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사야 할 때, 가격이 싸고 좋은 것을 발견하면 ‘무조건’이다. 할인이 붙으면 더욱 그렇다. 할인을 하거나 가격이 싼 데에는 대게 이유가 있다. 결제 버튼을 누를 때마다 가성비를 따지고 합리적인 소비를 떠올리지만, 마음이 조금 삐딱해지면 ‘가성비’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 된다.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항공권이 싸면 이유가 있다. 싫어도 환승을 해야 하거나, 환승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 기내식 별점 평가가 낮은 항공사를 선택해야 한다.
값싼 항공권을 찾아 앱 서핑을 할 때와 달리, 항공권을 회사에서 사주는 출장이 되고 빨리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경우에는 가성비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 ‘가성비’ 따위는 잊어도 좋은 편리한 스케줄의 항공권이다. 도쿄로 출장 갈 때 회사에서 사주는 ‘김네다’ 항공권이 그렇다.
서울에서 도쿄로 출장 갈 때는 멀리 인천공항이 아니라, 가까운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수 있다. 김포공항에서 도쿄로 떠나는 항공권은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도쿄행 항공권보다 비싸지만, 김포공항을 이용할 수 있다면 좋은 점들이 있다. 인천공항보다 훨씬 가깝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공항에 갈 수 있고, 아침에 조금 더 늦게 일어나도 되고, 이른 새벽에 택시를 타면 30분 만에 공항에 도착할 수도 있다.
도쿄에도 인천공항처럼 도쿄의 메인 공항이면서 큰 나리타공항이 있지만, 서울의 김포공항처럼 도심과 더 가까운 하네다공항이 있다. 하네다공항에 내리면 모노레일을 타거나, 택시로 30분이면 도쿄역이 있는 도심에 도착할 수 있다.
도쿄로 출장을 갈 때는 항상 김포공항과 하네다공항을 이용한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대신 더 비싼 항공료를 받는 항공사는 김포-하네다 항로를 ‘비즈니스 셔틀’이라고 광고한다. 시간이 금쪽같은 비즈니스 트래블러를 타겟으로 하는 ‘김포-하네다’ 항공편을 줄여서 ‘김네다’라고 부른다. 매일 아침 8시 전후로 출발하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마지막 귀국 편을 탈 수 있으니, 덕분에 해외 출장이기는 해도 당일치기 도쿄 출장도 가능하다.
도쿄 출장이 당일치기가 되면 회사는 비싼 도쿄 호텔비를 아낄 수 있고, 새벽부터 직원을 일으켜 출근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비행기에 태워 보낼 수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회 초년생 출장자에게 당일치기 도쿄 출장은 점심과 저녁 식사로 도쿄의 오리지널 일식을 먹고 돌아올 수 있어서 처음에는 좋아하는 일이기만 했다. 김네다 비행의 실체를 여러 번 진한 피곤함으로 맞이하기 전까지는.
단골 이자까야에서 서비스로 야키토리 한 접시를 받아도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서 먹는다. 김포공항 발권 카운터에 서면 야키토리 한 접시와는 급이 다른 단골 서비스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김네다 항공권을 파는 항공사의 단골이 되면 단골 서비스의 끝판왕이자 종결자, 좌석 업그레이드를 받는 날이 있다. 항공사에서는 ‘frequent flyer’, 즉 단골 고객을 따로 표시해서 고객 관리를 하고, 김네다 라인을 타는 날이면 거의 매번 비즈니스 클래스 업그레이드를 해주었다. 예전에는 탑승자 이름 뒤에 ‘SFU’(Suitable For Upgrade)라고 기록이 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김네다 비행에 비즈니스 클래스는 좌석이 조금 더 클 뿐, 비행시간이 짧으니 제대로 된 코스요리는 어림없고, 기내식은 이코노미 좌석에 나오는 것과 거의 똑같다. 대신, 정장 재킷은 받아서 넣어주고, 도착하면 옷장에서 다시 꺼내 준다. 그리고 이코노미 클래스보다 큰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열고 뭔가 일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꾸준히 다니던 김네다 출장을 다녀오기 전날이다. 퇴근할 무렵, 내일 만날 도쿄의 담당자와 메신저로 인사를 나누었다.
“Robin-San, See you tomorrow for lunch in Tokyo.”
“Thank you, Morita-San”
일본식 채팅이다. 이름 뒤에 꼭 ‘San’을 붙인다. 일본 사람에게 한국 사람은 외국인이면서 동양인이라, 영어 이름 ‘Robin’ 뒤에 항상 우리말로 ‘~님’, ‘~씨’라는 의미의 존칭어 ‘San’을 붙여준다. 일본인 입장에서 한국인과 다른 찐 외국인인 미국 사람의 이름 뒤에도 종종 ‘San’을 붙이는데, 그럴 때는 꼭 이름 앞에도 ‘Mr.’를 붙인다. 예를 들면, ‘Mr. Biden-San’이 된다. 미국 사람한테는 ‘Mr.’와 ‘San’ 둘 다 붙여주는 부지런한 사대주의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한국 사람한테는 일본식으로 ‘San’만 붙여서 절반만 외국인 사대주의를 보여준다. 아니면, ‘김상’이라고 부르거나, ‘로빈상’으로 부르지 미국인을 부를 때처럼 ‘Mr.’와 ‘San’을 동시에 불러주는 경우는 절대 없었다. 미국 사람에 대한 존중의 절반만 보여줘서 찔끔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도, 태평양 전쟁 말기에 미국에 핵을 맞고, 그 후에 플라자 합의를 통해 경제적인 압박을 받으며 살아온 일본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어머어마한 두려움을 가지게 만든 미국의 힘에 자연스레 생긴 사대주의라고 이해해주고 봐주기로 한다.
갑작스레 생긴 도쿄 출장이라 퇴근 후에도 미팅 자료를 읽어보고 작은 기내용 사이즈 캐리어로 짐을 쌌다. 출장을 앞두고 늦은 시간에 침대에 누우면 피곤함과 스트레스가 동시에 몰려와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데, 그런 날은 자기 전에 꼭 맥주 한 캔을 따서 마셔야 잠들 수 있었다. 인천공항보다 가까운 김포공항 출발이라 아침 비행기에 대한 부담이 덜하기는 해도 다음날 아침 8시에 출발하는 김네다를 타려면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이른 아침의 김네다 출국 스케줄 덕분에 체크인 시간보다 훨씬 이른 오전에 동경역 근처 마루노우치의 호텔에 도착해서 작은 캐리어만 맡기고 옆동네, 오테마치에 위치한 사무실에 도착했다. 모리타 상을 만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신 후, 업무 모드로 전환한다. 이른 아침에 서울 충정로의 집에서 일어났는데, 제때의 점심을 도쿄에서 모리타 상과 먹다 보면 ‘비즈니스 셔틀’이라며 비싼 항공료를 받는 김네다는 과장 광고 멘트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4시에 고객사 사무실을 방문했다. 4시에 방문 약속을 잡은 이유는 비즈니스 미팅이 끝나고 저녁 식사로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고객사 사무실을 떠나 긴자에서 저녁을 먹고, 오모테산도 거리의 와인바에서 2차를 마쳤다.
늦은 밤 도쿄의 중심 거리를 걸어서 호텔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었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한 도쿄 출장 첫날의 밤이 깊었고 거의 만취 상태이지만, 9시간 시차가 있는 영국 런던 사람들이 한창 일하고 있는 시간이다. 런던에서 오는 이메일에 실시간으로 답장을 한 뒤, 종일 서울에서 날아온 이메일과 뉴스 정보지를 읽고 버리고를 반복한다. 자정이 넘으니 메신저로 런던의 동료들이 퇴근한다고 했다. 먼저 퇴근한다고 굳이 알려준다. 2차까지 술을 마신 뒤라 운전도 말아야 하는 혈중 알콜 농도 0.05%를 확실히 넘긴 상태로 눈을 비벼가며 도쿄의 호텔 방에서 아직 일하고 있는데, 런던의 동료는 꼭 먼저 퇴근하는 걸 밉상스럽게 알려주곤 한다.
취준생의 선택
마음 졸이던 취준생이 선택한 해외 출장자의 현재 모습이다. 항상 너무 피곤하기만 한 김네다 출장길이었지만, 사실 학생 시절에, 그리고 심리적으로 더 암흑기였던 취준생 시절에 너무나 동경하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 겪을 해외 출장의 모습이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도쿄 사람들과 일하고, 밤이 늦도록 호텔 방에서 런던의 동료와 이메일과 메신저로 일해야 하는 것인 줄 미리 알았다면, 영어 공부를 덜 하고 다른 일을 찾아볼 걸 하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었다. 한때 유행어처럼 ‘내가 이러려고...,’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다가, ‘그럼 어떡할건데...,’를 아주 잠깐 곱씹고는 아무런 결론 없이 호텔방에서 스르륵 잠이 든다.
외교관이 되고 싶어 했던 이유도 비슷했다. 외국 생활과 해외 출장에 대한 ‘있어빌리티’ 모습을 상상했었다. 넥타이를 하지 않았지만, 슈트를 입고 비행기를 타고, 공항 라운지에서 노트북을 켜고, 커피 한잔을 테이블에 두고 일하는 모습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학생 시절에 공항 라운지나 비행 중인 기내에서 본 검은색 노트북과 비싸 보이는 가죽 소재의 노트북 가방으로 무장한 외국인 비즈니스 트래블러의 모습이다. 학생일 때 본 외국인들의 모습은 멋있기도 했지만, 공항이나 비행기에서도 일을 하다니 바쁜 척해 보이려는 허세일 거라는 의심을 품었다. 그런데, 취준생 딱지를 떼고 허세라고 의심했던 공항에서 일하는 외국인 출장자의 모습이 나에게도 현실이 되어버렸다. 허세도 좀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모습에 허세는 한 스푼도 들어있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외무고시를 포기하고 신분이 고시생에서 예비 백수, 취준생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내려갈 데도 없는 바닥까지 쳐본 문과 출신 취준생은 찬밥, 더운밥, 비빔밥을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적성, 직업의 의미, 워라밸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Latte is horse...’ 2,000년대 중반, ‘워라밸’이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수백 군데 지원서를 내고, 서류전형을 통과한 소수의 회사에서 면접을 보고 어렵사리 구한 직장들은 로이즈 선박보험 브로커, 외국계 보험회사와 재보험회사였다. 불안, 낙오, 불효, 안습의 대명사 ‘취준생’ 딱지를 떼기 위해 긴 고민 없이 선택한 일이었다. 승률 1할도 되지 않았던 입사전형을 뚫고 겨우 합격한 회사였다. 바라던 해외 출장도 있을 것 같고, 평타 이상의 연봉에 보너스도 있다는 판단으로 입사를 선택했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비행기 좌석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일하다 보면 종종 하늘 위에서 머릿속이 빙빙 도는 게 느껴진다. 바쁜 현재를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과거 고시생, 취준생 시절의 기억은 조금씩 잊혀지고 흐릿해진다. 과거의 일에 대한 기억은 점점 더 희미해지겠지만, 현재의 내 모습은 전적으로 과거 한 순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해외 출장을 꿈꾸던 취준생의 선택은 도쿄역 앞 호텔 방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과거와 현재는 그렇게 철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바쁜 현재의 순간도 미래의 어떤 내 모습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미래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없을 뿐, 바쁜 현재의 모습과 연결성은 분명히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큰 캔버스에 동시에 그려 넣으면 ‘인생’이 되고,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커리어는 긴 인생에서 꽤 중요한 부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