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 한강
주인공 영혜가 말하는 "......꿈을 꿨어요." 대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실 세계의 잔인함에서 도피해 식물이 되어간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평범한 여성처럼 더 예뻐지려는 꿈을 꾸지 않고, 더 성공하려는 꿈을 꾸지도 않는다. 다만 햇빛 아래 식물이 되려 한다. 지구상의 생물 중에 식물만이 다른 생명체를 약탈하지 않고 살아간다.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건 햇빛과 물이고, 그건 가만히 피어만 있으면 얻는다. 이 얼마나 평화로운 생존 양식인가! 그래서 영혜는 첫 번째 단편의 말미에서 병원 분수대(물) 옆에서 상의를 벗고(햇빛 쬐려고) 멍하니 앉아있는다.
그녀가 이런 꿈을 꾸게 된 건 어린 시절로부터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것 같다. 영혜의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군인이었는데 전쟁터의 경험 자체가 약한 자는 총 맞아 죽고, 강한 자는 그걸로 공을 세운다는 원리를 체득하게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육식을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딸에게 상처를 입힌 이웃집 개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인 것도 강자에게는 권리가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영혜 어머니의 가치관도 작중 대사로 드러난다. 채식주의에 빠져 홀쭉하게 마른 딸을 달래며 아래처럼 말한다.
"네 꼴을 봐라. 지금. 네가 고기를 안 먹으면, 세상사람들이 널 죄다 잡아먹는 거다. 거울 좀 봐라, 네 얼굴이 어떤가 보란 말이다."
어머니 역시 약육강식(弱肉強食)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치관은 비단 이 둘 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세계는 경쟁으로 돌아가는데 내가 잘난 만큼 덜 잘난 사람 몫을 빼앗아가는 원리이다. 사회 시스템 자체가 공장, 도살, 식은 피 같은 단어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순수했던 영혜는 이같은 폭력적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꿈 속으로 도피한다. 그리고 사람으로선 이상한 식물적 행동 양식들을 보이기 시작한다. 먼저 그녀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는다. '젖가슴은 아무도 죽이지 않고', 아기에게 생명의 영양분도 되기 때문이다. 또 성관계도 거부한다. 꽃은 옷 벗고 같이 껴안고 숨 헐떡거리는 교접은 안 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남자인 영혜 남편은 놀라서 아내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하지만 회사 사장이 주최한 부부동반 모임에 간 이 커플은 회식 자리에서 모두의 시선을 끌고야 만다.
아까부터 아내의 젖가슴을 흘끔거리고 있던 전무 부인이 말했다. 마침내 그녀의 화살은 아내에게 직접 날아왔다.
"채식을 하는 이유가 어떤 건가요? 건강 때문에...... 아니면 종교적인 거예요?"
"아니요."
아내는 이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 태연하고 조용하게 입을 떼었다. 불현듯 소름이 끼쳤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꿈을 꿨어요."
나는 재빨리 아내의 말끝을 덮었다.
"집사람은 오랫동안 위장병을 앓았어요. 그래서 숙면을 취하지 못했죠. 한의사의 충고대로 육식을 끊은 뒤 많이 좋아졌습니다."
정작 아내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내가 나와의 잠자리를 의도적으로 계속 피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 그녀는 숫제 청바지 차림으로 잤다 - 우리는 아직 겉보기에 정상적인 부부였다. 하루가 다르게 그녀가 여위어가고 있다는 것, 새벽에 내가 알람시계를 더듬어 끄고 몸을 일으켜보면 어둠속에서 눈을 치켜뜬 그녀가 꼿꼿한 자세로 누워 있다는 것이 예전과 다를 뿐이었다. 회사에서 주선한 외식 후 사람들은 한동안 나를 미심쩍게 대했으나, 내가 성사시킨 프로젝트가 괄목할 만한 수입을 거둬내자 모든 것이 묻혀지는 듯했다.
다른 이를 해치지 않고 살아 가려는 영혜의 순수한 꿈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못했다.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격리 병동에 갇히게 되었는데, 정신과 의사는 망상장애(delusional disorder)에 이은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혜에게는 아주 당연한 삶의 양식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