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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곤 Nov 30. 2024

대한민국의 흔한 비만 여성 5147588호입니다

비만 클리셰 : 반복되는 다이어트와 실패



2.

















나는 대한민국의 비만 여성으로서 겪을 수 있는 클리셰는 거의 겪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살이 찌기 시작하고, '뚱뚱하다'는 말을 듣기 시작한 건 12살 때부터였다. 배가 나오기 시작했고, 등 살이 접히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친척들을 만나면 '살을 빼야 한다'는 조언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는 말보다 더 많이 들었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진심 어린 우려와 함께 듣기도 했다. 척을 만나 살 좀 빼라는 말을 듣는 것. 그게 대한민국 비만인의 클리셰 중 하나라는 건 비만인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명절이 되어 만난 큰집의 사촌언니가 20살의 나를 불러 식탁에 앉혔다. 나보다 6살이 많은 언니는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진솔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옆에는 친가의 막내 삼촌이 앉아 있었는데 둘은 나에게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뚱뚱한 여자가 현실에서 얼마나 살아가기 힘든지.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여도 뚱뚱하다 하면 무시한다고. 뚱뚱하면 보기 싫다고. 내게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발끈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그거 언니랑 삼촌 생각이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보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너만 그렇게 생각해, 이곤아. 뚱뚱하면 살기 얼마나 힘든지 아니? 삼촌이랑 어른들이 다 너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왜 그렇게 싸가지없게 대답하는 거야?"



26살의 사촌 언니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받을 상처 따위는 일절 관심 없는 말이었다.



"사람들이랑 다른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하는 말이잖아, 이곤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무슨 대답을 하든 이들에게 내 말은 싸가지없는 말대꾸일 테니까. 잘못된 신념이 친숙한 공간에서 한 곳에 모여 친숙히 스며든다. 핏줄의 가스라이팅은, 조언이라는 따뜻한 솜에 포장된 칼바늘이나 다름없었다.


조언이라 가장한 언어폭력을 들었으나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시원한 사이다를 날려주지 못했다. 사촌언니, 삼촌, 친가 어른들이 집을 떠나고 방에 혼자 남은 나는 억울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런 와중에 언니가 주는 술을 받아먹어 텁텁한 입가가 너무 싫었다.


그렇게 억누른 마음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니까, 하며 넘겨 보냈다. 대학을 다니며 부지런히 생활했고, 부지런히 공부하며, 부지런히 사람을 만났다. 뚱뚱했지만 부지런했다. 여전히 힘들면 먹었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넘겨 보낸 줄 알았다.


그러나.



'..... 너는 말라서 모르겠지만 나는 다르거든'



왜 남자를 사귀지 못하냐며 묻는 누군가의 말에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어느 순간 '남들과 다르다'라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뚱뚱하기에 다르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사는 게 더 힘들 거라는 생각까지도 했다.


던진 돌에 맞아 모나 지기 시작한 것을 몰랐다.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92p. "당신을 위한 충고를 해주는 사람은 당신의 감정 또한 고려한다"




또 다른 대한민국 비만인의 흔한 클리셰. 이유 없이 욕먹기.


중학교 2학년이었다. 두 살 아래의 남동생과 동네에 있는 수학학원으로 같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남동생은 모태 마름인지라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찌 않는 체질이었다. 그래서인지 네가 동생 거까지 뺏어 먹었냐는 우스갯소리도 많이 들었고 둘이 서있으면 남자애한테 가야 할 살이 여자애한테 다 갔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평소처럼 학원 앞 주차장을 가로질러갈 때 동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 두 명이 뒤따라 오고 있었다. 주차장은 돌자갈이 깔려 있었고, 운동화 아래로 울퉁불퉁한 발아래로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뒤에서 저들끼리 오버하며 웃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러든 말든 나와 동생은 수학학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신발에 짓밟혀 부딪히는 자갈 소리들 사이로 뒤에서 남자의 말이 들렸다.


"앞에 허벅지 차이 좀 봐"


인생에 아무것도 아니었을 순간은 몇 마디의 말로 평생의 나를 이루게 되기도 한다.


"여자애가 저렇게 뚱뚱하면 차라리 남자애여도 마른 게 낫지 않냐?"






















다이어트하는 것과 상처를 받았던 순간들을 되새김질하며 마주하는 무슨 상관이고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다. 그냥 잊어버리고 지금 당장 운동하고 식단 조절해서 살 빼는 것에만 집중하는 이득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런다.



'다 잊고 네가 살 확! 빼버리고 예뻐져서 그렇게 말한 사람들 콧대를 눌러줘!!'



분명 위로의 말이고 동기가 되는 말이다. 여러 사람들이 저 말을 상기시키며 다이어트에 성공했을 것이다. 여러 영화에서도 뚱뚱했던 여주인공이 예뻐져 저를 무시했던 사람들의 콧대눌러주는 사이다 장면으로 나온다. 나도 그런 장면을 보면 재밌고 좋아했고 통쾌했다.



어떻게 보면 남주가 쓰레기인.... 영화지만 재밌게 본 쉬즈 올 뎃



어떨 땐 영화 속 여주가 부럽기도 했다. 런데 나는 현실을 살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빼버려? 확 예뻐져? 설령 뺀다 해서 예뻐지는 거 맞아? 나는 그 말에 있는 역설을 차마 표해낼 수 없었다. 상처 줬던 사람들이 살이 빠지고 예뻐진 나에게 태도를 바꾼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나는 정말 겉으로 보이는 것만 중요하구나, 싶기 때문이다.


걱정하며 해준 말과 용기지만 정말 성의 없다고 생각했다. (못된 거 같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떡해) 애초에 살을 빼버리는 방법부터 모르는 걸. 그래도 20살은 일단 해보자고 생각했다. 20살 어쨌든 자존감이 깎이고 어린 마음에 상처가 있어도 결국 벗어날 방법은 다이어트라고 생각했다. 빨리 빼고 빨리 '정상'의 몸이 되어 이 기분에서, 이 취급에서 벗어나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20살 첫 다이어트는 2개월 만에 12kg을 감량했다. 그리고 정확히 2개월만 10kg의 요요를 맞이한다.


21살 대학교 여름방학, 두 번째 다이어트는 1개월 동안 7kg을 감량했다. 그리고 2주 만에 7kg의 요요를 맞이한다.


21살 대학교 겨울방학, 세 번째 다이어트도 1개월 동안 6kg을 감량했다. 이 또한 한 달 만에 요요가 왔다.


22살 대학교 겨울방학, 네 번째 다이어트는 2개월 동안 5kg을 감량했다. 다행히 몇 달간은 다시 찌진 않았다.


하지만 23살,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취업준비가 겹치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렇게 10kg이 쪘다.


23살의 나는 또다시 체지방 49.8%가 되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여러 번의 다이어트 실패 뒤로 나는 남과 다르고, 못났고, 남들보다 힘들 거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더불어 하강선을 그리는 학점은 더욱 나를 좌절시켰다. 대학에 있는 시간 외에는 침대에 누워 웹툰만 보면서 현실을 비관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렇게 우울했으면서도 사람을 만나면 밝게 지내기 위해 평소보다 에너지를 쏟았다. 이런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비어진 에너지에 허기를 느끼고, 거짓 배고픔에 음식을 찾고. 그 무한 굴레 속에 나는 계속해 위축되었다. 달라질 수 있는 기회인 다이어트를 4번이나 실패한 나에게 실망스러웠다. 스스로에게 돌을 던졌고, 나는 계속해 모나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한 이후 1년간 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24살의 나는 쉬기로 했다. 몰아치는 새로운 스트레스들에 번아웃이 심하게 와 쉬어야만 하는 한계가 온 것이었다. 다이어트를 떠나 자신을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이어트고 뭐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푹 쉬면서 하고 싶은 거 하자는 마음이 굳세어져 있던 때였다.


다가오는 과제 마감기한이나 시험도 없고, 실습 일정도 없고, 부딪히는 사람도 없고. 해야만 하는 일이 없는 시간을 보냈다. 혼자 여기저기 여행도 다녔고, 글도 썼으며 새로운 도전도 했다.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고, 고민 없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잠도 잘 잤고, 닥쳐오는 스케줄들에 불안하지도 않았다.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당장 한 달 뒤, 일주일 뒤 계획이 없는 건 처음이었다.


'...... 그러고 보니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네'


두 달 정도 이렇게 지냈을 때 알았다. 배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에 놀라 시계를 봤다. 오후 1시. 변화가 생겼다. 식욕이 줄었다. 살이 빠지진 않았지만 먹는 것을 찾는 빈도가 줄었다. 뭐지, 싶었다.


어차피 계속할 일이 없으니까 언제든 먹을 수 있어서 그런가? 하며 별생각 없이 지나 보냈다.


그러다가 계획에 없던 노브랜드 버거 알바를 시작했다. 어쨌든 용돈이라도 벌긴 해야 하니까. 주 5일, 30시간 정도 일하기로 했다. 두 달 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고 일을 배우고, 실수하고, 그러다 감정 상해하고. 나름 재밌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에너지를 썼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고. 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허나 다시금 허기를 느꼈다.


쉬고 난 뒤 분명한 변화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사람 사이에서 허기를 느끼는 때가 있고, 그때마다 미성숙한 대처기전이 나를 흔든다는 걸. 주로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나 시간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극심해졌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181p. 피스토리우스의 말

" 당신 자신이 바로 그 도덕가가 되어서는 안 되오! 당신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시오. 가령 자연이 당신을 박쥐로 만들었다 해도 타조가 되려고 애써서는 안 된단 말이오. 당신은 번번이 자신을 자책하고 있소.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불을 들여다 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시오. 그래서 어떤 예감이 당신을 찾아들고 당신의 영혼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것들에 당신의 몸을 맡기시오. "



결론적으로 나의 다이어트 해법은 확 빼고, 확 예뻐지는 고강도 운동과 빈약한 식단이 아니었다. 나의 다이어트는 내가 어떤 때에 에너지를 쓰고 스트레스받으며, 허기를 느끼는지 알아야만 했다. 왜 그런 것들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인생을 돌아봐야 했고 왜 식욕을 참지 못하는 지도 알아야만 했다.


다른 사람과 같아지기 위해서 하는 다이어트도 아니고, 예뻐져 다른 사람의 코를 짓눌러주는 다이어트도 아니고,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기회도 아니었다.


나는 '나'로 평생 살아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확 빼고, 확 예뻐지는 게 아닌. 천천히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참을 수 있는 다이어트를 해야만 했다. 평생 타오를 게 아니면 잠깐 타오르는 불은 꺼트리기로 했다. 평생 동안 유지할 수 있는 식단, 평생 동안 유지할 수 있는 운동. 그리고 평생 동안 유지할 수 있는 '건강한 나'.


그게 이번 다이어트가 여태까지의 다이어트와 다른 점이었다.


럼에도 나는 여전히 뚱뚱했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허기를 참아야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허기를 느끼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헤매는 나를 치유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대한민국의 흔한 비만 여성 5147588호가 아니라, 그저 나로서 건강하게 살기 위한 것이었다.




































데미안의 181p. 피스토리우스의 말은 데미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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