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현대인의 책 읽는 방법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지역 도서관을 방문해 가방 한가득 책을 빌려왔다. 한글을 떼기 전엔 내가 읽어줬고, 큰 아이가 한글을 뗀 후에는 큰 아이가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는 습관은 미국에 와서도 계속됐다. 우리가 다니던 동네 도서관은 한 번에 50권까지 대출할 수 있어서 책 욕심을 마음껏 부려 '도서관 가방'에 책을 꾸역꾸역 담아왔다.
그런데, 2007년 아마존 킨들(Kindle)이 책시장에 소개된 이후 책의 역사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자책(e-book)이라는 게 디바이스만 있으면 굳이 무겁게 책 몇 권씩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아마도 2012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비즈니스 법률 강좌를 수강하고 있었다. (미국은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해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그런데 텍스트북이 무려 천 페이지에 가까웠고, 가격은 이백 달러(24만 원)가 넘었다. 텍스트북은 필요하고, 그 큰돈을 교과서 사는데 쓰자니 아깝고...... 결국, 구글 서치 끝에 훨씬 저렴한 가격의 PDF 버젼을 구해 아이패드에 다운로드하여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난 전자책 팬이 되었다. 들고 다니기도 편해 언제 어디서나 기회가 되면 책을 읽을 수 있고, 페이지 찾을 일 없이 클릭 하나로 내가 읽고 싶은 페이지가 바로 열리니 말이다.
그리고, 난 몇 년 전부터 오디오북을 즐겨 듣고 있다. 오디오북의 장점은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귀로 듣는 거라 매우 효율적이서 좋다. 예를 들어, 요리할 때, 장거리 운전할 때, 산보할 때 오디오북을 들으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어서 좋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내리면서 식사를 준비하고, 오디오북을 틀어놓는다. 그리고, 출퇴근 거리가 차로 편도 30분 정도 돼서 하루에 1시간 정도 책을 읽는 셈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 3km 산책을 하는데, 산보 시간 40분 동안 역시 오디오북을 듣는다. 한국 방문 시 지하철 이동 중에도 오디오북을 들었었다. 이런 효율성 외에도 오디오북은 영어 듣기를 반복적으로 하는 셈이니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돼서 좋다.
미국은 커뮤니티 도서관이 잘 돼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위치한 도서관은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2주 동안 대여해준다. 리비(Libby)라는 도서관 앱을 다운로드하여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검색한 후, 대출할 수 있다.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대여 물량이 소진된 경우, 대기자 명단에 등록해 기다리다 내 차례가 오면 자동으로 대출된다.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지역 도서관에 신간이 들어오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을 기다렸던 거 같다. 그런데, 요즘 신간은 발매와 거의 동시에 도서관에 들어와 곧바로 빌려볼 수 있다.
도서관이 보유한 권수가 많은 경우 대기 기간은 짧아지고, 보유 권수가 적은 경우 기다리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그리고, 책의 인기도에 따라 대기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오래 기다려야 한다. 내 경험상 인기 서적은 최소한 4주에서 8주 정도 기다리야 읽을 수 있는 거 같다. 지난주 에이미 탠(Amy Tan)의 <The Joy Luck Club>의 웨잇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지금 확인해보니 18주는 기다려야 내 차례가 돌아온다고 한다. 도서관이 보유한 이 책의 권수는 3권인데, 한 카피 당 9명이 기다리고 있다. 나까지 포함해 27명이 이 책을 읽으려고 줄을 서 있는 셈이다.
난 아이폰이랑 아이패드에 리비를 다운로드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휴대폰은 이동성이 좋아 여러모로 편리하다. 작년까지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에서 대학을 다닌 아들한테 다녀올 때도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 운전이 오디오북 때문에 지겹지 않고 즐거웠었다. 350페이지 서적 한 권은 보통 8시간 녹음 분량이다. 그러니까 4시간 운전하는 동안, 이미 책 반권을 읽은 셈이 된다.
난 쓸데없는 변화를 그리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낡아서 교체나 수리가 필요하지 않은 이상, 가구 바꾸고, 집안 인테리어 새로 하고 이러는 거 이해하지 못한다. 휴대폰 OS 업데이트도 되도록이면 안 하고 산다. 버그 수정 이런 건 좋은데, 업데이트하고 나면 폰 인터페이스가 바뀌어서 내 전화기가 내 전화기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전통적인 포맷의 종이책보다 오디오북이 훨씬 좋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