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 2024년 10월 8일 화요일

by 차거운

오늘은 어제 걸은 곁길에 해당하는 오미-난동을 제외하고 본선에 해당하는 구간을 걷기 위해 가탄에 있는 화개중학교 외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였다. 일요일이었던 엊그제와 달리 오늘은 평일이라 화개중학교의 일과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날이어서 주차장이 조금 다를 것 같았지만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차가 많지는 않았다. 길가 슈퍼에서 스탬프를 찍고 다리를 다시 건너와서 가탄에서 송정까지 그리고 송정에서 오미까지 두 구간을 걷는 여정을 시작했다. 다만 아내의 발 상태와 피로도는 변수가 될 것이다. 8시 이전에 일정을 시작하였고 법하마을 뒷산 길을 가파르게 올라가고 또 올라간다. 작은재에 도착한 시점이 8시 33분쯤 되고 여기에서 50분 정도 더 이동하여 기촌마을 이정표가 있는 지점까지 도착했다.

길을 가면서 저 멀리 섬진강의 물굽이가 아득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하고 좋은 날씨에 감사하면서 걷는데 이 길의 걷기 난도가 왜 상에 해당하는지 알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돌로 둘레길을 따라 석축을 낮게 쌓은 이들의 노고와 산에 대한 애정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사단법인 숲길이 여기를 관리한다고 한다. 우리의 삶 전체는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우리는 타자의 도움과 호의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우리 역시 다른 이에게 인간으로서의 연대와 호의를 잊지 말아야 한다. 삶에는 이렇게 함께함의 책임이 따른다.

가탄-송정 구간의 가장 높은 지점인 목아재에 도착했다. 시간은 11시 10여 분쯤. 쉼터도 마련되어 있고 임도와 만나는 지점이라서 시야도 툭 트인다. 목아재를 지나 1시간을 더 가서 송강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여기는 차를 대기에도 그렇고 쉬기에도 그렇고 애매한 지점으로 보인다. 아내는 발에 물집이 잡히고 해서 한 구간을 더 가서 오미까지 갈 수가 없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택시를 불러 가탄으로 돌아가서 차를 갖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쌍계사나 한 번 보고 가기로 했다. 쌍계사는 지리산에 여러 번 왔었음에도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이번 기회가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터이다.

우리나라의 절은 산 좋고 물 좋고 절 좋고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서구의 성당이 시내에 주로 있다면 불가의 절은 수행도량으로서의 성격 때문인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있다. 쌍계사는 건물이 상당히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느낌을 준다. 쌍계사에는 불경 보관소와 금강계단이 있으니 이름하여 불, 법, 승보의 3보 사찰이라는 말일까. 쌍계사를 찬찬히 둘러보고 오미마을에서 오미정을 살펴보고 나서 8일, 13일 이렇게 5일장이 서는 구례장터로 가보기로 한다.

구례장터에 차를 세우고 시장을 한 바퀴 돌아도 딱히 구매할 것은 없고 점심으로 가마솥 국밥집에 가서 소머리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만 원인데 집사람이 국밥을 먹겠다고 하는 것은 여행 다니면서 처음이 아닐까 한다. 새우젓을 추가해서 넣고 양념을 넣어 먹으니 피곤한 상태이고 배도 고프고 해서 그런지 맛이 꿀맛이다. 소머리국밥을 이렇게 맛있게 먹어보기는 처음이 아닐까 한다. 집사람도 만족도가 꽤 높은 편이다. 늦은 점심을 잘 먹고 나오다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대추감이라고 하는 걸 먹을 간식으로 좀 사고 생대추를 샀는데 별로 맛이 있어 보이질 않는다. 대추가 물기가 없고 씹는 맛이 덜하고 푸석거린다. 차라리 감을 좀 더 살 걸 그랬나 싶다.

구례읍내를 벗어나서 숙소로 오다가 이정표를 보고 천은사로 향했다. 예전에 천은사에서 성삼재로 올라가는 버스나 승용차를 세우고 도로에서 통과세와 같은 비용을 징수하는 것 때문에 많은 지리산 등산객들이 감정이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는 이제는 그런 비용이 사라졌다고 하니 좋은 일이다. 그리고 절의 문화재 관람료 징수 관행도 사라졌고. 물론 정부에서 국고로 보조해 주는 부분이 있기는 할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소승불교에서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탁발의 전통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대승불교인 동북아의 불교에서 사찰이 재산을 소유하고 경제적인 안정을 바탕으로 수행을 하는 관행도 의미는 있겠지만 경제적인 부와 종교적인 청빈은 상극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서구의 역사에서도 수도원과 주교좌의 영지나 교황령은 종교인들을 하나의 정치적 세력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탁발과 보시에 의존하는 승려나 종교인은 늘 겸손하게 신에게서 인간을 통해 주어지는 호의에 늘 기대어 존재할 수밖에 없기에 겸손과 하심의 미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입장료만으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사찰이나 종교 기관이 있다면 과연 신도들의 아픔에 진정으로 도움을 주고 공감할 수가 있을는지 잘 모르겠다.

천은사를 돌아보고 이와 이렇게 된 거 성삼재를 향해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성삼재는 예전에 노고단을 통해 지리산 종주를 하고자 할 때 화엄사 계곡을 따라 걸어서 올라가지 않을 때 지름길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올라갔던 기억을 남긴 곳이다. 큰 동서 내외분과 딸내미가 어렸을 때 같이 왔던 기억이 난다고 아내가 말하여 기억을 더듬어 보니 딸내미와 같이 온 기억이 내게는 흐릿하게 남아 있다. 아주 갓난아기 때여서 내가 안고 노고단까지 갔다고 한다. 성삼재에서 내려와 숙소에 도착한 후 정리하고 쉬었다. 오늘이 집을 떠나온 지 5일 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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