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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살이 Nov 07. 2021

걸어서 제주 한 바퀴! 5

다섯 번째 이야기, 돌고 돌아 이제는 나의 길!



자연을 가까이한다는 것


 3주간 제주를 걸으며 제일 많이 본 것은 '땅'이었습니다. 해가 뜨거워 자연스레 고개를 떨군 이유도 있었지만 숲길과 돌길 같은 여러 지형을 걷는 탓에 바닥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칫 한 눈을 팔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땅 다음으로는 바다와 산(오름), 하늘을 가장 많이 봤습니다. 서울 같은 도시에 살면 보기 힘든 것들을 제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었고, 낮동안 푸르른 자연을 보니 그간 쌓인 눈과 마음의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제주 올레길 땅바닥




 

두 다리로 걷는다는 것
 

 저의 걷기 인생은 제주를 걷기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평소에도 짧은 거리는 당연히 걸어가고 퇴근 후 집까지 1-2시간 거리도 종종 걸어갈 만큼 걷기를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걷기가 가벼운 운동이나 기분 전환에 해당된다면 올레길 걷기는 몸과 마음을 갈고닦는 수양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길을 완주하기 위해 걷기에 집중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집니다. 잡념이 사라지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걱정과 불필요한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송이나 SNS를 통해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제 자신이 볼품없이 느껴지기도 하고, 하고 싶지 않아도 남들이 하니까 따라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진짜 제 모습을 찾으려 시도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주변에서 보내는 걱정과 우려가 저의 발목을 붙잡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기회를 놓쳐 후회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어지러운 일상을 떠나 하루 종일 걷기만 하니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금 더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돌아가면 세상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지' 굳은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잠을 잘 잔다는 것   

 걷기로 인해 생긴 적당한 육체피로 또한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걱정을 달고 사는 편이라 자려고 누우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쉬이 잠들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걷는 동안은 달랐습니다. 암울한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눕자마자 잠이 드니 매일 밤 평화로웠습니다. 양질의 수면을 취하면 낮동안 열심히 걷게 되고, 잘 걸으니 성취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졌습니다. '몸을 많이 움직여야 잘 잔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몸소 깨닫게 된 지금은 소란스러운 밤이 찾아와도 '내일은 좀 더 움직여야겠다' 생각하며 마음을 편안히 합니다.





이제는 마이웨이를 걸으렵니다


  저에게 ‘장거리 걷기’는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올레길 완주는 복잡한 제 머릿속을 정리하도록 도와주었고 ‘앞으로는 더 좋아질 거야’라는 희망을 품게 해 주었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었던 한 때, 제 삶의 ON/OFF 버튼이 있다면 누군가 OFF를 눌러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스스로 죽기는 무서우니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하지만 걷고 오니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멋지게 살려고 아등바등 몸부림치지 말고 촌스럽고 작더라도 남은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겠다’고요. 그러다 또 인생이 고달프면 ‘하루 종일 걷지 뭐’라고요.


 

승객 여러분! 잠시 후 저희 비행기는 김포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끝!







재미로 읽는 올레길 완주 7문 7답

 

1. 걸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더위를 많이 타는 편도 아닌데 더위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태양은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일뿐더러 정해진 길을 걸어야 하니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맑은 날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누릴 수는 없었지만 흐린 날은 걷기가 훨씬 수월했습니다.
 

2. 걸으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장 행복한 순간은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일단 걷기만 하면 최소 하루에 한 번,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거 말고는 '깨끗하게 샤워를 끝내고 차가운 맥주 한 캔 마실 때'와 '더워 죽겠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 때'입니다. 역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더위라 시원함과 관련된 행복이...

 

3. 3주간 제주를 걷고 와서 달라진 일상이 있나요?

 집에서 10km 넘게 떨어진 곳을 걸어서 다녀올 만큼 걷기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꾸준히 걸어서 육신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의 건강까지 쭈욱 유지해 보려 합니다.

 

4. 살도 빠졌나요?

 네. 빠졌습니다. 몸무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옷이 낙낙해진 걸 보면 아마 지방이 조금 빠지고 그 자리에 근육이 붙은 듯합니다.  

 

5.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어디인가요?

 한 코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좋았다기보다는 코스별로 마음에 드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9월 말에서 10월 중순까지 걸었는데 계절마다 좋은 구간이 조금씩 달라질 것 같아요. (자연과 마을 위주며 카카오맵을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카맵이 올레길 표시를 잘해놨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1코스 : 종달리 해변부터 목화휴게소까지, 성산일출봉부터 광치기 해변까지

1-1코스 : 우도 산호해변길, 검멀레 해변부터 우도등대까지

2코스 : 대수산봉부터 혼인지까지

3-B코스 : 신풍포구부터 신천목장까지, 소금막 해변부터 표선해수욕장까지

4코스 : 세화항부터 토산중앙 교차로까지

5코스 : 남원포구부터 큰엉 바위까지

6코스 : 보목포구부터 구두미포구까지, 거믄여해안부터 정방폭포까지

7코스 : 외돌개부터 돔베낭길까지, 야자수동산부터 법환포구까지, 배염줄이부터 속골까지

7-1코스 : 고근산

8코스 : 논짓물해변부터 대평포구까지,

9코스 : 대평포구부터 월라봉까지, 퇴적암지대부터 화순금모래해수욕장까지

10코스 : 썩은다리부터 사계해변까지, 사계 발자국 화석발견지부터 송악산까지, 셋알오름부터 하모해변까지

10-1코스 : 가파도는 두 시간이면 충분하니 모두 걸어보시길!

11코스 : 모슬봉, 신평곶자왈부터 인향동 마을회관까지 

12코스 : 수월봉부터 용수리포구까지

13코스 : 낙천의자공원부터 저지오름 정상까지

14코스 : 선인장자생지부터 월령포구까지, 금능해수욕장부터 협재해수욕장까지

14-1코스 : 노루쉼터부터 오설록 티뮤지엄까지

15-B코스 : 한림항부터 수원리 복지회관까지, 곽지해수욕장부터 한담해변까지

16코스 : 남도리쉼터부터 돌염전까지, 항파두성부터 숭조당길까지

17코스 : 이호테우해수욕장, 어영소공원부터 용두암까지

18코스 : 사라봉부터 애기업은돌 산책로까지, 시비코지부터 닭머르까지

18-1 : 황경한의묘부터 돈대산까지 (추자도)

19코스 : 함덕해수욕장부터부터 북촌포구까지

20코스 : 월정리해수욕장부터 행원포구까지, 평대리해수욕장

21코스 : 석다원부터 지미봉까지

 *볼드 처리한 구간은 이 중에서도 한 번 더 추천! 
 

6. 혹시 오래 걸을 때 꼭 추천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나요?

 '인진지 띠너 발가락 양말'과 좋은 '등산화'요! 한 번은 계곡물이 신발 안으로 들어간 적 있었는데 축축하거나 찝찝한 느낌이 안 들었어요. '혹시 신발 안 열기로 벌써 말랐나' 싶어 한참 걷다가 신발을 벗었는데 젖어 있는 게 맞더라고요. 등산화의 통풍도 한몫했겠지만 인진지 양말은 습기를 빠르게 흡수하고 건조하는 기능이 제가 신어 본 양말 중 최고였습니다.


7. 걸으며 즐겨 들었던 노래가 있나요?

 신나는 아이돌 노래나 탑백을 즐겨 듣기도 했지만 유난히 많이 들은 노래는 아이유의 '가을아침' 입니다. 특히 아침 숲 속을 걸을 때는 항상 들었던 것 같아요. 맑고 깨끗한 아이유의 목소리를 제 '귀'가 정말 좋아해요!


 나머지 두 곡은 어릴 적 즐겨 들었던 90년대 노래로 god의 '길'과 S.E.S의 '달리기'입니다. 오랫동안 길을 걸으니 자연스레 두 곡이 생각났고 가사를 곱씹으며 '지금 들어도 가사가 와닿네...'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god, '길' )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S.E.S, '달리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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