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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살이 Jun 27. 2021

무서운 이용자 덕분에 도서관 탈출!

순두부멘탈 사서, 떠나기로 결심하다!

얼마 전, 도서관 근무 중 이용자 때문에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이용자가 자료실에 들어와 자신이 들고 있던 도서  2권을 대출반납대에 내동댕이치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반납이요'라고 말했습니다. 크진 않았지만 책이 떨어지는 '' 소리와 무례한 이용자 태도에 놀란 저는 '두고 가시면 반납 처리해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연체해서 연체료  거니까 지금 '라고 강압적인 말투로 반말을 하시더군요. 허허..


 그때  사고 회로가 잠시 멈췄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굉장히 많으신 어르신들이 그러는 경우는 종종 있는데 상대적으로 젊은 30-40대가 그런 식의 반말을 내리꽂은 적은 없기에...)  초가 흐른  정신을 차리고 도서를 반납 처리했습니다.  도서들은 반납 당사자가 빌린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 추정되는   앞으로  1권씩 대출된 책들이었습니다. 각기 다른 사람이 대출한 도서들을 한꺼번에 반납 처리할 경우, 마지막으로 처리사람의 대출 현황이 화면에 남습니다. 직원이 사용하는 도서관리 프로그램에는 남은 가족 연체를 하지 않은 상태라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체 안되셨네요."


저의 말을 들은 그 이용자는 즉시 맞받아쳤습니다.


"연체됐다고, 빨리 계산해!"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던 저는 또다시 사고 회로가 멈췄고, 재빨리 '정신 차리자!'를 속으로 되뇌며 마지막 사람이 아닌 다른 가족의 대출 현황을 찾아 클릭했습니다. 이용자 말처럼 그 분은 연체를 하셨더군요. 저는 곧바로 연체료가 얼마인지 안내했습니다. 그 이용자는 가방에서 동전을 꺼내더니 그마저도 내동댕이치더군요. (땡그랑) 허허...


 그 동전을 집어 드는 순간, 비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비참함도 잠시, 동전을 집어 들자마자 그 사람은 또다시 자신이 들고 있던 다른 한 권으로 대출반납대에 놓여있던 두 권을 걷어 치우시더군요. 그러더니 그 책을 성의 없이 툭, 내려놓았습니다.


"이것도 반납!"

"네, 반납됐습니다"


이번에는 도서회원카드를 내밀며 화난 목소리로 '예약도서'라고 단어만 말씀 하시더군요.

저는 반납된 책을 치운 뒤 제자리 뒤에 있는 서가에서 예약도서 두 권을 꺼내와 대출반납대에 올렸습니다.


"이거 한 권은 내꺼 아닌데!"

"아, 네..."


저는 너무 당황해서 '내가 잘 못 보고 두 권을 가져왔나' 싶어 위에 놓여 있던 책 한 권을 뺐습니다.


"아니다. 다시 줘여, 내가 한 거 맞네!"

"네... 2권은 0월 00일까지입니다."


 예약도서 2권까지 마친 저는 그 이용자에 대한 업무가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1분도 채 안된 시간이었지만 지옥탕을 다녀온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핸드폰을 보며 서 있었습니다. 찰나와 같은 시간에 지옥의 맛을 경험한 저는 사고 회로가 완전히 멈춰버렸고 심장이 터질 듯 쿵쾅쿵쾅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치 없는 손은 덜덜 떨렸고, 그 순간에도 떨리는 손을 들키고 싶지 않아 있는 힘껏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쥐었습니다. 여기 있다가는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아 마음속으로 천천히 "일, 이, 삼"을 세고 화장실로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습니다.


 화장실 한 켠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의 일방적이고 무례한 태도가 저한테는 폭력처럼 느껴졌습니다. 불쾌함, 공포, 억울함, 슬픔, 답답함, 무력함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의 뭉탱이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패턴과 흐름이라 마치 교통사고 같았습니다. 마음의 준비 없이 찾아온 일에 '이게 뭐지,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만 들뿐이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나 갈등이 있은 후에 그런 강도 높은 무례함을 이용자가 보였다면 화내는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느닷없이 일어난 그 일은 그저 두려울 뿐이었습니다. (마치 일말의 예고 없이 일어나는 '묻지 마 폭행'처럼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런 사람 때문에 화장실에 숨어 우는 제 자신이 초라하고 가여워 견딜 수 없었거든요.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저런 사람 때문에 이렇게 상처 받고 두려워하지 말자! 괜찮아! 당당하자!'


상처 받은 마음이 더는 나약해지지 않도록 담금질을 해가며 마음을 추스르고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제가 대출반납을 하다 말고 사라졌다며 그 사람이 민원을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설상가상이었습니다! 관리자로부터 그 말을 들을 땐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가 되면서도 억울했습니다. 그 사람의 말대로라면 저는 아주 불친절한 직원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전후 사정을 몰랐던 관리자는 그 민원인에게 연신 사과를 했고, 해당 직원에게 주의도 주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친절교육도 더욱 강화하겠다며 일단락시켰다고 말했습니다.


 평소에도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용자들에게 도서관 원칙 상 불가한 일이라고 아무리 친절하게 안내를 해도, '비협조적이고 융통성 없다'며 직원들을 비난하는 일은 왕왕 있습니다. (가령 본인 상태가 대출중지인데 그 도서가 자녀의 권장도서라 꼭 빌려가야 하는 상황이면 초긴장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해주는데 왜 당신만 안해주냐며 따져들어도 답이 없습니다. 안되는 건 안되는 거고, 이런식이라면 더 원칙대로 하는 수밖에요! 이외에도 이용자의 일방적인 짜증과 은근한 까칠함은 늘 있는 일입니다. (그런 가벼운 모욕들과 독들이 쌓이면 병이 되더라구요) 하지만 그날, 그 이용자가 제게 보인 날카로운 눈빛과 멸시는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처음 겪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누구 하나 걸려봐, 가만 안둬'일정도로 화가 나셨는지 정말 죽일 기세로 저를 쏘아보았습니다..ㅠㅠ) 이런 일이 또 발생한다 해도 도서관측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해야 하고 이용자가 요구하면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과 별개로 저는 제가 한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민원인은 제 사과를 요구하지 않아서 관리자에게 주의를 듣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날, 저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내게 다짜고짜 반말하며 함부로 대하는게 정상적인 범위인가... 나한테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 사람에 비하면 내가 사라진 일은 아주 일부분인데, 왜 그 사람한테 도서관은 무조건으로 사과를 해야 하지?'

'이 조직은 민원을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무와 시스템은 있는데 직원을 보호하는 제도는 전혀 없구나...'

'공공기관의 고질적인 민원시스템이 과연 바뀔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알까? 앞으로도 계속 봐야하는데 어쩌지…?’

'유리멘탈인 내가 이런 곳에서 제정신으로 몇십 년을 일할 수 있을까?'



이해하려 노력도 해보고, 억지로 삼키려 시도도 해봤지만,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돈을 엄청 버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마음고생하며 여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 저런 사람들 때문에 내 맑은 눈동자가 '동태 눈깔'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겠어. 그럴 바엔 그만두자. 새로운 길이 있을 거야!'


 그렇습니다. 저의 결론은 '퇴사'였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게 어떻겠냐는 관리자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정규직 사서라는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흔들리면 떠나지 못할 것 같아서요. 적더라도 매달 들어오는 월급의 중독성도 크구요. 어딜 가도 힘들겠지만 이런 식의 모멸감과 서러움은 두번 다시 겪기 싫었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종사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데'로 시작하는 민원도, 대출반납이나 하면서 편하게 일한다며 은근한 무시와 멸시를 건네는 사람들도, 반납하지 않은 책을 반납했다며 불같이 화를 내다 끝내 무인 반납함에 책을 넣어두고 조용해지는 사람도, 다른 도서관은 다 해주는데 왜 여기만 안 해주냐며 따져 드는 사람도, '민원글 올릴 테니까 알아서 해요'라며 협박하는 인간들도, 어쩌다 직원이 실수하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하냐'며 '바보냐'고 삿대질하는 이용자 한테 그저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치욕도, 더는 참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동안 근무하며 힘들 때마다 '에이, 오늘 똥 밟았네' 생각하며 쿨하게 넘기고, 애써 괜찮은 척, 어거지로 이해하고, 꾸역꾸역 참아가며 지냈는데 결국 마음의 병이 되어 터져버린거 같아요.


 저도 느닷없이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에게 ‘당신, 무례하군요’,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저 바보 아니에요’, ‘저도 당신때문에 힘드네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인상 팍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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