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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나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오.

by 허용수

평생 치과의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지만 만일 내가 치과의사가 아니었다면 어떤 직업을 갖게 되었을까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귀가 얇고 얼굴이 두껍지 못해 기업가와 정치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되었을 거고 체력이 약해 운동선수도 아니었을 거다.

그 외에는 무슨 직업이든 그럭저럭 해내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사실 나는 영화배우나 영화감독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타임머신이 있다 해도 나는 신혼 때를 제외하고는 지긋지긋한 청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인생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국민학교(그렇다. 나는 국민학교 세대이다) 시절로는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병약한 아이였던 나는 오징어게임류의 뛰고 굴리는 동네 꼬마들의 놀이에 낄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 집엔 50권짜리 계몽사판 '소년소녀 세계명작동화집' 전질이 있었다.

그림도 별로 없고 깨알 같은 글씨가 빽빽한 책들이었지만 나는 그 많은 책들을 얼마나 반복해서 읽었던지 내용을 다 외우다시피 했다.

옛날 전래 동화들부터 그리스 신화, 안데르센 동화, 그림 동화, 알리바바, 톰소여의 모험 등등 전 세계의 재미난 이야기들이 다 있었다.

영화도 또래들보다 자주 보러 다녔는데, 왕우의 '장님과 외팔이' 같은 중국 검객시리즈와 장동휘, 박노식, 황해 같은 풍운아들이 격투를 벌이는 육박전 영화들을 즐겨보았다.

주인공들의 멋진 무술 장면들과 대사는 한 번 보면 그대로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버렸다.

내 머릿속 수많은 이야기와 영화 주인공들은 상상의 세계에서 나와 함께 했기에 혼자서도 행복했다.


나는 공부도 잘했고 어머니의 치맛바람 덕분에 국민학교 시절 내내 줄곧 반장이었다.

반장은 엄마에게는 계급장이었는지 몰라도 학교에서는 그저 심부름이나 하는 담임선생님의 비서 같은 존재였다.

지금도 잊을 수없는 4학년 담임선생님은 할머니였는데 틀니가 빠질까 봐 항상 입 주변을 강하게 오므리고 다니는 사나운 인상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실제로도 걸핏하면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하는 무서운 선생님이셨다.

수업시간엔 수업보다 밀린 사무를 하시기 바빠서 반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엄청 화를 내셨다.

하지만 아무리 야단쳐도 아이들의 집중력이 그리 오래갈 리가 있나.

금세 또 시끌해지면 마지막 수단으로 나를 동원하셨다.


"반장, 애들 좀 조용히 시켜라. 떠들면 네가 혼난다."


나는 40분 수업 내내 내 머릿속에 있던 콘텐츠를 이야기로 풀어내야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한 명의 아이도 떠들지 않고 나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조용히 집중을 하는 것이었다.

책속에서 읽었던 이야기들이 내 입을 통해 친구들의 머릿 속에서 펄쩍펄쩍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에 TV조차 없었던 대부분의 코흘리개 친구들은 요즘 치면 K-드라마나 웹소설 같은 콘텐츠를 경험하는 것이었으니 나의 말 한마디 액션 하나에 따라 울고 웃었다.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는 한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맨 뒤에 앉아있던 어느 키 큰 여학생이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일어서서 침을 질질 흘리며 넋을 놓고 듣고 있더란다.

사무를 보시던 선생님도 한 귀로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는지 아이들과 함께 킥킥대며 웃기도 하셨다.

살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무서운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아이들이 다시 떠들지 않도록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나는 천일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얼마든지 해줄 이야기들이 차고 넘쳤다.


방과 후에 동네 아이들과 놀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을 먹고 어스름이 지면 가로등이 있는 동네 공터에 아이들이 삼삼오오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윽고 한바탕 실컷 놀고 나서 지칠 즈음이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다들 내 양옆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어스름 달빛을 배경 삼아 무서운 얘기를 하면 오금을 저렸고 우스운 얘기, 슬픈 얘기, 신나는 얘기들에 아이들은 자지러졌다.




꼬마들이 소꿉놀이 하는 걸 보면, 조개껍질 그릇과 풀잎 반찬으로 밥상을 차려놓고 아빠, 엄마, 아들, 딸의 역할놀이를 한다.

실제의 상황을 가정하여 "여보", "당신"하며 어른들의 말투를 흉내 내는데 나름 대사도 있고 각본도 있다.

나도 이런 방식으로 남자아이들과 '활극놀이'를 하였다.

영화의 스토리에 따라 망토를 두르고 칼을 휘두르며 외팔이 검객을 재연하거나 장동휘, 박노식 같은 협객이 되기도 한다.

모든 스토리는 나에게서 나오니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자 연출이 되어 아이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정해주고 대사도 일러준다.


"부모님의 원수를 갚으러 왔다. 내 칼을 받아랏! 얍!"

휙휙. 챙챙. 으읔..


이렇게 입으로 효과음을 내며 다들 멋지게 연기를 한다.

만일 몇 번이나 칼을 맞았는데도 친구가 약속한 각본대로 죽지 않으면

"너는 안 비아 주.(너는 안 끼워 줘)"

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렇다.

그때 벌써 꼬마들은 연기를 하며 놀았던 거다.

그러니 오늘날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놀이의 각본은 나의 창작물이 아니니 아마 나는 작가는 못 되었더라도 배우나 감독은 잘하지 않았을까 싶다.

스토리텔링의 힘은 단지 문화적인 콘텐츠를 넘어서 그 파급적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오늘날 K-컬처는 웹툰, 웹소설 등을 기반으로 오징어게임과 같은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인들이 넋을 잃고 침 흘리게 만들고 있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 친구들에게 돌아가 요즘 한창인 인기 드라마와 영화 이야기를 실컷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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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