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이름 짓기의 어려움
만화 '빨간 머리 앤'을 정말 좋아한다. 지금도 가끔 다시 시청한다. 앤의 초 긍정 정신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아침은 어느 아침이나 즐겁죠.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고 기대하는 상상의 여지가 충분히 있거든요." 활력이 넘치는 앤에게 아침은 늘 새롭게 펼쳐지는 기대와 호기심 가득한 세계다.
나의 카카오톡 배경 사진을 소개한다. 바로 앤이 창에서 손짓을 하고 있는 장면이 있다. 오래전 제주도 올레길을 걷던 중 어느 바닷가에 위치한 수공예 카페의 창 모습이다.
아침을 노래하는 앤 너머, 비 내리는 바다가 보인다.
새벽에 눈을 떠 누워서 생각했다. 나에게 남은 아침들은 얼마나 될까. 살면서 어떤 아침은 너무 싫어서 그냥 이대로 다시 저녁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 순간을 어찌어찌 헤쳐 나와 오늘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 후로 나에게 아침은 늘 소중하다.
이름 짓기는 공간의 정체성이 되기에 고민이 많았다. 이름이 정해지면서 목표가 정해진다고 여긴다. 때문에 공간을 만들면 꼭 이름을 지어서 부른다. 여름밤에 할머니, 아빠, 엄마, 형제자매와 함께 둘러앉아 수박을 먹던 정겨움이 생각나서 '여름' 또는 '여름밤(summer night)으로 할까 생각했다. 또는 로자문드 피쳐의 소설 9월이 떠 올라서 '9월(september)'도 고려해 보았다.
아침 대신 모닝을 선택한 이유는 발음이 쉽고 내가 영어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이들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살아왔지만 영어공부를 하면서 만난 이들 대부분이 좋았다.
후에 외국인 대상 한국 요리 원데이 클래스를 고려한다. 요리 클래스는 참으로 준비가 어렵다. 그래서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며 한때 가게를 운영했던 실력파가 있다. 또한 한국요리 자격증을 지닌 전문가도 내가 일을 벌이면 함께 재밌게 할 것이다.
사실 원데이 클래스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물론 공간을 사용하게 되고 여러 가지 지출이 있기 때문에 무료로 할 수는 없다.
내가 후일 공방을 운영하여 원데이 클래스를 연다면 주로 각 분야의 전문 강사를 초빙하여 작업을 함께 진행할 것이다. 재료비, 공간 사용료, 강사비 등의 기본 지출을 고려해서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경제적인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즐겁게 일을 한다면 좋을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 나의 공간에 들려서 출근했다. 그런데 늦을까 봐 서둘렀더니 동료들보다 20분이나 빨리 출근했다. 요즘 부쩍 퇴직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직장이 싫어서가 아니다. 마당에서 꽃들을 보고 잔디를 다듬고 음악을 들으면서 여유롭게 드립 커피 한잔을 하고 싶다. 물론 주택은 이런 여유와 행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벌레와의 전쟁이 도사리고 있으며 공방을 하게 된다면 힘든(?!) 고객과의 만남이 있을 수도 있다.
오랜 직장 생활은 내 성격을 조금 더 모나게 만들었다. 피해의식이 가끔 발동하기도 하고, 참다가 버럭 하기도 한다. 표어를 나의 공간에 써 놓아야 할 지경이다.
웃으면서 말하자. 숨을 한번 들이쉬자.
상냥하게 말하자.
이 세 문장은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마당에서 일을 하다 보면 지나는 분들이 말을 건다. 지난번 포스트에서도 언급했던 것 같다. 어떤 순간에는 정말 대답하기 싫은데 강요당한다. 이제 대문이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다. 대문이 완성되기 전에는 마구 들어오시는 분들도 꽤 있었다. 그분들은 궁금하시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작업에 방해가 되기도 하고, 혼자 조용히 꽃을 보고 싶을 때도 있다.
지나는 분들의 고운 시선은 모두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꽃을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이 선하지 않은 이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 첫 공방 화단에서 꽃 캐가신 도둑분을 제외하고)
이제 그만 물어보시게끔 간판 하나 내걸어야 할 때가 되었다. 물론 당장 무엇을 하는 것은 아니다. '뭐 하는 곳이에요? '에 대한 답변을 말 대신 글로 쓰는 것이 간판이니 신중해야 할 것이다.
담장에 칠을 하고 싶었지만 블록이라 울퉁불퉁해서 간판을 인터넷으로 의뢰했다.
최소한 반듯하게 하고 싶다. 이제 이걸 걸면 또 지나는 분들은 언제부터 하는지 질문할 것이다. 간판 옆에 '현재는 개인 작업 중'입니다.라고 팻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업체의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랐다. 그분들은 참으로 인내심이 있으며 친절하시다. 업체명은 '아트시스'다. 작은 메탈 간판 하나 하는데도 어렵다. 참 뭐든 쉬운 것이 없다. 내가 까다로운 편이 분명하다.
그렇게 요청을 해 놓고는 마음에 쏙 드는 편은 아니라서 내가 그림을 그렸다. 문제는 벽에 그리면 페인트가 벗겨질 염려가 있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때 다시 그리거나 소형 간판 하나 나무에 그림 그려야지'하는 생각으로 과감히 벽에 그렸다.
역시 나는 스스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이런 걸 사서 고생한다고 해야 하나 싶다. 요즘 퇴근하면 이런 식으로 공사 후 해결할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중이다.
저녁 늦게 작업을 해서 새벽에 일어나 가 보았다.
그런데 초록 부분(주소 부분)의 색을 조금 더 성의 있게 덧 입혀야 할 것 같다.
오늘 퇴근 후 마당을 보니 꽃들이 지쳐있다. 아침에 아주 조금 비가 온 흔적이 있어 물을 주지 않았다. 벌써 여름날을 방불케 한다. 32 도라니.
오늘은 페인트 색 보정이고 뭣이고, 화단과 잔디에 물을 줬다. 거의 1시간 반 정도 소요되었다. 물을 주면서 꽃과 나무들을 꼼꼼히 살핀다. 그사이 벌레가 있는지 살피고 화단의 풀을 뽑는다. 잡풀은 신기하게 뽑아도 뽑아도 많다.
글쎄 보라색 장미가 정말 피었다. 초봄에 샀던 장미로 한그루가 6만 원이었다.(어마 어마한 가격!)
보고 또 보고 어찌나 예쁜지 꽃 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정말 피었어? 예쁘다 예뻐!
역시 꽃과 나무는 3-4 월에 심는 것이 좋다. 내가 심은 장미 중 가장 아름다운 색이다. 이리 말하니 다른 장미들에게 미안하다. 조용히 보라 장미에게 속삭인다.
너 정말 예쁘다.
밤이 되니 모기들이 대신 신이 났다. 얼른 정리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후기글
<공간 모닝>의 이름을 <루씨의 아침>으로 할까 고민이다. 매일 선택과 결정 사이에서 갈팡질팡이다. 역시 금색 간판은 그리 어울리지 않는 듯하여 떼어 낼까 고민이다. 이름을 짓는 것은 참으로 힘들지만 방향이 정해지는 점이 있다. <루씨의 아침>을 연재하면서 공방의 이름과 그에 맞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2021. 7월 어느 날)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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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고, 입는 것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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