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하얼빈 06화

계엄령에 대한 단상

by 차거운

1987년 1월과 2월이 다 가도록

여의도 어딘가 신탁회사에서

대학 2학년이던 너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지

삶은 비록 고단하였지만

희망은 호외처럼 거리에서 수군대던 날들

남영동 모퉁이 으슥한 곳에서

종철이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언어도단의 유언비어가

세상을 불태웠고 그을린 그 봄을 지나

유월까지 길게 이어지더니

한열이가 걸개 속에서

머리에 피가 흐른 채 넘어지더니

세상이 물구나무를 선 채 걸어가더니

의문사와 변사와 과로사한 사람들

벌떡 일어나 수의를 입은 채

세종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았지

다들 어디로 갔을까


벙커와 군대와 야구방망이

송곳과 작두 그리고 웃는 돼지머리

지전 몇 장 입에 물고

2024년 12월 3일에 굿판을 벌이려고

나라에 큰 변란이 있다고

방방곡곡 울려 퍼지는 귀곡성


계엄이라는 말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증오가 날름대고 있다


참혹한 기억의 봉인을 해제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미래도 평화도 너희에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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