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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너무 불안해요.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정신과 방문이 이런 걸로도 가능할까 왠지 좀 창피해서 우선 익명의 힘을 빌려봅니다.


저는 아이도 있고 남편과도 사이가 원만해요 행복하다 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불안합니다. 남편이 어느 날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당장 빠른 날이 아니여도 언젠가는 남편이 사고나 불행한 일 때문에 갑자기 없어질 것 같고 사별하게 될 것 같고 혼자 매일 같이 불안합니다...


왜 그런지 정말 모르겠어요. 남편한테는 얘기해본적은 없습니다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고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인데 왜 머릿속에서 자꾸 의식하지 않아도 그려지고 그럼 그 순간은 심장이 너무 뛰고 힘드네요. 생각하지 말아야지 노력해도 생각이 아니고 그냥 불현듯 치고 올라와요.... 어느 순간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이 깨지거나 무너져 버릴 것 같아요. 그리고 비참하게 될 것 같아요.


정말 이상해요. 이제 이런 말도 안되는 것 때문에 괴로울 지경입니다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불안을 느끼고 괴로워하고 가슴 조리는지 너무나 힘듭니다... 무슨 요인에서 제가 이렇게 된 걸까요. 가슴이 답답합니다.... 너무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도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이유 없는 불안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본인이 생각 하시기에도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고, 떠오르는 두려운 생각들이 충분히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알면서도 밀려드는 초조함을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안은 우리 마음 속 위험에 대한 경보입니다. 그렇기에 대개는 눈앞에 닥친 위협, 혹은 예상되는 위협에 대해 발현되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여러 심리적, 혹은 신경학적 이유로 구체적인 위협이 닥치지 않아도 미리 경보가 작동될 수 있습니다. 어떤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불안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경보가 마음속에서 울려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정과 생각은 상호작용을 합니다. 평소라면 별 거슬림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일도 내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더 나쁘게 느껴지고, 안 좋은 생각들이 더 많이 떠오르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슬픈 생각들이 슬픈 감정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우울한 감정이 우울한 생각들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불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속에 이유 없는 불안이 떠올랐다면, 마음은 그러한 불안에 합당한 생각들을 찾아냅니다. 사연자분의 경우에는 남편 분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란 비합리적인 걱정이 여기에 해당되겠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합니다. 생리적으로 감정은 가만히 두면 극에 다달았다가 점차 둔화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에 대한 생각의 살을 붙여나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불안한 감정이 두려운 생각을 만들어내고, 그 생각이 다시 불안을 촉발하는 악순환이 시작하면 불안은 끝없이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마치 곧 죽을 것만 같은 (이 역시 비합리적이지만, 경험할 당시에는 정말로 그럴 것만 같이 느껴지지요.) 공포, 호흡 곤란, 질식감 등을 동반하는 공황 발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사연자분께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두려운 생각이나 감정이 엄습할 때는 이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이러한 생각을 '안하려고' 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그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려' 주세요.


지금부터 5초간 머릿속에 북극곰 생각을 하지 말아보세요. 5,4,3,2,1.


어떤가요? 하얀 곰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생각이 더 떠오르시진 않나요? 사람의 마음이란 억지로 누르려고 할수록 그 생각이 더욱 떠오르는 특성이 있습니다. 불안한 감정과 그에 동반되는 생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불안할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 이런 생각들은 말도 안되는 거야!, 이제 이런 생각들을 그만해야 해!' 라고 하면 할 수록 그러한 생각과 감정들은 더욱 커집니다.


그러한 생각이 맞는지 틀린 지 판단하려는 대신, 혹은 이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는 대신 그저 그러한 생각과 감정이 마음에 찾아왔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또 알아차려 주세요. '너무 불안해 미치겠어.' 대신 '아, 또 마음에 불안하다는 감정이 찾아 왔구나.' 라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알아차려주세요.


이유라도 명확히 알면 좋으련만, 왜 불안한지 모르는 불안은 본디 이유 있는 불안보다도 더욱 두렵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혹은 상상하지 못하는 어떤 일이 일어나버리는 건 아닐까 란 생각에 몰입하는 대신, 애초에 내 마음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불안이 종종 일어난다는 그 현상 자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어 보세요.


두 번째로, 나 자신의 마음의 틀에서 벗어나 나를 바라봐 주세요. 지금 머릿속에 내가 떠올려 볼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현명한 사람을 한 명 떠올려 보세요. 부모, 평소 흠모하던 친구, 존경하던 선생님 ...누구든 좋습니다. 그 사람이 나와 가장 가까운 단짝이고, 지금 내 마음을 바라봐 준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그는 지금, 불안해하는 내게 어떤 이야기를 건넬까요?


그리고 반대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남편이든, 자녀분이든, 베프든, 누구든 좋습니다. 지금 떠오른 그 사람이 사연자분과 똑같은 마음과 생각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사연자분께서는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넬까요? 그렇게 떠오른 이야기를, 나 자신에게 그대로 해 주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연자분께서는 제게 '이유 없는 불안이 문제에요. 삶은 다 괜찮아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할까요?' 라 여쭤 보셨습니다. 그에 대해 저는 '이유 없는 불안도, 우리 마음이 이루어진 원리 상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는 꼭 문제라기보다 불편한 것이며, 이를 문제 삼지 않고 붙잡지 않은 채 그저 알아차리다 보면 그 불편함이 조금씩 줄어갈 수는 있습니다.' 라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문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에 방해되는 불편함을 덜어낸다.' 는 관점에서, 경험하시는 불안에 대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셔서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시는 것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한결 평안한 하루, 그리고 말씀하신 삶의 소중함을 온전히 느끼시는 하루가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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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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