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너 요새 내 글 보고 있니?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 그러니까 학창 시절의 나를 아는 친구를 만나면 우리가 알지 못한 서로의 시간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묻고 답하고 싶어진다. 나의 한심하고 이상하고 침체되고 고통스러웠던 지난 몇 년의 시간을 친구가 너무 놀라지 않을 만큼만 말해야 한다고 두어 번 다짐하고 슬쩍 눈치를 살피지만 내가 친구를 신뢰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 계획은 거의 실패하고 만다. 초여름, 그러니까 내가 급히 스페인행 비행기 티켓을 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랜만에 너를 만났다. 홀로 쌓아두기만 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우리는 점심을 먹는 것도 완전히 잊었다. 정확하게 우리가 아니라 나였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쓸 정도로 바쁘다는 너는 한 번도 핸드폰이나 시계를 보지 않았다. 소화시킬 겨를도 주지 않고 두서없는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버린 게 아닐까 걱정스러운 얼굴이 된 내게 너는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얼굴을 했다. 너는 이 이야기를 이제부터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생각이 말로 모두 흘러 사라져 버리지 않게 제발 그 입을 꾹 다물라고 손가락으로 집게 모양을 만들었다. 나는 울고 너는 웃었다.
입속의 말들을 꾹꾹 눌러 목구멍 뒤로 삼키고 어렵고 불편하고 부끄럽기도 한 그 이야기를 너의 단어와 문장들로 남김없이 쓰라고 말했다. 그렇게 매일 쓰다가 어떤 벽을 만나게 되거든 누구에게도 묻지 말고 매일 그 벽을 허무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래도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두려워질 때는 이렇게 공원 산책이나 하면서 커피나 마시자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을 수만 있다면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내년 봄쯤이면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했다. 너는 내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했다.
너에게 전화하고 싶어질 깨마다 입술을 깨문다. 헤어지며 내 어깨를 감싸 안아주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나는 정말로 네 말대로 하고 싶어진다. 소시오패스라고 놀려서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맙다. 네가 다음날 쿠팡으로 보내 준 오쿠타 히데오의 소설은 인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읽기가 좀 어렵더라. 두 챕터쯤 읽고 책을 덮어 버렸지만 네가 이 책을 왜 내게 보내주었는지 잘 알고 있어. 그것도 참 고맙다. 그나저나 나는 이제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왔으니 선선한 가을이 오면 다시 만나 너의 첫 소설과 완성하지 못한 나의 에세이에 대해 비평과 토론을 좀 해보면 좋겠구나.
독자나 대중의 사랑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온 우리는 어쩐 일인지 서로를 칭찬하거나 격려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어느 해에는 나의 작업물을 너무 자랑하고 싶어 몇 권의 책을 보내기도 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나 역시 친구의 작품을 다 보지 못했다. 브런치에 올린 설익은 네 편의 글 덕분에 너를 다시 만났고, 나는 다른 방향으로 글을 써볼 용기를 얻었다. 이 글은 누구에게나 한 명쯤 있을 법한 끝까지 들어주는 친구를 생각하며 썼다. 세상의 잣대와 속도에 나를 맞추며 효율과 쓸모를 증명하기 벅찬 너와 나에게는 두서없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저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은 챗GPT가 모두의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다행이고, 조금은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