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 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by 차거운

오늘도 역시 오미마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오미-방광, 방광-산동까지의 두 구간에 도전하기로 한다. 오미마을과 운조루는 이제 너무 익숙한 곳이 되어버렸다. 8시 전에 오미저수지를 지나서 큰길 가로 내려왔다가 용두마을 이정표를 지나 하사마을 방향으로 걸었다. 상사마을을 지나 논에 허수아비가 예술적으로 서 있는 지점을 지나 황전마을 물가의 자리에서 간식을 먹고 길 위로 올라서니 여기가 바로 화엄사 아래에 있는 상가이자 국립공원안내소가 있고 버스도 탈 수 있는 황전마을이다. 우측으로 올라가면 화엄사인 것이다. 그렇게 지나면서도 이 주변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점이 놀랍다. 차로 빠르게 지나가면서 본 풍경들과 내 두 발로 뚜벅뚜벅 걸으면서 천천히 둘러보는 풍광이 어떻게 다른지 걸으면 걸을수록 곱씹게 된다. 한 마디로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둘레길, 올레길을 걸으면서 보이고 들리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 국토의 삶의 결이 보이고 숨결이 느껴진다.

상가를 끼고 산자락길을 따라가면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점도 지나 한참을 가서 구간 종료 지점인 방광마을에 도착했다. 시간은 12시가 다 되었다. 방광마을 넘어 참새미골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주저하는 아내를 독려(?)하면서 일단 산동 방향을 향해 출발했다.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고 사진도 가끔 찍으면서 당동마을 이정표가 있는 곳을 통과한 시점은 1시 36분이었다. 구례 예술인 마을을 지나 한참을 더 가니 지난 월요일에 오미-난동 구간의 시종점 표시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방광에서는 약 4km 정도를 지나온 곳이다. 이 시각은 2시를 넘긴 상태였다. 지리산 둘레길 구간에서 읍내를 굽어보며 걸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구례를 지나는 이 구간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천은사, 화엄사 연곡사 등이 구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구리재에 도착하니 산동이 아직 5km 정도 남았다. 정자가 잘 지어져 있다. 산사태가 난 지점도 있고 산을 감돌아 구례수목원쯤 내려오니 마님께서 힘들어서 짜증을 낸다. 더 가기 힘들고 화장실도 가야 한다고. 구례수목원에서도 한 3km 정도 남았지만 수목원 매표소에 이야기를 해서 화장실을 이용하게 한 후에 택시를 불러 오미까지 갔다. 이날 택시비가 가장 많이 나왔다. 28,840원이었다. 아내가 지쳐 보여 구례장터의 소머리국밥을 한 번 더 먹자니까 웬일로 반대하지 않는다. 국밥을 먹고 산동 하나로마트에서 장도 조금 보고 해서 숙소로 돌아와서 보니 아내는 많이 힘든지 내일은 쉬겠다고 한다. 그러다가 보니 내일은 원래 숙소를 나가야 하는 날인데 아직 여정이 2구간 정도 남았기에 하루 연장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내는 내일 남원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나는 내일은 주천센터에 차를 세우고 산동으로 왔다가 모레는 숙소에서 짐을 정리해서 차에 실은 후 주천센터에 다시 차를 세고 운봉까지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전에 정 선생과 통화하면서 여차저차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 그리고 이날 놀라운 뉴스가 우리나라에 전달되었다. 후배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텔레비전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소설가로서 뛰어난 성취를 보이고 있는 강이가 누구보다 상복 역시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올해의 수상자로 발표되는 이 사태는 놀라우면서도 기분 좋은 자극을 준다. 물론 강이의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을 전에 읽고서 나 자신이 다소 당혹스러웠던 기억과 함께 많은 학생들과 함께 ‘소년이 온다’를 일독한 적은 있지만 ‘흰’이라든가 맨부커 상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를 다 읽지 않았기에 조금 미안한 느낌도 갖고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4.3을 다룬 것이라는데 아직 읽지는 않았다.

지금 이 폭풍 같은 반응이 지나고 차분해지면 강이의 작품을 오르한 파묵이나 욘 포세 등과 같은 반열에서 차분히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대해서도 그렇고 모옌이나 위화 같은 작가들과 같이 선입관 없이 통독을 해보리라. 아직은 작품에 대해서 뭐라고 개인적으로 전체적인 견해를 정리하기에는 판단 근거로서의 읽기 행위가 결여된 상태다. 우선 읽어야 하리라. 그동안 내가 많이 읽기에 게을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먼저 읽어라. 그러고 나서 차분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새롭게 평가할 수 있으리라.

강이의 수상에 대해서 진심으로 축하한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작가들이 사실 많이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언어적인 소통의 차원에서 번역의 문제가 장애가 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강이의 경우와 같이 국내외의 문학적 소통과 공감의 장을 낭중지추처럼 뚫고 나가는 작품들에는 시대적인 관심사에 올바르게 부합하는 지향과 오랫동안 축적한 글쓰기의 저력 둘 다가 필요할 테니 그러한 측면에 대한 개인의 성취에 대해서 아낌없이 갈채를 보낼 필요가 있다. 우리 문화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자. 세상에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강이의 수상도 그런 관점에서 축복할 일이다.


*** 지리산 둘레길을 모두 돌고 귀가한 뒤에 한강의 책을 쌓아놓고 읽은 후에 나름대로의 읽기에 대한 결과물을 정리해서 기록한 글이 있으니 이날 스스로에게 다짐한 약속은 지켜진 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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