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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김홍재 Oct 30. 2022

Day 2, 시차는 24시간

김네다 2일차

Day 2    


다음날 새벽 5시, 아직 호텔 조식 레스토랑이 문을 열지 않은 이른 시간이라 호텔 조식을 패스하고, 하네다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오늘은 반대로 하네다에서 김포로 가는 ‘김네다’ 비행 편을 타야 하는데, 술이 덜 깨서 기내식을 먹을 수가 없다. 어젯밤 마신 사케와 와인이면 숙취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비행기에서 얼음물과 커피만 마시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는데 오전 10시. 지난 24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어지러운데 택시를 타고 광화문 사무실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다. 도쿄 출장을 다녀온 직후이니 상사와 점심을 먹으며 출장 디브리핑을 했다. 오후에 겨우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밥을 먹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가끔 밥을 먹고 사무실에 앉으면 토하기도 한다. 아침에 김포로 돌아오는 김네다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비행기에서 토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와서 토를 하고 말았다. 헤드셋을 끼고 통화를 하고, 성격 급하신 고객님의 어지러운 요청을 듣고 이메일을 수십 통 쓰고 나면 퇴근 시간이 된다. 그리고 오늘은 서울의 고객님과 광화문 뒷골목 참숯불 고깃집에서 비즈니스 디너와 술.


어젯밤 도쿄에서 마신 술이 깨지도 않았는데 또 술을 마시고 집에 왔다. 이미 몸은 고산병과 잠수병 증상, 두통에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앞으로 커리어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저녁식사 자리는 아무리 피곤해도 회피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겨우 씻고 잠들기 전이다. 어제와 오늘, 24시간의 도쿄 출장을 위해 꾸렸던 기내용 사이즈 캐리어를 열고, 셔츠와 양말, 속옷만 새것으로 바꿔 넣었다. 내일 새벽에는 인천공항에서 홍콩행 비행기를 타야 하니까. 가끔 홍콩은 태풍이 와서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모레 온다는 태풍이 내일 홍콩을 완전히 덮어주길 바라던 날도 있었다. 태풍님이 홍콩으로 빨리 날아와 주신다면, 출장은 하루씩 밀리고 내일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출근하는 대신, 가까운 광화문 사무실로 출근하면 되니까. 잠들기 직전까지 날씨 앱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지만 그런 고마운 ‘땡큐 태풍’은 자주 오시는 분이 아니었다.     


비행시간이 늘어나지만 유럽이나 미국으로 떠나는 장거리 비행이 오히려 덜 피곤하다. 도쿄나 홍콩 출장길은 짧은 비행거리 탓에 도착 첫날부터 사무실로 가서 일하거나, 저녁 약속부터 잡혀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이동을 하면 도착하는 첫날은 아무런 일정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싱가포르까지는 가장 긴 단거리 비행에 속하고, 단거리 비행일수록 일정과 약속이 빡세다. 그중에서 초단거리 초편리 스케줄 김네다가 제일 빡세다. 도착하자마자 꽉 찬 하루의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1박 2일 김네다는 너무 편리하지만 김네다 출장이 끼어 있을 때는 진짜 피곤했다. 서울 집에서 도쿄 사무실로 바로 출근한다. 다음날 새벽, 도쿄 호텔에서 광화문으로 출근하고 서울 집으로 퇴근한다.


종종 회사의 상사와 동료는 이런 말을 했다.


"Cabin is our home."

- 서울 출장이 많은 에바를 아는 미국인 상사


"사람을 아주 갈아 넣는다."

- 진짜 고생하는 한국인 동료


해외 출장의 어려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도쿄 출장이 유난히 더 힘들었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이유는 초단거리, 초편리 비행 스케줄 ‘김네다’ 노선 때문이다. 서울과 도쿄를 오가는 이동 시간이 짧으니, 거의 KTX를 타고 서울-부산을 오가는 정도의 느낌이다. 실제로 서울 집에서 도쿄 사무실까지 5시간이면 이동이 가능한데, 서울에서 부산으로 출장을 가도 목적지까지 비슷하게 5시간 정도 걸린다. 김네다 덕분에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를 만나고 일을 시작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시차'이다. 도쿄에서 공부했고 도쿄 출장이 잦은 선배가 말하길, 도쿄 출장이 제일 힘든 이유는 시차가 '24시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농담을 할 때도 있었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결정한다.


가끔 너무 피곤하기는 하지만, 해외 출장을 동경하고 마음 졸이던 취준생이 선택한 현재의 내 모습에 크게 불만은 없다. 과거의 선택이 현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현재는 미래와도 연결되어 있으리란 생각이 들면, 현재의 직업과 일은 미래의 나에게 치명적으로 중요한 것임을 매일 느낀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는 현재가 힘들고 지쳐도 소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건강을 해치지 않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에 안착하기까지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대로 지속하다가는 지쳐서 병상에 누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래에 경제적 자유를 위해 이렇게 바쁘고 지친 일상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맞는 길인지 차분하게 생각해보고 싶지만, 현재는 너무 바쁘고, 바쁜 탓에 지치고 항상 피곤하다. 차분하게 나를 돌아보며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미래의 나’에게 달려가도 괜찮은지 생각하고 물어보아야 했다. 가장 소중한 ‘미래의 나’와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다.


혼자 살아도 혼자 있는 시간은 늘 부족했다. 해외 출장을 다니며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가장 중요한 ‘미래의 나’와 조용히 대화할 시간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그리고 ‘미래의 나’와 해야 하는 대화는 침묵 속의 대화이다. 조용한 공간이 필요하고 깊은 대화를 위한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취준생 시절에 급한 마음에 챙겨서 담지 못했던 워라밸은 다시 주워 담고, 붙잡고 싶어도 한 번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주중의 나는 항상 너무 바쁘고, 너무 피곤하고, 쉬는 날에는 데이트도 하고, 친구도 만나야 하니 현재의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다. 혼자 보내는 시간마저도 ‘남’들의 이야기이지만 너무 재미있는 유튜브와 넷플릭스도 봐야 하고, ‘남’들이 뭘 먹고 얼마나 재미있게 사는지 알고 싶으니 SNS도 끊을 수가 없다. 나는 항상 ‘남’들과 비즈니스를 위한 의사소통만 하고 있으며, 쉬는 시간에도 ‘남’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쉰다.


온전하게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집에서 혼술하는 시간도 좋았지만, 원룸 오피스텔에서 하는 혼술에는 릴랙스가 최우선이었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만큼의 진지함을 담기 어렵다. 잠들기 전 혼술하는 날의 술잔 속에는 하루의 일과로 생긴 피곤함을 녹여내는 정도의 휴식이 최대치 역할이었다.


그런 일상에 온전하게 혼자인 나를 만나 차분하고 진지하게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딱 하나 있다. 장거리 출장길에 비행기에서 보내는 14시간이다. 14시간 동안 혼자 앉아서 먹고 자는 비행기이다. 아무튼, 또 비행기이기는 하지만, 무한 리필로 커피와 술을 주고 노이즈 캔슬레이션 헤드폰만 있으면 차분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카페가 된다. 비행기 옆자리에 나란히 앉게 된 일이 대단한 인연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만, 옆에 앉은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않는 게 더 좋았다. 운이 나빠서 수다쟁이가 옆에 앉는 날엔 눈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는 없던 룰을 만들어 나를 보호하려는 불필요한 부담이 생길 뿐이다. 감옥보다 좁은 공간이라도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침묵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좋았다.


말을 줄이고, ‘미래의 나’와 침묵으로 대화할 수 있는 14시간. 도착지가 뉴욕 JFK공항인 14시간의 비행이다. 게다가 김네다와는 다르게 도착 첫날은 아무 일정이 없는 장거리 비행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일정을 챙겨야 하는 김네다와는 다른 편안한 비행이 될 것이다. 토요일 아침, 김네다가 출도착 하는 김포공항을 지나 인천공항에서 뉴욕으로 이륙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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