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 잡고
엄마에게 조금 있다 간다고 전화를 드리면, 그 순간부터 옷을 입고 기다리신다. 그래서 때로는 일부러 엄마 댁 앞까지 가기 전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연말연시를 맞아 엄마를 모시고 시골의 농막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엄마는 부축해야만 겨우 걸으시는 정도다. 엄마를 보면 왜 그리 속이 상한지 모르겠다. 나의 미래의 모습이 될 것이라 생각되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이기적 유전자'인 나는 나 자신을 가장 불쌍히 여긴다. 엄마를 생각하면서 나를 생각하는 자신을 질책하며, 엄마 손을 잡고 농막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에 남편이 따 놓은 눈 맞은 홍시가 상자에 몇 개 있다. 엄마와 하나씩 먹고 들어간다. 농막은 전에 브런치 글에 있는 것을 설명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https://brunch.co.kr/@campo/35
엄마가 다슬기 수제비를 정말 좋아하셔서 맛집에서 재료만 포장해서 가져왔다. 엄마의 다슬기 수제비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는 역시 지난 브런치 북을 소환해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의 다슬기 탕 사랑이 엄마로부터 비롯되었음이 입증된다.
https://brunch.co.kr/@campo/4
엄마께서 어찌 맛있게 드시는지 사진으로 남길 사이가 없었다.
에취!
매운 것도 잘 드시던 엄마는 몇 년 전부터 잘 드시지 못하신다. 그러고 보니, 청양고추가 들어가 조금 얼큰하다. 그래도 수제비를 정말 좋아하셔서, 나머지는 맛있게 잘 드신다. 원래 나의 엄마는 미식가시다. 입맛이 몹시 까다로우신데, 오늘 다슬기 수제비는 만점이다. 다행스럽다.
엄마가 매운 것을 거의 드시지 못하셔서, 보리비빔밥은 내가 맛있게 먹었다. 나도 더 나이 들기 전에 매운 것도 맛있게 실컷 먹어야겠다. 사실 엄마는 다슬기 수제비를 드시고 싶어서 보리비빔밥으로 뱃속을 채우시고 싶지 않은 눈치셨다. 보리비빔밥을 먼저 드리고 수제비 반죽을 떼 넣는데 엄마가 계속 침을 꼴깍하시는 것이 보였다.
배부르시다던 엄마는 군 고구마를 까 드리는 족족 다 드신다.
이것 참 맛있다!
그렇게 몇 개의 고구마를 연거푸 드셨다. 자, 이제 엄마와 추억이 어린 내 글을 읽어드려야지 싶었다. 그런데 엊그제 기가 지니를 연결해 프로그램이 다양해졌다면서 남편이 TV를 틀어드렸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트로트 방송이다. 에잇, 트로트에게 내 글을 빼앗기고 말았다. 결국 오늘도 읽어드리지 못했다. 그런데 솔직히 내가 읽어드리자니 너무 쑥스러웠는데 잘 되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나무를 나무꾼처럼 잔뜩 잘라 놓았다. 장작더미가 풍요롭게 보인다.
농막에는 봄이면 쑥이 가득하다. 20년 동안 한 번도 농약을 치지 않은 땅이기에 더 마음 편히 캔다. 지난봄에 엄마와 쑥을 캤다. 걷기도 힘든 양반이 주저앉아서 어찌나 재밌게 쑥을 캐시든지, 마치 어린아이가 된 모습이셨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의 한마디가 나를 조금 슬프게 한다.
내년 봄에 쑥을 캐러 올 수 있을지.
내가 쑥을 미리 자라게 할 수도 없고 엄마가 봄까지
건강하시기를 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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