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건물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버튼 불빛이 하나둘 꺼지며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가는데
선뜻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괜히 다른 층 버튼을 눌렀다.
딱히 갈 곳은 없었지만,
곧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 조용한 복도가 나타났다.
영화관 층과는 전혀 다른,
사무실 몇 개가 보이는
낯선 공간이었다.
사람은 없었고 형광등 불빛만
일정하게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 복도를 걸었다.
구두 소리가 작게 울렸다가
금세 사라지는 적막을 따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끝났다는 느낌,
돌아가야 한다는 느낌,
무언가를 정리해야 한다는 기분.
특별히 힘든 날도 아니었고
무언가를 잃은 날도 아니었는데,
가진 것을 다 써버린 사람처럼
마음이 텅 빈 듯했다.
‘지금 집에 가면 오늘이 완전히 닫혀버릴 것 같아.’
막연한 마음에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는 순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여러 겹으로 깊이 투영된 얼굴.
조금 지쳐 보이고, 물기를 머금은 눈이
선명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잠깐 그 얼굴을 마주했다.
누군가를 대하듯.
그제야 알았다.
나는 앞으로 가는 대신
내 안을 맴돌고 있었다는 것을.
슬픔의 자리에서,
어린 날의 감정에서,
같은 길을 반복해 걷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덧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저녁 공기가 안으로 밀려들었다.
노을이 내려앉은 밤,
영화가 남긴 여운은 여전히 마음에 머물러 있었지만 나는 그 호수 바깥으로 한 발 내디뎠다.
곧장 내려가지 못하고
괜히 다른 층을 서성이던 시간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숨을 고르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괜히 다른 층에 내렸다가
다시 내려오는 것처럼,
삶은 언제나 곧장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버튼 하나를 더 눌렀다가
다시 내려오는 그 짧은 우회도
여전히 나의 길이라는 걸.
돌고 돌아 결국은 돌아가게 되는
그 품 전체가 나의 삶이라는 걸.
나는 집에 대해 생각한다.
길고 긴 길을 걷다가
결국 돌아가게 되는 나의 집.
집이 내가 산책을 하며 느꼈던 안온함처럼
나를 받아주는 공간이기를 바랐다.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돌고 돌아 삶을 여행하다
길 위에서 마주했던 마음들이
모두 나의 품이 되어 그 끝에는
안온히 안길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오래도록 돌고 돌아
도착하고 싶은 집에 닿을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