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 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by 차거운

아내가 떠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방을 싸고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남원에서 10시 30분에 강남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출발했다. 9시 20분쯤 집사람을 터미널에 내려주고 나는 바로 주천 둘레길 안내센터로 이동했다. 9시 30분경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역방향으로 산동면사무소를 향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리산 둘레길 21개 구간의 총연장은 289km 남짓 된다고 한다. 9시 46분쯤 마을을 벗어나 산으로 접어든다. 무너미를 지나고 용궁마을에서도 내용궁마을을 지나 구례와 남원의 경계가 되는 밤재를 향해 가다 보면 지리산 청소년 유스호스텔과 흉물로 건축이 멈춘 리조트 건물을 옆으로 돌아 산길을 제대로 잡아 꾸준히 올라가면서 경사를 높인다. 숨을 헐떡이며 밤재에 오르니 쉴 만한 자리가 있고 화장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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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사람들이 이리로 넘나들었을까. 자동차 없는 삶을 생각하기가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우리의 삶의 속도와 조직 자체가 그렇게 변성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걷는 것이 이렇게 예외적이고 특별한 행위가 되고 만 셈이다. 고성에서 온 잘 생기고 풍채가 좋은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상당히 체력이 좋은 분인 듯한데 3개 구간을 하루에 주파하기도 했단다. 제주 올레길에도 가 봤냐는 나의 질문에 정색을 하고 외국인들이 너무 많이 와서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후배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자랑을 했다. 왜 내가 이렇게 자랑을 하고 싶을까. 이 팔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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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에서 간식을 먹고 다시 기운을 차려 고개를 내려간다. 아직 남은 거리가 많다. 밤재에서 내려가 밤재터널을 지나는 도로와 나란하게 우회하도록 변경된 길을 따라가니 풍광이 걷는 재미가 없고 타박타박하다. 원래는 산자락길로 가야 하는데 공사 중이라 우회를 시키는 중이다. 12월 정도까지 그런 모양이다. 산수유 시목지라는 곳에 도착하니 충무공의 백의종군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시설을 잘 꾸며 놓았다.

정자에 앉아 집사람이 미리 준비해 둔 도시락을 먹는데 2004년에 졸업한 졸업생 00 녀석이 카톡으로 연락을 한다. 여전히 투정 반 응석 반으로 혀 짧은 글자로 안부를 묻는다. 미국에서 이 아이가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지 나는 모른다. 주한미군으로 왔던 한국계 교포와 결혼할 때 한 번 명동에 왔었고 그 뒤로 한 두 번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있지만 자세한 삶의 내막은 잘 모른다. 이제 40세쯤 되었겠네. 내년에 한국에 나올 수 있다니 그동안에도 행복하게 잘 살아가길 기도해야겠다. 모든 사람의 삶은 의지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출발해서 계척마을을 지나 현천마을을 지나서 산동면사무소 앞의 구간 시종점에 도착한 시간이 2시 45분쯤 된다. 체력만 받쳐준다면 하루에 2구간 정도는 꾸준히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누구랑 함께 가느냐에 따라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보조를 맞추면서 함께 걷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여정도 있는 것이다. 아내와의 걸음을 그런 것이다. 가족과의 관계도 그렇고. 내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요소도 그런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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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면사무소에서 멈추지 않고 어제 중단된 구례수목원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한 3km 정도 되는 길이다. 원촌마을을 지나 개천을 끼고 가다가 다리를 지나 큰길을 건너니 구례수목원 방향을 알리는 표지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산동성당 휴게 정자가 있어 물을 마시면서 쉬었다. 그 길로 쭉 따라 올라가니 구례수목원 매표소가 보인다. 매표소 직전에서 우측으로 벅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넘어가면 방광으로 가는 어제의 길이다. 여기까지 해서 오늘의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고 시간은 3시 33분쯤이다. 택시를 타고 주천 안내센터에 가서 차를 갖고 와야겠다.

주천으로 가기 위해 부른 택시가 바로 어제 오미까지 가장 큰 비용을 주고 탔던 그 택시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천센터에 가서 차를 갖고 산동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밤재터널을 통과하고 내려오면서 조금 전에 걸었던 길들을 눈으로 복기해 보았다. 숙소로 오다가 수락폭포 안내 이정표를 보고 이왕 왔으니 한번 보고나 가자 해서 방향을 틀었다. 수락폭포는 볼 만하긴 한데 그 앞에까지 자리에 상업적인 흔적이 너무 짙어서 한여름에는 시끌시끌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없는 시절에 조용히 살펴보고 잘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저녁을 먹고 씻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숙소에 돌아오면서 하루 연장한 비용을 미리 결제했다. 이제 이 숙소도 내일이면 떠나야 한다. 무려 6박 7일간 잘 쉬었다. 숙소 비용만 40만 원이니 여행이란 것은 사실 돈을 왕창 지출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그만큼 얻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인데 잘 모르겠구나. 나중에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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