의 삶이 실제로 그렇게 모질까요? 최근 힘든 마음, 감정에 영향을 받아 그렇게 생각이 치우칠 순 없을까요?’ 라며 환자와 함께 그의 생각과 감정을 되짚어 보곤 한다. 이러한 시도는 종종 경과의 호전, 마음의 치유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면담을 하다 보면, 겉으로 티를 내진 않지만 그들이 말하는 기가 막힌 사연에 마음속 한 구석이 턱 막힐 때가 있다. (구체적인 언급은 할 수 없지만) 불의의 사고로 젖먹이 아이를 두고 사지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든지, 몸 돌볼 새 없이 천신만고 끝에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겨우 행복을 고민해 보려는 찰나,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건강검진에서 암 소식을 들었다든지. 뉴스가 아닌 직접 접한 이야기들이며, 일부일 뿐이다. 형언할 수 없는 부조리가 덮쳐 황망한 이들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는 굳이 뉴스를 뒤적일 필요도 없다. 신의 존재를 의심할 만한 순간은 의외로 우리 주변에 잦다.


그들에게, ‘그래도 세상엔 좋은 면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일들 때문에 다른 삶의 모든 것 까지 슬프게 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라고 건네는 말이 얼마나 공허할 지를 고민했다. 아니, 모든 것에 앞서, 나부터 마음속으로 ‘나 같아도 감당 못하게 힘들 것 같다.’ 라며 그들의 심적 고난에 십분 공감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마음에 완전히 빠져들고 그들의 감정에 휘둘린다면 (sympathy) 이는 적절한 정신과 의사의 자세라 할 수 없다. 그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되 (empathy) 연민하거나 빠져들지 않고, 객관적인 상황을 정리하고 도움이 될 방책을 제공하며,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정신과 의사의 책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이 공허했다. 그들의 마음은, 단지 조금 더 긍정적인 시각을 독려함으로써 밝아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그들의 삶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나아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나는 그러한 접근이 효과를 거둘 것이다, 그것만으로 그들이 행복해 질 수 있다 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가?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맥락적 행동 치료, 수용 전념 치료를 공부하며 다음의 화두들을 접했다.


‘증상을 제거하지 못하는 이유가 아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찾지 못하는 이유’,

‘내 생각이 정당하다는 이유가 아니라, 그 이유를 넘어서 내 삶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


삶에서 어려움을 겪고, 슬픔과 불안을 경험하는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 가혹한 세상을 객관적,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런 삶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나아가기를 원하는지를 고민해 보는 것을 주문하는 문장들 이었다. 그리고 이 화두들이, 내가 진정으로 나를 찾았던 이들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 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가고 싶은 모습이란, 단지 돈을 얼마나 벌고, 어떤 집에서 무엇을 먹느냐의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는 대개 슬픈 일에 슬프듯, 기쁜 일에 온전히 기쁠 수 있기를 원한다. 두려움이 아닌 기대로 내일을 맞을 수 있기를 원하고, 나 자신이든, 타인이든, 무언가이든, 깊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가치를 향하고 싶은 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지에 대한 근원적인 이야기다.


우울한 기분을 들뜨게 하고 불안을 진정시키는 것을 넘어, 그들이 그러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우는 것. 어떤 상황의 어느 누구와도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을 함께 그려 보고, 지금 이 순간에서 그에 다가가기 위한 어려운 한 걸음을 같이 내딛는 것. 내가 그리고 또 진정으로 원했던 정신과 의사의 모습이란 그런 것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공허한 이야기밖에 돌려주지 못해 미안했던, 지금도 생각나는 그들을 처음 만난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이제는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래요. 당신이 힘들다는 그 말, 이제는 더 이상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분명, 같은 상황이라면 저 역시 그렇게 힘들 겁니다. 나는 당신의 빚을 대신 갚아줄 수도, 당신의 두 다리를 찾아줄 수도, 당신에게 남은 시간을 늘려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힘들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굳이 오늘의 삶이 그래도 괜찮은 이유를 억지로 찾아 둘러대는 대신,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나가고 싶습니다. 비록 출발점은 만만치 않지만,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남은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내딛을 수 있는 한 걸음은 어떤 것일까요?'



(사진 출처: http://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한 당신과 나누고픈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