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연은 나야 나.
"병학아, 우리도 써클(동아리)에 가입해야 안되겠나?"
"그래야지. 골학 때문이라도.."
해부학의 가장 기초인 골학은 인체의 뼈에 대해 공부하는 것인데 해부학이 워낙 방대해서인지 본과에 진입하면 교수님들이 골학에 대해 강의를 하지 않고 바로 시험부터 보는게 전통적인 관행이었다.
그러므로 예과생들은 본과 진입 전에 미리 선배들에게 골학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병학이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입학한 친구다.
우리는 동문선배가 없는 고등학교 1회 졸업생이라 어리숙한 대학 새내기 시절 단짝처럼 항상 붙어 다녔고 써클도 함께 가입했다.
우리가 가입한 '아성'이란 써클은 남학생은 치의예과, 여학생은 간호학과 출신으로 구성된 연합써클이었다.
선배들로부터 골학을 배우고 방학 땐 의료봉사 활동도 하는 단체였다.
대학생이라 해도 너무나 순진했던 우리 기수들은 각자 남학교와 여학교에서 사제와 같은 검은 교복을 입고 수도승 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써클에서 이성친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았다.
우리는 단합을 핑계로 거의 매일 어울려 다녔고 MT를 가서 밤새 술 마시고 놀면서 급속도록 친해졌다.
우리 기수의 기장이었던 상석이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우리를 잘 이끌었는데 써클 내에서 커플이 맺어지는 일은 단합을 저해한다고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철저히 그룹으로만 모이고 행동함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니 각자 맘 속으론 호감을 두는 상대가 있더라도 내색은 못하고 애써 태연한 척해야 했다.
나도 동기 중에 관심 있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경희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항상 웃는 선한 눈매에 보조개가 귀여운 예쁜 여학생이었다.
병학이와 나처럼 같은 학교 출신의 은미가 그림자처럼 붙어지내며 항상 독사눈을 뜨고 지키는 친구였다.
그런데 어느 날 경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수야, 너 이번 주말에 뭐 해?"
"뭐 별일 없는데"
"그럼 주말에 우리 만날까?"
"상석이가 또 소집령 내렸니?"
"아니, 그게 아니고. 너랑 나 둘만.."
(잉? 이건 데이트 신청이잖아?)
"상석이가 알면 난리 날 텐데.."
"학교 근처 말고 시내에서 보면 모를 거야."
"좋아, 어디서 볼까?"
내 인생 처음의 데이트 신청이었고 그것도 여자로부터 먼저 받았으니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호감이 있었는데도 내가 먼저 연락을 못 한 게 미안하기도 해서 만나면 고백은 내가 먼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얼 입을까 고민하다 기지 바지에 셔츠 남방을 입고 키높이 구두를 신고 나갔다.
싱그런 청춘 차림이 아니고 왜 아저씨처럼 하고 나갔는지 모를 일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하늘의 구름은 솜사탕이었고 키높이 구두가 어색해 자꾸 쇼윈도에 날 비춰봐도 시골 면서기 같은 내 모습이 더 못 마땅한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이었다.
항상 무리 속에서만 보다가 특히 그림자 같은 은미 없이 보는 경희의 모습은 더 예뻐 보였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영화도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으면서 못 마시는 술도 한잔 했다.
취기가 올라 얼굴이 발그레진 경희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용수야. 나는 우리 써클 남자애들 중에 네가 제일 좋다. 다정하고 푸근해서 마음이 참 편한 거 있지."
그러면서 예쁜 편지봉투를 꺼내 내민다.
(오옷! 이건 연애편지?)
"그런데 병학이는 왜 너처럼 편하지가 않을까? 병학이만 보면 가슴이 턱 막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아. 아무래도 나... 병학이를... 좋아하나 봐. 부끄러워서 많이 망설였는데 너는 병학이랑 단짝이니 이걸 병학이에게 좀 전해줄 수 있겠니?"
우쒸, 이런... 내가 아니었단 말이야?
그럼 처음부터 진작 말을 했어야지.
종일 사람 마음을 붕 띄워놓고 갖고 놀다가 이제 도로 제자리에 갖다 놓다니..
"어어 그래. 걱정 마. 내가 방자 역할을 잘해볼게. ㅎㅎ"
비참한 마음을 애써 감추려 과장된 웃음을 지어야 했다.
나는 연애에 서툰 연인들을 연결해 주는 시라노가 되었다.
오랫동안 연인의 편지를 전해주던 우편배달부와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행운은 없었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둘은 금세 연인으로 불타올랐다.
이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대타 인생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대학가요제의 열풍으로 각 대학마다 그룹사운드가 인기였다.
치과대학에도 이빨을 강조하는 '뱀파이어'였다가 너무 끔찍하다고 나중엔 '덴타폰'으로 이름을 바꾼 그룹사운드가 있었다.
대학가요제 출전도 로망이었던지라 나는 싱어 오디션을 보러 갔다.
혼자 가긴 쑥스러워서 과 동기였던 철우랑 같이 갔다.
선배들이 연주하는 지정곡 중에서 평소 나의 18번이었던 이명훈의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이란 노래를 자신 있게 불렀다.
선배들은 내가 미성이고 노래를 잘한다고 칭찬을 했다.
따라온 철우에게도 이왕 왔으니 한번 불러보라고 했다.
철우는 무슨 시끄러운 팝송을 돼지 멱따듯 부른 것 같다.
그런데 철우가 싱어로 발탁된 게 아닌가.
록 스피릿이 살아 있단다.
거칠긴 해도 우리 밴드엔 저런 로커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 보고는 글쎄.. 뭔가 애매하다며 트로트를 하면 잘할 것 같단다.
이명훈의 노래에 꺾기를 넣는 재주가 있다나.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는 이거다!싶었다.
'고도'가 해발고도인지 외로운 섬인지 사람 이름인지 대체 무얼 기다리는 건지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연극이었지만 조명을 받고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어쩜 그리 멋있게 보이던지 연극부에 가입하기로 했다.
그룹사운드처럼 오디션을 따로 보지는 않았지만 연극부 선배들은 내 얼굴을 보더니 'actor 할 마스크는 아닌데..' 하면서 우선 스텝 일부터 배우라고 했다.
나는 조명기사 보조가 되었다.
스포트라이트뿐 아니라 움직이는 핀조명과 무대 아래의 각광, 그리고 무대 뒷면의 라인 조명 등을 통해 석양의 저녁놀을 연출하거나 배우의 얼굴에 음영을 주어 입체감을 표현하는 등의 다양한 기법을 배웠고 디머 컨트롤로 페이드 인/아웃 기법도 알게 되었다.
연극의 장면마다 해당되는 효과를 주기 위해 타이밍을 정확히 맞추어야만 해서 배우 못지않은 긴장감을 늘 유지해야 했다.
그 어떤 주인공도 나의 손길이 없으면 빛날 수가 없었다.
나는 점점 조명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결국, 졸업할 때까지 연극무대엔 한 번도 서 보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대 위 배우들을 화려하게 비추는 조명 스텝으로 활약했다.
이밖에도 나의 생애 첫 미팅 파트너가 내 친구의 부인이 되기도 하는 등 나의 대학시절은 우여곡절이 많은 대타 인생으로 점철되었다.
하지만 결코 후회스럽지는 않다.
내가 맺어 준 병학이와 경희는 예쁜 사랑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뱀파이어'의 철우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덴타폰의 전설적인 싱어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연극부에서 배운 조명 기술은 내가 사목위원이었을 당시 옥동성당의 강당에 조명 시설을 갖추는데 활용되었다.
그동안 창백한 형광등 아래에서 하던 성탄제 행사에 멋진 조명 효과를 줄 수 있어 보람을 느꼈다.
부학생장으로 학생회 간부 활동을 하던 시절 학생장의 대타로 나간 모임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난 건 최고의 행운이다.
그 모든 일들은 내 인생 시트콤의 에피소드들이었고 그 어떤 유명 셀럽이라도 그저 조연이고 까메오에 불과하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나의 화려한 인생 무대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