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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May 03. 2021

주택으로 이사를 계획 중이라면

오지랖과 적절한 조언 사이

친정 마을 한 지점에 1500여 평의 전원주택 택지를 분양하는 중이다. 며칠 전 우연히 지인에게 친정마을 이름을 알려줬다가 알게 된 정보다. 지인은 최근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동을 구상 중이다.



그 마을 방죽 언저리


나의 친정은 전주시다. 그렇지만 거의 시골에 가깝다. 지금 택지를 분양하는 근방의 산골짜기 계곡물에서 가재도 잡고, 엄마가 빨래를 하시면 우리끼리 목욕도 하고 놀았다. 전원주택 단지의 바로 위쪽은 방죽(농사를 위해 물을 가둔 곳)이었고 택지 분양하는 그곳은 전부 논이었다. 우리나라는 과거 아이들에게 수영을 따로 가르치지 않았다. 심심하면 여름철 물놀이 익사사고가 발생했다. 선생님들께서는 여름방학을 맞이하면 으레 껏 물놀이 안전수칙 유인물을 나눠 주시면서 주의와 당부를 하셨다.


예외 없이 우리 집도 부모님들께서 딸 중에 큰딸인 나에게 막둥이 남동생을 잘 지키라는 엄명을 내리셨다. 나는 열심히 지켰지만 요 녀석이 늘 빠져나가서 나중에 대문으로 버젓이 들어왔다. 나는 부모님께 들키기 전에 얼른 들어가라고 했다.

대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알고 보니, 다락방 창으로 나가서 창밖의 난간을 뚫고 어찌어찌 뛰어내려 뒷동산을 통해 방죽에 가고 만 것이었다. 우리 집 남자 형제 둘은 완벽히 대조적이다. 오빠는 공, 자전거, 물놀이 등을 전혀 못하게 엄마가 온실 속 화초처럼 돌보셨다. 행여 다칠까 주의하시면서 키우신 것이다.

 

나의 경우 엄마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아서 자전거 타다가 버스를 피한다고 시냇물로 자전거와 날라본 경험이 있다. 그때 물에 빠져서 다행히 골절상 당하지 않았다. 겁도 많은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름 모험심도 강한 편에 속했다.


막둥이 남동생은 부모님 그늘이 아니라 나이 차이 7살인 나의 보호 아래에 있었다. 어린 나도 놀기 바빴다. 그러니 동생 역시 들로 산으로 놀러 다녔다. 매우 말썽꾸러기에 속했다.


특히 여름이면 나의 애간장을 태워서 집안에서 사라진 것을 발견하면 나는 직접 방죽에 가서 찾아 데리고 왔다. 깊이가 깊은 방죽은 나에게는 위험하게 보이는 장소였다. 모험심 강한 나도 방죽은 접근 금지이자 죽음의 장소였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수문을 열면 물고기들을 마음껏 잡을 수 있는 희망의 놀이터로 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험심 가득한 남자애들에게 방죽은 그야말로 호기의 대상이자 한번 물에서 노는 맛에 익숙한 후에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게임이었다.


시냇물에서만 놀던 내가 어른이 되어 수영을 배웠을 때, 물이 주는 평화와 만족감을 알게 되었다. 힘을 빼고 누워서 가만가만 다리를 젓는 배영이나 고개를 내밀고 평형을 하는 재미를 느끼니 어릴 적 동생이 왜 그리 방죽에서 놀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 당시 어른들께서 우리에게 잘 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기보다 규제를 더 많이 하셨던 것이 못내 아쉽다.


부동산 정보와 관련된 조언


1) 거기는 과거에 논이었어요. 수맥 확인을 꼭 한 번 해 보시고, 주택지를 선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곳이 과거 물이 가득 든 논이었다는 점에서 수맥 확인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곳을 잘 아는 다른 지인이 지적한 것으로 나는 이 내용을 전했다).


2) 들어가는 도로가 썩 좋지는 않아요. 밤에도 한번 가 보세요.(이것은 나의 직접 경험이기에 권유한 것이다. 운전 실력에 따라 달리 생각할 여자가 있는 부분이다.)

 

3) 기존에 살고 계신 마을 분들과 불협화음에 대해 대비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기존 마을과 약간 떨어져 주택단지가 형성된다. 그러나 가는 길목에 마을을 통과해야 하는 점이 있다. (택지 분양하는 측이 발전기금을 미리 동네에 냈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은 별 것을 다 신경 써야 하니 씁쓸하다.)


4)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말할게요. 저처럼 덜컥 일부터 내지 마시고 먼저 아파트가 팔리는지 알아보세요.


전화를 끊고 보니 모두 부정의 내용이었다. 이게 적절한 조언일까?


나라면? 나는 그곳을 사지 않을 것이다. 여러 여건 상 나의 생각으로는 별로다. 그러나 땅은 시간이 지나면 주변 여건이 달라지기 때문에 두고 볼 일이다. 무엇보다 내가 그 땅에 끌린다면 주변의 조언은 오지랖이 된다. 주택 단지가 조성된다면 길이 더 확장될지 모를 일이다. (이 부분은 아주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누구도 도로로 자기 땅을 쉽게 내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에 대한 조언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만약 땅을 사지 않은 것을 두고 나를 원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전화했다.


우선 1번 항목은 요즘엔 물이 말라서 계곡에도 없으니, 주택지 습기 많을 것 같다는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나의 한마디로 그녀는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풍수지리나 수맥 확인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것이다.) 방죽도 없어진 지 오래라고 합니다.


결국 수맥 확인을 하기로 했단다. 갑자기 영화 미나리가 생각났다. 영화에서 이웃집 백인 남자가 다우징 로드 방식으로 수맥 확인을 한다. 우리나라의 수맥 알아보는 방식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런 방식이 맞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마음속에 묻힌 의심을 걷는데 도움이 될는지 정말 도움이 되는지 알 길은 없다. 괜히 신경 쓰이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2번 항목은 적절한 조언 같다. 밤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많으니 차로 밤에 가 보는 것이 필요하다. 예전에 어떤 분은 나의 조언을 받아들여 밤에 갔다가 기겁을 하시고 도심지로 마음을 바꾸었다. 만약 운전을 잘하거나 이후 도로에 밝은 가로등을 더 설치할 수 있다면 상황은 나아질 것이다.


3번 항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부분일 듯 보인다. 그런데 다른 길로 다닐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기존의 좁은 마을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하니 농사일 또는 차를 주차하는 경우 조금 힘들 수 있다. 그래도 그것 역시 감수할 정도는 된다.


4번 항목은 정말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낭패다. 전원주택 택지 분양지 또는 도심지 전원주택 단지를 살펴보고 있다는데, 시골의 택지 분양은 그나마 낫다. 택지만 사고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면 후일을 기약하면 된다. 그러나 전주 도심의 전원주택을 사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존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서 졸지에 1가구 2 주택이 될 우려가 있다(나는 이미 유 경험 자다. 그렇기 때문에 강조하는 사항이다). 나의 경우 그나마 공시지가가 낮아서 좀 나았고, 특히 전주가 부동산 조정 지역으로 묶이기 전의 일이었다.


지인은 새 아파트다. 전주의 새 아파트들이 한없이 올랐다. 그런데 실제 매매 성사는 적다고 한다. 부동산에서는 좀 깎아서 내놓는다면 괜찮다는 말을 한단다. 깎는 수준이 얼만큼인지 실제 아파트를 팔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잘못하다가 1가구 2 주택이 된다. 뿐만 아니라 예산이 오버되어서 실생활에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따를 수도 있다. 마음이 급해서 낮게 아파트 매매를 하게 되거나 예산 부족으로 원하는 주택을 짓기가 어렵다.



오지랖과 조언 사이


나는 말을 해 주고도 내내 이건 오지랖인지 조언인지 생각했다. 도움을 주고 싶어서 (나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일에 내가 나서서) 관여하게 된 것이지만 오지랖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요 며칠간 짐 정리로 골머리를 앓는 중인지라 몸이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늦은 시간 전화하다 보니 든 생각이었다. 그쪽에서 먼저 물어보기는 했지만 문자로 주고받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전화까지 하면서 늦은 시간 조언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녀도 피곤한데 듣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도 갑자기 나만 심신이 피곤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지인의 남편은 그 땅을 꼭 사고 싶어서 벌써 설계를 마친 상태라니, 나의 조언은 별반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장밋빛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그 땅에 서서 땅이 나를 부르면 사야지요. 저 역시 주변을 둘러보고 여러 가지를 감안했는데요. 그곳에 내가 꿈꾸는 것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과 가족의 꿈을 응원합니다.



지인 덕분에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고 있는데 문제의 남동생이 딸이 차려준 나베우동 안주로 송명섭 막걸리 한잔 한다고 문자가 왔다.

송명섭 막걸리 팬인 남동생의 늦은 저녁
나의 늦은 저녁(남편이 가져온 치킨 몇 조각에 수박과 맥주)

그래서 나도 캄캄한 마당에 꽃 심다 늦게 와서 저녁으로 맥주 한잔 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오누이의 늦은 저녁 반주 배틀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막걸리가 낫네, 맥주가 낫네 하다가 밤늦게 먹으면 둘 다 좋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집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madang



<먹고, 자고, 입는 것에 관한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be-happy





(그나저나 미나리의 윤여정 씨 덕분에 축제 분위기였다. 배우 윤 여정 씨! 수상 소감 중 두 아들을 향한 뼈 있는 유머, 너무나 멋졌다. 갑자기 대한민국의 엄마들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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