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 1856-1924)의 말입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말은 독일의 예술학교 바우하우스를 거쳐 지금까지 건축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 디자인 분야에 널리 통용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정작 뛰어난 서비스와 놀라운 제품을 잘 만드는 우리 기업이 일하는 모습, 즉 내부의 모습을 보면, 형태가 기능을 잘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오피스 레이아웃이 그렇습니다.
“상무님 방이 왜 필요할까요?”
“상무님, 전무님, 방에서 뭐하시나요?
상무님과 전무님의 역할과 업무를 고려할 때 방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없앨 수 있습니다. 상무님과 전무님의 임원실은 신입사원 때부터 그렇게 본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뇌리에 각인되어 있을 뿐입니다.
상무님이 사무실에서 하는 일(Function)은 결제, 전화통화, 회의입니다. 실무를 붙잡고 몇 시간씩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드문 모습입니다. 임원이 대표이사나 최고 경영진에 보고하는 경우에도 보고서는 부하직원들이 작성합니다. 결제는 마우스나 펜만 있으면 되고, 회의는 회의실에서 하면 됩니다.
임원이 되면 외부 활동이 증가하면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영업과 마케팅 지원을 위해서 외부 활동의 빈도가 높아지거나, 조찬 포럼에 참석하고 조금 늦게 출근하는 경우, 비즈니스 식사와 미팅을 이유로 가장 먼저 사무실에서 나가고 가장 늦게 사무실에 돌아오는 상황이 임원으로 승진하기 전보다 많이 생깁니다. 출장도 많아집니다. 결제나 컨펌,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상무님 방은 자주 비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 가까이 홍콩, 싱가포르에 있는 글로벌 기업의 오피스에서 임원실을 없애는 회사들이 늘었습니다. 그렇게 상무님 방을 없애버리고 그 공간을 중형 회의실로 쓰거나 쪼개서 소형 회의실 2-3개로 활용합니다. 안마의자와 암막커튼을 설치하고 직원의 휴식 공간으로 만드는 기업도 있습니다.
앞으로 재택근무와 유연근무가 더 확산되면 상무님 방의 존재 이유는 더 줄어들지 않을까요? 세계 최고 기업의 CEO가 되어서도 넓은 공간의 CEO Office를 사용하지 않고 직원들과 같이 오픈 워크스페이스에서, 같은 책상에서 근무하고 있는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많이 알려진 사례입니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해외 출장이 많다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시스템에 자신의 임원실을 오픈하여 회의실로 예약이 가능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무님의 방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각인 효과와 우리의 조직 문화, Seniority- Based System 때문입니다. 기능에 따라(Function-Based) 사무실 업무공간의 재배치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능에 따른 오피스 공간의 리셋(Reset)
기능에 따라 오피스 공간을 리셋할 때, 구체적인 방향성을 세 가지로 잡을 수 있습니다.
첫째, 보안과 기밀 유지를 위해서,
임원에게 제공되는 방은 없지만 인사 업무를 다루는 직원에게 직급에 상관없이 방을 제공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인사 담당자는 연봉, 보험, 인사고과와 관련한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인재 유지와 재배치 계획, 그리고 인적자원 확보와 관련한 기밀 정보를 다룹니다. 특히 헤드헌팅과 관련한 업무는 기밀 유지가 필수입니다. 인사 담당 직원의 문서와 모니터 화면이 노출되지 않도록 별도의 업무 공간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직급에 관계없이 별도의 사무공간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경영과 관련해서 기밀 사항을 다루는 담당자 또는 연구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에도 별도의 독립된 업무공간을 제공합니다.
둘째, 항상 부족한 회의실
중소형 회의실은 항상 부족함을 느낍니다. 부서 간 협업이나 XFT(cross functional team) 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짧고 작은 단위의 회의가 빈번한 조직에서는 임원실보다 중소형 회의실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스튜디오 또는 휴식공간으로 활용
갈수록 출판사, 증권사, 제조업 등 비즈니스의 유형을 막론하고 블로그 마케팅, 인스타그램 마케팅을 위해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온라인에 포스팅하는 업무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제품 사진을 찍고, 유튜브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스튜디오 공간의 필요를 느끼지만 아직 스튜디오 공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회사가 많습니다. 임원실의 폐지나 축소로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을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필요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무실 노동은 시력, 목, 어깨, 허리에 부담을 줍니다. 통증으로 병원이나 한의원 치료를 받는 친구나 동료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자주 비어있는 상무님 방보다 많은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안마의자를 갖춘 휴식 공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공간(Space)과 형태(Form)에 반응한다.
공간의 형태는 결국 사람에 영향을 미칩니다. 집을 청소하고,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중고 시장에 팔아서 공간을 확보하고, 책상을 정리정돈하는 수고로움은 주거 공간의 질(quality)을 높이기 위한 노력입니다. 휴식의 질이 좋아지고, 자녀의 학습 능률이 올라갑니다.
회사에서 직원은 오피스 공간과 형태에 반응합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직원의 스트레스를 낮추기 위해 비용을 지출하면서 휴식 공간을 확장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워크스페이스에서 직원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높은 생산성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반대로 공간의 구조적인 뼈대에 문제가 있다면 오피스에서 구성원이 보여줄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는 금방 한계에 도달하기 쉽습니다.
신입사원 때부터 각인된 잘못된 공간 배치를 그대로 두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한정된 사무실 공간은 Seniority-Based System에 따를 일이 아니라 Function-Based Floor Plan을 제대로 갖출 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