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픈 아빠가 나쁜 아빠는 아닙니다.

치료가 잘 되지 않는 통증 질환과 삶.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안녕하세요. 두 아이의 아빠로 살고있는 40대중년 남성입니다.

2년 전쯤 사랑이 발치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확실한 것은 아나지만요) 안면(삼차)신경통으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 병을 고쳐보고자 여러병원을 전전했고 통증에 따라오는 우울증에 힘들어하였습니다. 나에게 이런 병이 온 것에 대한 후회와 스스로에 대한 원망, 가장으로서 힘없고 무기력하며 두 아이들에게 한껏 사랑을 주지못하고 힘들어만 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에 대한 미안함, 아내에 대한 미안함은 두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2년여를 지나왔고 지금은 통증은 여전하지만 신경과 약(항경련제)을 먹으며 최대한 병원방문을 자제하고 다른일들에 몰두하려고 노력하며 지내오고 있습니다. 발병초기의 극심한 우울감은 어느정도 이겨내고 있지만 아직도 더 많이 아픈날은 통증으로 인한 우울감까지 겹쳐져 저를 힘들게 하고 자존감을 떨어트리고 가족에게도 힘들어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게 되어 그 좌절감에 우울감은 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병이 쉽게 저를 떠나리라고 생각은 하지 않고 해결택을 선생님께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 신경정신과 선생님으로서 이 통증과 우울감을 이겨내기 위하여 저에게 주실 수 있는 조언이나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한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래도 이런 만성통증으로 인해 겸손함을 배웠고, 원래의 불안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안정적인 지방공기업에 재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아내와 두 아이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가슴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비온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격언을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으며 선생님의 조언이 있으시다면 제가 앞으로 저의 삶을 힘내서 살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 같아 글을 남겨봅니다. 감사합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경험해 본 이가 아니면 감히 알지 못할 그 통증에 대해 감히 누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으로 인해 고생하시는 분들을 위한 말씀을 드릴 때, 드리는 말씀이 자칫 ‘그 통증을 최대한 신경 쓰지 않도록 해 보세요.’ 라는 메시지로 읽힐까봐 늘 조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들을 전달 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사연을 듣는 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사연자분의 어려움, 신체적 통증은 사연자분의 어떤 잘못이나 실수로 인한 것은 아닙니다.

삶에서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찾아냅니다. 다음에 같은 아픔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를 복기하는 기전과, 내가 관여된 원인을 찾으면 지금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무의식적인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 나의 잘못에 기인하지 않은 아픔들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내 삶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아주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이러한 어려움과 나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노력합니다. 생각은 끝없이 이어지고, 나의 마음은 명확하진 모르겠지만 무언가 내가 잘못한 건 분명하다는 죄책감과 답을 찾을 수 없는 고민 사이를 맴돌게 됩니다.

혹 사연자분께서도, 통증과 연관된 사연자분의 잘못, 혹은 통증을 떠나 살아오며 무언가 소홀하거나 잘못한 부분을 찾는 생각을 반복하시진 않는지, 통증을 어떤 벌로 느끼시진 않는지, 나의 잘못이 아닌 아픔에 대한 원인을 고민하느라 답이 없는 생각을 맴도시는 건 아닌지 한 번 쯤 돌아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사연자분의 속상한 마음이 실제로 사연자분께서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인지, 사연자분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가장의 모습에 맞지 않아서 인지를 생각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사연에서 말씀 주신 ‘스스로에 대한 원망, 가장으로서 힘없고 무기력하며 두 아이들에게 한껏 사랑을 주지 못하고 힘들어만 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에 대한 미안함, 아내에 대한 미안함’ 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사연자분께서는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계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족이 기대하는 것은 늘 웃는 모습만 보이고 경제적인 지지를 해주는 누군가가 아니라, 그냥 ‘우리 아빠, 우리 남편’ 입니다.

가족은 서로의 삶을 위해 역할을 해주려 모인 사회적 관계와는 다릅니다. 때로 남보다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가족이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그가 내게 돈을 벌어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곳에 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연자분을 괴롭히는 것은 아마 실제적인 가족들의 힘겨움이라기 보다는 ‘힘든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좋은 모습만 보이는 것이 가장의 역할이야.’ 라는 스스로의 생각은 아닐 지를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아내분이나 아이가 사연자분과 같은 아픔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사연자분은 그들에게 어떤 생각이 드실까요? 네가 힘든 모습을 보면 나까지 지치잖아, 정말 밉다, 이젠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라는 생각이 드실 지요. 아마 아닐 것 같습니다.

아마 아내분과 자녀분은 이미, 그토록 고통스러운 병에도 불구하고 들어가기 어려운 직장에 다시 취업을 하시고 가족들을 위해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나가시는 사연자 분께 고마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으신 사연자분의 마음이 잘 전달되어, 전보다 사연자분을 더욱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힘드실 이유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지금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주체가 무엇인지는 한번 쯤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컨대 말씀하신 ‘미안함’ 은, 실제로 나의 투병으로 인해 가족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기 때문에, 혹은 실제로 가족들이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 속 ‘내가 가족들에게 해 주어야 마땅한 일들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 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은 아닌지는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연자분의 마음속에는 아마 이상적인 아버지의 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아프지 않고, 늘 아이들에게 좋은 모습, 건강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아빠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나 스스로의 생각, 관념입니다.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아픈지 그렇지 않은 지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지, 그 사랑이 전달되는 지 입니다. 아픈 아빠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통증이 밀려올 때는, 아빠가 아파하는 것이 너 때문이 아니라 통증 때문이라고 이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 아빠는 때때로 아플 때가 있어서 그럴 땐 너를 잘 돌보아주기 힘들 수도 있지만, 언제고 너를 사랑한다고도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다.

고통에 힘겨워한다고 해서 ‘나쁜 아빠’ 는 아닙니다. 아픔이 여러 현실을 어렵게 할 수는 있지만, 사랑할 권리를 앗아가지는 못합니다. 아이들에게 나쁜 부모란 아픈 부모가 아니라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입니다. 사연자분께서는 그토록 고통으로 인해 힘드심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아끼고 그들을 위한 역할을 해내고자 헌신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사연자분을 잘 모르지만, 그토록 힘겨운 속에서도 아이들을 늘 아끼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사연자분이 감히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일 것 같다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덧붙여드리고 싶습니다.

하루 종일 밀려오는 아픔을 이 악물고 참으며 아이에게 억지로 웃진 않으셔도 됩니다. 단지 몸이 허락하는 만큼, 사연자분의 마음속에 가득한 사랑을 나눠주시고 시간을 함께 보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비록 경험하시는 통증을 단번에 없애드리진 못하지만, 부족한 답변이 아무쪼록 가족과 함께하시는 행복에 조그만 영감이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읽기를 권해드리는 글)
https://m.blog.naver.com/dhmd0913/221507940276

https://m.blog.naver.com/dhmd0913/221923509192

https://m.blog.naver.com/dhmd0913/221866405719



(사진 출처:pixabay.co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