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독서백일 Oct 24. 2021

오래 사는 삶

내가 120살까지 살 수 있게 되면

줄리아 없이도 이렇게 오랜 시간을 혼자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혼자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건강하게 지낸다. 30년 전, 줄리아를 떠나보낸 뒤, 짐을 단촐하게 정리하고 시골의 해변마을에 정착하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해변마을의 파도는 내 마음을 대신하여 실컷 울어주었고, 흰 거품의 모래알을 어구 어구 토해내었다.


이제 100대 중반인 내가 이 시골 마을에서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평생 쉬지 않고 달려왔던 나이기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여유라는 것과 함께 누려보고 싶었다. 이 마을은 그나마 교통 사정이 좋은 편이라서, Drone 택시를 호출하는 것도 가능했다. Drone 택시라도 있어야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서 그나마 도시에서와 비슷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듯 했다. 시골이라고 해서 의료보험료가 더 싸지는 것은 아니니까.


아들 내외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여생을 안전하게 보내기를 희망했지만, 이런 시골 마을에서 혼자의 고독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은 그 동안 줄리아와 함께 누리지 못한 죄책감에 대한 자학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신 아들 내외는 멀리 떨어져 살기로 한 나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혼자 사는 것은 좋지만 꼭 가정용 로봇을 고용하라는 것이었다. 가정용 로봇을 구독할만한 경제적 여건이 되지는 못했지만, 아들 내외를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아서 기본적인 신체 리듬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수준의 로봇을 영입하기로 했다. 


이 로봇은 주로 아들 내외와 화상통화를 하고, 내 호르몬 수치를 모니터링하며 필요하면 식사와 영양제를 주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로봇이었다. 로봇이라고 하지만, 의복 형태로 되어있어 외출 시에 허리에 착용하면 보행 보조기 역할도 담당했다. 평소에는 그냥 깔고 앉으면 작동하는 로봇이었다. 비싼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일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 돈값은 했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이 조그만 지역 마을에서 소일거리를 찾았다. 짭짤한 수익을 기대했다기보다는 종일 바다를 보는 것 대신에 생각이란 것을 하고 대화란 것을 하고 싶었다. 


지금은 집을 개조하여 아크릴화 페인팅 클래스를 운영하면서 한쪽에서는 커피를 만들어 팔고 있다. 이 시골 마을이 드라마 촬영지로 Netflix에 나간 이후로, 심심치 않게 외지인들이 놀러 온다. 기존의 집 구조에서는 바다를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에, 창가 쪽 벽을 다 허물고 유리 통창으로 만들기로 했다. 건축에 큰돈이 들어갔지만 지난 30년간 매주 투자한 코인을 탈탈 털어 건축비용을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내가 미술 수업을 진행할 때면 처음에는 이젤에 캔버스를 올려놓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지금 입고 있는 가정용 로봇은 허리 근육 강화기능이 없어서 직접 물건을 올리고 내리는 것을 반복하면 쉽게 지쳤다. 처방전으로 받은 호르몬 조절 주사약은 일정 시간 간격으로 척추로 바로 주입되는데, 호르몬 약이라기보다는 로봇세포를 주입하는 것이라는 루머도 있었다. 기존의 늙은 인간의 세포를 파괴하고 새로운 로봇 세포를 자기 복제시키는 메카니즘이라고들 한다. 


주사를 맞을 때마다 내 몸의 일부가 로봇으로 바뀌는 것은 용납할 수 있지만, 미술 수업 시간에 할딱거리는 할아버지 강사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로봇으로 바꿔가는 내 신체때문인지 요증은 가정용 로봇과 동기화가 더 잘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로봇 회사에서는 로봇의 펌웨어를 주기적으로 내 신체리듬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과장 광고하고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 편이다.


이 가정용 로봇에 앉아 뒤로 기대면 간단한 허리척추 마사지 기능이 자동으로 작동되며, 동시에 아들 내외와의 화상통화를 원하는지를 묻는다. 화상통화 품질이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허리춤의 빔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상 기술은 나의 기억 속에 있는 기억의 단편을 끄집어내 시각적으로 중심부에 집중 재현하고, 나머지는 주변시에 나의 기억을 활용하여 뿌옇게 이미지를 채워나갈 수 있게 만든 기술이다. 이런 영상기술이 의외로 생생함을 느끼기에는 더 좋은 듯했다. 


오늘의 통화에서 아들 내외는 얼마나 나이들어 보일까? 궁금하다. 내 기억 속의 아들 내외 모습은 아직 젊으니, 젊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신체 나이는 어쩔 수 없이 60대다. 오늘도 아들 내외를 보면 똑같은 이야기를 해줄 예정이다. '나처럼 혼자되어 청승맞게 여유라는 것을 즐기지 말고, 60대면 한참 때니 두 사람만의 여유를 즐기라고. 일 좀 그만하고...'

작가의 이전글 내가 공상과학소설로 브런치 작가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