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말

by cakesoup
치아 교정중이라 서울말이 잘 안되던 때입니다.




그때부터였던가, 내가 서울말을 동경하기 시작한 것이.


군대를 제대하고 얼마 안 돼서 서울에 사는 동기 놈이 부산에 놀러 왔다. 남자끼리 영화를 잘 보는 편이 아닌데 그때 영화를 같이 본 걸 보니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였나 보다 했는데 또 그런 것치곤 그때 본 영화가 뭔지 지지리도 생각이 안 난다.



어쨌든 우리는 서면 롯데백화점에 있는 영화관에 갔다. 9층에 있는 영화관에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들이 새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괜히 말을 꺼냈다가 싸울까 봐 말을 아꼈다. 그때 동기 놈이 "아주머니, 다들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새치기하시면 어떡하세요?"라고 공손한 서울말로 이야기하는데, 아주머니들은 그 말을 듣곤 곧장 미안하다며 뒷줄로 돌아갔다.



경험상 내가 부산 사투리로 이야기했다면 아주머니들이 저렇게까지 미안해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때 알았다. 서울말의 위대함을.



몇 년 후 난 서울에 올라왔고, 서울말의 위대함을 알고 있었지만 역시 부산 사투리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서울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이 내 사투리를 따라 했다. 너무 따라 해서 오히려 내가 제대로 된 서울말을 들어볼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한 서울 친구(남자)는 "나는 마 부산 머스마들을 좋아한다. 서울 남자는 의리도 없고 촐랑대서 싫어한다." 하면서 맨날 내 앞에서 촐랑댔다. 어색한 억양으로 내 사투리를 따라 하며 얼마나 촐랑대던지 난 그 친구를 촐랑이라고 불렀다. 주변의 모든 서울 사람들이 어색한 사투리로 날 따라 하는 환경 속에서도 나는 나름대로의 서울말을 익혀갔다.



부산에 내려가면 바뀐 내 말투를 보고 친구들은 아연실색했다. ”양국이 변했대이. 서울 가더니 이제 서울말 ¹써뿌네. 서울 놈 다 ²돼삔네." 부산 친구들 사이에선 난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하는 서울 놈이 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서울 친구들은 비웃는다. 나의 서울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서울말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말을 잘 쓰면 나중에 어떤 아주머니가 새치기를 했을 때 조금 덜 기분 나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서울말을 쓰고 싶다. 또 새치기당할 것 같다. 난 새치기하고 싶게 생긴 스타일이다.



어쨌든 서울말과 부산말 그 언저리의 말투로 서울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아직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군가 새치기할 때 내가 이야기하면 싸움 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묵묵히 새치기를 당한다.



부산 살 때는 몰랐는데 서울 살면서 내가 정말 무뚝뚝한 사람이었구나란 걸 많이 느낀다. 부산에선 자고로 과묵하고 표현을 아끼는 것이 남자의 덕목이라는 암묵적인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는데 여기서 그런 남자는 환대받지 못한다. 나는 그간 서울말과 서울 남자의 다정함을 연구하여 지금은 서울 남자의 다정함과 부산 사나이의 면모 둘 다 겸비해 가고 있는 중이다.(곧 완성)



서울살이 한지 3년 차가 됐을 무렵 홍대에 샵을 오픈하게 되었다. 첫 손님을 받을 때 완성된 서울말로 응대하겠노라 했다.


첫 손님이 들어오는 순간 환한 미소와 함께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냥 딱 그 한마디를 건넸다.



손님 "오~ 부산 사람이죠? 나도 부산인데(반갑반갑)"


나 "아닌데요.(주민등록상 서울 사람)"


손님 "어? 부산 아니에요? 경상도는 맞잖아요.(확신)"


나 "(국무룩)"




나중에 어떻게 알았냐 물으니 “어서 오세요"에서 "어서"할 때 알았다 했다. 두 음절에 알았다니 말이 되는 소린가? 부산 친구들은 분명히 서울말 쓴다고 했는데, 또 서울 사는 부산 사람의 귀는 다르다는 걸 알았다.



오전 11시가 되면 이루마의 골든 디스크를 듣는다. 그의 부드러운 말투에 연신 감탄한다. 특히 "이루마의 골든디스크"라고 발음할 때 뇌신경을 자극하는 부드러움이 있다. 다른 DJ들은 청취자들한테 "아메리카노"를 선물할 때 이루마 씨는 "아메리가노"를 선물한다. 정말 부드럽다. 나는 억양도 몸도 마음도 온통 딱딱한 남자라 늘 내가 가지지 못한 부드러움을 갈망한다. 오늘 내가 가진 부드러움이라곤 내 몸에 걸쳐있는 ³캐시미어 스웨터 이것 하나뿐이다. 나도 된소리와 거센소리를 줄이면 이루마 씨처럼 부드러워질까? 이제 카푸치노가 아니다. 가부지노다. 이제 카페라떼가 아니다. 가베라데다. 아, 오늘 달곰한 가라멜마기아도가 ⁴댕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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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¹ 써버리네

² 되어버렸네

³ 머브클로딩 제품

⁴ ’땡긴다’의 부드러운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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