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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곤 Dec 07. 2024

먹고 뱉을까

'최대한 굶고 최대한 안먹기'의 끝














3.













'먹고 뱉을까'


끝은 결국 실패였던. 몇 년 전, 몇 번째 다이어트 당시. 정확히 언제, 무슨 상황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강렬했던 충동과 느낌은 생생하다. 그 당시의 나는 흔히 말하는 '먹뱉'을 고민하고 있었다. 어떤 음식인지도, 어떤 맛이 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까지도. 단지 그 음식 앞에 '먹고 싶다'는 욕망과 '먹어선 안된다'라는 이성의 피 터지는 전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어린 나는 항상 건강하다 자부하는 삶을 살았는데, 지금의 내가 돌아 봤을 땐 누구보다도 경계선에 놓여 있는 삶이었다.


















앞의 회차에서 나를 위해 '평생 유지할 수 있는 식단'을 하기로 했다고 남겼다. 일단 내가 어떻게 식단을 하며 다이어트를 했는지 말하기 전에, 몇 년 간 어떤 실패의 경험을 겪었는지 이야기기로 했다.


실패와 좌절만 남았던 다이어트 역사에서 나의 식단 무엇까. 단순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다이어어트 불변의 법칙.


쪄보이는 건 무조건 안 먹고, 양은 최대한의 최대로 줄이는 것.


쌀 한알까지 입에 넣지 않도록 하는 것. 몸무게가 0.01kg이라도 늘 것만 같은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는 것.


20살의 나는 그 법칙을 성실히 지켰다. 하루에 방울토마토 10개, 엄지 손가락만 한 밥 3개, 바나나 1개만 먹고 며칠을 생활했다. 21살의 나는 하루 종일 굶고 8시간 내내 일한 적도 있고, 22살의 나는 하루 한 끼를 한다 해놓고 폭식을 일삼았다.


지금에서야 알았지만, 먹는 걸 무작정 줄인다는 건 실 단순무식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보면 슬픈 과거였다. 내가 나를 조금 더 소중히 생각했다면 어떻게 건강히 살을 빼고, 어떻게 먹으면 살이 빠지면서도 덜 고통스러운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 당시의 내가 했던 다이어트는 여태까지 무턱대고 먹었던 나에 대한 벌이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정상'에 맞춰 먹는 것을 조절하지 않았던 벌. 앞에서 여러 번 말했듯  내가 왜 그렇게까지 먹는  참지 못하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비정상적'으로 먹어대는 나에게 벌을 내렸다. 무의식적으로도, 의식적으로도 생각했다.



'여태 그렇게까지 먹었는데 좀 굶는다고 안 죽어'



다이어트를 해봤다면 이런 생각을 안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러나 이 생각의 끝에, '조금'의 뒤에는 앞으로 시간이 있다. 앞으로의 시간 동안 나는 조금 굶다고 죽진 않아도 식습관이 바뀌않는다. 굶지 않는 시간에는 여태까지 먹어댔던 방식대로 또 그렇게 먹을 것이다. 더불어 보상심리 치킨, 피자, 마라탕을 찾아 헤맬 것이다.


4번의 다이어트 실패와 요요는 이런 시간들의 반복이었다. 조금 굶고, 그러나 식습관은 같고, 그럼 또 먹고, 조금 굶고, 여전히 식습관은 같고, 여전히 또 먹고.


식습관은 여전했기에, 살이 빠져도 다시 살이 찌는 건 당연한 순리였다. 치킨을 시켜 한 마리 가까이를 다 먹고, 햄버거에 감자튀김 라지 두 개를 먹고, 하루 3끼에 식간에 간식 먹고 야식까지 먹었던 나는 며칠 굶는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시간들 속에 '먹뱉'을 고민하는 내가 생기게 된 거다. 먹으면 살이 찔 테니 맛만 보겠다는 환상적인 개논리 아래에. 뚱뚱한 비만 여자로 살아온 상처 입은 유년시절과 부풀려야만 하는 자존감 아래에.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52p.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그대로 칫솔을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가 닥치는 대로 과자와 빵을 집어 들었다. 해진 입안에 과자가 들어오자 다시 입안이 쓰라렸지만 씹고 또 씹었다. 씹다가 배가 부를 것 같으면 뱉어내고, 다음 과자를 먹기 위해 구토했다.
과자 일곱 봉지와 빵 여덟 개, 김밥 세 줄, 아이스크림 네 개를 해치우고 나서도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근처 24시 카페를 검색한 뒤 조각 케이크를 샀다. 카페 직원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아 카페에서 앉아서 먹을 수 없었다. 카페에서 나와 길거리에서 조각 케이크 한 개를 다 먹었다. 먹고 먹어도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건물 1층 편의점 앞에 앉아 새로 산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신물이 올라왔다. 간결하게 그만 먹고 싶었고, 더 이상 먹을 수도 없었다. 아니, 먹어지지 않았다. 먹을 수가 없는데도 목소리는 계속해서 음식을 사라고 명령했다.
입에 먹을 것이 아닌 뭐라도 물리면 인제 그만 먹을 수 있을까. 손에 아이스크림을 꼭 쥔 채로 홀린 듯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필라멘트 하이브리드 5mg 주세요"

 





위 문구를 읽으며, 나는 공감했다.


끊임없는 허기와 목소리.


담배와 구토를 하지 않았을 뿐, 책의 저자처럼 폭식했다. 대학 시절의 어느날. 집에서 혼자 삼겹살을 황창 구워 밥 2그릇을 먹고 30분도 지나지 않아 입이 심심해졌다. 마트로 홀린 듯이 향해 과자 2 봉지, 초콜릿 2개, 아이스크림 1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누워서 먹었다. 한두 시간이 지나고 또 배가 고파져 부엌 천장을 뒤져 라면 1개를 끓여 먹었다. 저녁 시간이 되가족들과 또 삼겹살을 구워서 밥 2그릇을 먹었다. 러곤 후식으로 에 있는 과자를 먹었다. 9시쯤 되었을 때 또 허기를 느꼈다. 치킨을 시켜 혼자 반마리 이상을 먹다. 목구멍 언저리까지 음식이 역류하는 느낌이 들어도 치킨의 바삭한 기름 맛을 놓칠 수 없었다. 먹어, 너 지금 먹고 싶잖아. 치킨을 먹고 자기 직전엔 딸기우유를 먹었다. 그렇게 심하게 먹은 날, 양치를 하며 혀를 닦다가 구역반사가 일어나 구토를 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난 의도치 않은 묘한 개운함을 느끼며 먹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었다.


비록 의도치 않았다하나, 구토에 죄책감이 덜어졌다는 건 위험신호였다. 먹고 뱉을까, 부터 마음이 사이렌을 울렸고 난 이제서야 그 소리를 들었다.




불과 몇 달 전의 생활을 되돌아보며 깨닫는다. 책 페이지를 보는 눈가에 열기가 오르고 시큰한 느낌이 올라왔다. 꾹 - 혼자 있음에도 버릇처럼 눈물을 참았다.




나, 경계선에 있구나.




그리고 또다시 깨닫는다.


다이어트는 굶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며칠 굶는다고 삼겹살에 밥 2그릇의 행복이 잊히지 않는다. 심한 폭식은 건강치 못한 대처기전이 나 스스로에 던지는 폭탄이다. 위와 같은 폭식은 나에게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위한다는 스스로의 가스라이팅에 빠져 허우적대는 늪이었다.


두 그릇으로부터 느끼는 거짓 행복을, 한 그릇을 먹고 오늘도 음식으로부터 나를 지켜냈다는 만족감으로 탈피해야만 다이어트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한 번은 '다이어트 도시락'이라는 획기적인 발명품을 산 적이 있다. 학업에 치이고 스케줄에 치이느라 힘든데 식단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따로 운동 없이 이 걸로 두 끼씩 먹기만 하면 살이 빠진다고 했다. 나는 그 과대광고를 보고는 혹했다. 그래서 없는 돈으로 냉동 다이어트 도시락 2개월치를 대량 주문했다. 두 달간 이것만 먹으며 살겠다는 당찬 포부를 뒀다. 냉동실이 가득 차 가족들에게 잔소리를 들어도 금방 사라질 거라 신신당부를 놨다.


5개월 뒤. 도시락은 유통기한이 지나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개 맛없었다. 일상이 너무 힘든데, 너무 맛없는 식사는 내게 보상이 되어주지 않기 때문에 이건 도저히 유지할 수 없었다. 독하게 버텨야 하는데, 돈낭비만 했다며 또 스스로를 질책한다.


어떤 때는 닭가슴살의 여러 가지 맛 버전이 나왔다고 했다. 양념치킨 맛, 갈릭 맛, 훈제 맛, 카레 맛 등등. 뭐가 많았다. 어, 나 훈제랑 카레 좋아하는데. 이것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30개를 시켰다. 또 냉장고에 자리를 차지한다.


1년 후. 닭가슴살의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알고 버린다. 한두 번 먹고, 잊었다. 먹어야만 한다는 의무감은 2,3일 만에 사라졌고 낭비된 돈의 가치는 금방 퇴색되었다.



남들이 하는 다이어트는 이렇다고 하고, 성공 사례도 수두룩한데. 왜 나는 못하지?



남들 하는 식단을 그대로 따라 해도 나는 계속 실패하니까 그냥 내 의지력이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싶었다. 그저 나에게 맞지 않는 식단을 '내가 모자라 실패한' 식단이라 생각했다. 미디어가 알려주는 식단이라는 건 결과를 뻥튀기해서라도 극적으로 보이게 하고, 다른 것보다도 돋보이기 위해 과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보고 자란 건 어쨌든, 그 결과 이후 '정상적이고 멋진' 사람들이니까.


닭가슴살, 다이어트 도시락, 단백질 셰이크, 아이유 식단, 저탄고지, 1일 1식, 20시간 간헐적 단식. 이런 식단들이 정답인데도, 정답을 알면서도 계속 오답만 내고 해내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어느 날 공황이 찾아왔다. 91p

약간 다르게 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이 책의 서두에 소개한 아인슈타인의 말을 기억하는가.

"바보 같은 짓 가운데 그야말로 최고봉은 항상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사업가 헨리 포드는 이 말을 좀 더 강력하게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하거나, 떠나거나, 아니면 바꿔라"







어떻게 하면, 이 고비를 넘을 수 있을까. 단순한 헨리 포드의 말을 되새겼다.


사랑하거나. 떠나거나. 아니면 바꿔라.


식단을 지키지 못하고 계속 실패하는 나를 사랑하거나.


식단을 지켜야만 하는 삶을 떠나 이대로 건강하지 못한 식단으로 살거나.


계속 실패하는 식단을 바꾸거나.




비록 살이 더 늦게 빠질거고, 결과가 눈에 안보일 수도 있고, 또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최대한 굶던' 식단을 '먹는' 식단으로 바꾸기로 했다. 적어도 이게 나를 위한 선택인 건 확실했다. 


다른 사람이 한다는 식단이 아닌, 나에 맞춘 식단. 평생 유지할 수 있는 식단. 식사 사이의 허기를 참을 수 있고, 배고픈 동안 기다려지며 먹으면 즐거운. 그런 식단으로 바꾸고자 노력했다.


그렇기에 내가 택한 삶은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못 먹고, 밥 2그릇을 못 먹고, 라면 물을 올릴 수 없고, 야식으로 치킨을 먹을 수 없는 삶아니다. 그건 유지할 수 없다.


먹을 수 있다. 과자, 아이스크림, 밥 2그릇, 라면, 치킨 전부 먹을 수 있다. 그저 바꾸기만 하면 된다. 이 모든 것을 하루에 때려 붓지만 않으면 됐다. 


적게 먹어야 하는 게 아닌, 그저 폭식만 하지 않으면 된다.


하루에 정해진 식사 시간에만 밥을 먹기로 했다. 그렇기에 점심이나 저녁으로 과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면 식사때 밥 2그릇, 라면, 치킨은 안먹었다. 저녁으로 라면을 먹었다면 밥 2그릇은 먹지 않다. 치킨을 먹다면 밥 2그릇을 먹지 않다. 두 개 다 먹으면 폭식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식사 시간이 지나면 허기와 싸우며 공복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먹고 싶은 걸 먹지만, 식사 사이의 시간 중 공복을 유지하는 것.


그것부터 하면 된다.



차근차근.



'최대한으로 먹지 않고, 살이 찌는 건 일절 입에 대지 않기'를 실행하지 않았다.


적정량을 지켰다. 폭식만 안하면 식사시간에 먹고 싶은 거 적정량으로라도 다 먹을 수 있으니까.


 밥 1 공기(한 그릇에 2/3)와 반찬은 상관없으나 그릇에 덜어 적당량만 먹을 것. 고기는 돼지고기 소고기 오리고기 칼로리를 떠나 모두 250g 이하로. (그램수를 확인하는 건 다이어트 유지 습관으로 들이는 게 좋다) 식사로 치킨이나 피자, 떡볶이를 먹을 땐 브랜드 상관없이 치킨은 0.4마리, 피자는 3조각, 떡볶이는 0.5인분만(엽떡은 1/3). 패스트푸드는 무조건 식사 대신. 라면은 비빔면, 짜파게티는 금지이나 이외 국물 있는 건 1 봉지 가능 그러나 2 봉지 이상과 밥은 금지. (짜파게티와 비빔면은 면이 소스를 전부 흡수하기 때문) 그리고 식간에 절대 간식은 먹지 않고 공복을 지킬 것. (가장 중요)




어느  저녁은 라면, 어느 저녁은 밥에 반찬, 어느 저녁은 요구르트에 샐러드 도전. 그리고 먹고난뒤엔 아무것도 먹지 않도록 나를 달래고 달다.


'참으면 내일 오전 식사는 돈까스카레 먹게 해줄게.. 그러니까 참자. 참아보자 이곤아'


하루. 이틀. 계속 나를 달래고 달래며 허기와 싸왔다. 그러다 보 내가 치킨을 언제 먹었더라?하며 고민하게 되는 날이 오게됐다. 그 날은 나에 대한 보상으로 저녁 식사 치킨 반마리다. 한마리 가까이를 먹어도 배가 고팠는데 반마리 가까이 먹으니 배가 부르고 물러 더 먹지 못했.



이렇듯 나의 다이어트는 '폭식을 일삼던' 하루가 '적당히 먹고 폭식을 참는' 하루가 된 것으로 충가치가 있다.


그렇게 본격적인 다이어트 식단을 하기전. 폭식하지 않는 삶에 적응하는 것이, 평생 유지할 수 있는 내 다이어트 식단의 첫 발판이자 치유의 두 번째 걸음이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43p.
현명한 사람은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바깥에서 찾지 않고 자신의 안에서 찾는다. 자신의 고뇌를 객관적인 조건 탓으로 돌리지 않고 고뇌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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