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로 쿨하게 살아오다가 2년 전 겨울에 지인의 도움으로 강남 대청마을에 2층짜리 주택을 마련하였습니다. 조그마한 마당이 있고 대문이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주택 밖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오래된 작은 주택입니다. 아파트와는 다른 오래된 실내 구조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이 곳에 무엇인가를 새로 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때로 뜬금없는 상상의 즐거운 시간도 줍니다.
건축가 유현준의 책은 여러 권 읽었습니다. [공간의 미래]를 통하여 주어진 [공간]이 아닌 주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생각이 점점 강해집니다. 이 책은 공간 디자인이 사회구조와 부의 흐름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쓰였습니다. 그의 글 곳곳에 공간 디자인이라는 도구로 이루어 낼 사회구조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어 좋았습니다.
기술혁명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아파트는 철근과 콘크리트, 그리고 엘리베이터라는 신기술로 허공에 건설한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 1970년대 아파트를 지어서 주택을 공급해 소유하게 한 것은 모든 국민을 지주로 만드는 혁명이었다. 기술을 통해서 없던 자산을 창조해서 나누었던 진짜 혁명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주가 되면경제 성장의 열매를 나눠 가질 수 있다. 반대로 거주 공간을 소유하지 않고 소비를 지향하는 공유 경제 시스템에서는 노동자는 현대판 소작농의 삶을 사는 것일 뿐이다. (p271)
이 문장에서는 뜨끔했다. 내가 살아온 그동안의 삶이 소작농의 삶이었다니.. 그리고 내 주변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직도 소작농의 삶을 사는지..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결국 디자인과 기술을 통한 새로운 공간 혁명이다. 기존 도심에 있는 30평형대의 낡은 아파트 두 채를 터서 20평형대의 아파트 세 채를 만들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제시한다. 또한 도심 내에 있는 오피스 공간과 같은 코로나 시대에 효용성이 떨어진 밀집 공간을 활용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근본적으로 국민들이 주택을 소유하게 해줘야 한다(p276)고 주장한다.
부동산이라는 주제가 강남 개발 투기 이후 사회적으로 터부시 된 것은 사실이다. 부동산을 공부하는 사람을 투기꾼, 마담뚜, 사기꾼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여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 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부동산은 공부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을 달리한다. 부동산도 정치와 비슷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부동산을 공부하여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수 있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2.4 대책, 다세대 주택, 용적률, 건폐율, 공공 주택 복합 사업 등 생소한 용어에 대한 거부감을 벗어던지고, 부동산에 대한 정확한 공부를 시작하려 한다.
부동산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단지자산이 아닌 사회 구조 형성에 영향을 주어 시장에서 자본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성수동은 미디움 사이즈라는 또 다른 공간 체험을 제공해 준 것이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컸고, 집에서 나오면 아파트 사이의 넓은 공간에서 놀았다. 공간적으로 스몰 사이즈와 라지 사이즈만 경험한 것이다. (p313)
국민소득 3만 불 이상이 되면 자기 자신을 소비하는 대상이 의류나 액세서리에서 공간으로 진화한다고 한다. 공간이 주는 경험이 훨씬 황홀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게으르므로 새로운 것이 없는 공간에서는 공회전하는 엔진과 같지만, 새로운 공간에서는 온갖 자극에 뇌가 쉴 틈이 없다. 뇌가 즐거운 것이다.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공간에서 젊은이들은 전혀 새로운 크기의 공간을 경험한다. 공간은 이제 소비할 수 있는 대상이다. 그래서 익선동으로 연남동으로 성수동으로 소비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오프라인 공간에 지주가 될 기회가 없었던 젊은이들은 김대중 정부 시절 IT 기술로 온라인 공간이 만들어지자 네이버, 카카오, 다음, 넥슨, 엔씨 소프트 같은 기업을 만들 수 있었다.(p357)
기술혁명으로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저렴한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은 이들에게 부동산 자산을 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공간이라는 자산으로 부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공간은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가 된다.(p357)
젊은 세대가 기술혁명으로 이루어진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땅에 지주가 될 수 있을까? 공부를 통하여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참여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젊은 지주가 탄생할 수 있도록 우리 세대도 공부를 통하여 투명한 경쟁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또한 필요한 일이다.
메타버스는 어떤가? 새로운 기술 혁명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실제로 이 공간에서 젊은 세대(초등학생)는 집을 짓고, 친구를 초대하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 IT 혁명으로 가상공간에 강력한 지주가 탄생하고, 세상의 부의 흐름에 혁명을 만들어 냈듯이, 메타버스 세상에서도 부의 흐름을 바꿀 강력한 젊은 지주가 탄생할지 지켜볼 일이다.
우리는 새로운 가상공간에서의부동산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은 결국 지주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으니, 현실 세계의 부동산 공부가 가상세계에서도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IT 공간에서 소작농으로 살고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 톡, 네이버 등 땅 부자의 공간에 월세를 내는 삶이다.
새로운 공간인 메타버스에서도 누구는 지주의 삶을 그리고 나머지는 소작농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조그마한 땅이라도 좋으니 메타버스에 땅을 사서 지주가 되어보자. 블록체인에서 땅주인이 되어도 좋다.
적어도 지주가 되면 경제성장의 열매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땅이 있으니 공부할 이유도 생기고, 공부하면 공간 구성에 적극 참여하여 공간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