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는 생각의 공허

MZ의 성지 런베뮤에 MZ는 없다

by 그랑

지난해 가을이었나 연희동에서 공방을 하는 선배네 놀러 갔던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 내 작은 브랜드에 대해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라도 털어놓을 요량으로 용기를 낸 터였다. 클라이언트 일 없이 내가 만든 브랜드로 먹고사는 일이 가능한가가 내 최대 관심사였다. 선배는 회사를 다니던 시절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했지만 수익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했다. 그리고 내 귀에 솔깃한 한 마디. "저 건물 보이지? 런던베이글뮤지엄 부부가 샀다잖아. 돈 많이 벌었나봐. 베이글 말고 브랜드 몇 개를 더 한다던데 대단하지?."


부러웠다. 브랜드 하나 잘 만들어 건물을 사다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일, 모두가 꿈꾸는 것 아닌가.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료'의 얼굴을 방송에 볼 수 있었다. 즐겨보는 유튜브 <사고 실험>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언제나 좀 다른 생각을 했다는 유년기 이야기, 다음 세대로 향해 있는 시선, 외부보다는 내면을 탐구하는 기질,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지점에서 묘한 동질감이 느꼈졌다. 일에 대한 깊은 몰입, 표준에서 벗어난 사고방식과 실행력까지 이해되는 점이 많았다. 이후에도 그는 방송에서 자주 보였다. 아마도 책을 홍보해야 했을 것이다. 에디터 후배들이 그 책을 많이 샀다.


표지 드로잉이 마음에 들어서 그의 인스타그램을 찾아갔다. 료는 벽에도 종이에도 무엇이든 자유롭게 그렸다. 낙서 같지만 감각적인, 무엇을 그려도 결국 자신의 얼굴과 닮아져 버리는 드로잉들에서 모든 것이 나로 수렴하는 어떤 에너지가 느껴졌다. 아, 이 사람 예술가구나. 집에 책이 넘쳐나는 중이라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 두고 후배 몇에게 읽은 소감을 물었다. 거의 같은 답이 돌아왔다. "선배, 책은 안 사도 돼. 되게 독특해. 감각적이고 감성적인데 딱히 내용은 없어."


50대 여성 창업가 료가 궁금했다. 40대에 완전히 업을 바꿔 2000억원의 기업 가치 창출을 보여준 그처럼 나도 내 브랜드를 세상에 꺼낼 볼수 있지 있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건장한 26세 청년이 회사 숙소에서 죽었다. 장시간 근로로 인한 괴로사 의혹이 제기 되었다. 이제야 쏟아져 나오는 증언들. 산재를 덮으려 했던 회사의 태도, 창업자의 책 출판과 다양한 방송 출연, 거액의 엑시트. 각각의 시점을 면밀히 살펴봐야겠지만 혹시라도 저 죽음을 마음에 품은 채 방송에 나와 청년을 향해 메시지를 내고, 회사를 매각했다고 생각하면 섬뜩해진다. 슬퍼진다. 설마 그랬을리가.

그녀의 책 유통이 중단되었고, 일부 독립 서점에서 이 책은 청년 노동자의 추모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출처는 알라딘.



결과론적인 것이 맞다.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이라는 제목을 다시 읽는다. 나 역시 '디자인 없는 디자인' '브랜딩 없는 브랜딩' 같은 문구를 자주 사용하곤 한다.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처럼 그런 '디자인' 그런 '브랜딩'을 하고 싶다. 브랜딩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성이라는 옷을 입은 브랜딩 기술자에게 우리가 얼마나 쉽게 속는지 알고 있다. 오래 잡지 업계에서 일하며 브랜딩과 마케팅 산업 가까이에서 그 기술들로 콘텐츠 만들어 먹고 산 내게 이번 사태는 큰 충격이었다. 슬프다. 당분간 베이글은 못 먹을 거 같다. 갑자기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댓원스>의 베이글이 떠오른다. 이놈의 베이글.


이렇게 큰 일을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나. 그들에겐 무엇이 가장 중요했나. 돈이었을까. 어른이 청년에게 이래도 되나. 법적으로 이미 엑시트 한 창업자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새로운 대표는 이 모든 걸 덮고 거래를 성사시킨 걸까. 설계자와 참여자는 누구일까. 적어도 이 일에 관여했던 어른들 모두가 상처받은 유족과 청년들을 향해 진정 어린 사과와 반성의 태도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나다움으로 세상에 없던 브랜드를 만든 놀라운 사람, MZ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업가, 드로잉 하듯 자유롭게 자신의 일을 그리던 창작자, 예술가를 닮은 묘한 매력의 50대 여성 료는 이제 없다. 안 그래도 공허한 책 제목이 더 공허해져 버렸다.



MZ의 성지였던

런던 베이글 뮤지엄에

MZ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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