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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조금 헤매면 어때

방황했던 나, 그리고 우리

by 루씨

나는 한마디로 길치다. 방향 감각이 없다. 그래서 늘 헤맨다. 우리 친정 가족이 다 그런 편이다. 언젠가 친정 식구들끼리만 여행을 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모두 길을 잘 못 찾던데 걱정이네." 그 당시에는 네비게이션이 없었고, 길 잘 찾는 큰 사위인 남편은 근무 중이었다.


전주에서 통영을 가기로 했었는데 정말 삼천포로 빠져서 헤맸다. 그때 삼천포라는 지명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

이 말을 들어보기는 했는데 '정말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질 줄이야!'원래 이 말은 탄탄대로로 모든 일이 잘 풀리다가 엉뚱한 일이 발생할 때 또는 이야기 도중에 곁길로 흐름이 갑자기 이상하게 바뀔 때 쓰는 말이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경로를 알아본다.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골목길이 여러 갈래다. 대부분의 경우, 빨리 가는 길을 선택한다. '돌아가도 목적지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텐데 그런 마음먹기 자체가 어려웠다.



한참 시간이 부족한 시절에는 그런 나의 방향감각 없음에 한탄을 했다. 시간이 곧 금이란 말이 적용되는 시절이었다. 효율성, 경제성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 결정을 한 후에는 직진하여 최종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렇게 한 길로만 나 있다면 잘 찾을 텐데......


그런데 점점 뭐든 직진하는 것에 매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이들에 대한 부러움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직진으로 가면 가깝지만 식상한 점이 있다. 돌아가게 되면 색다른 경험을 한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또한 그 경험이 반드시 기분 좋은 일만 일어나란 법은 없다. 그때 다시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진다.


선배 언니가 공방에 왔다. 언니도 나처럼 방향감각이 정말 없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 네비게이션은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한다.


목적지에 다 달았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내가 찾는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 일대를 다시 돌고 돌아 좁은 골목에 차가 끼게 된다. 자괴감에 빠진다. 언니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결국 내가 길에 나가서 살펴보고 서 있는데 정작 언니가 어느 골목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몇 차례 통화를 한 후, 드디어 언니의 모습이 보이니 안심이다.


나보다 심한 편인 선배 언니의 방향 감각 없음에 피식 웃었다. 나의 공간이 큰 길가였다면 바로 찾았겠다는 생각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공방 <루씨의 아침>은 큰길 주차장 바로 옆이라서 모두들 단박에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 같은 길치들도 조금의 시간이 걸릴 뿐 목적지에 도착하기는 한다. 게다가 우리에겐 점점 여유라는 것이 생기는 중이다. 그러니 이제 자책은 멈추기로 한다.


혼자 걷거나 시간이 있을 때 이런 헤맴은 의외로 재밌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놀라기도 한다.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말처럼 헤매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거의 20년 전에 만든 나의 캐릭터 인형/프랑스 자수 손수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 방황하지 않는 청춘은 후일 심한 마음 앓이를 한다. 나의 진로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고 방황할 때, 미래에 대한 계획도 생긴다.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고 본다. 그래도 자기가 고민하고 선택한 진로에 대해서는 덜 후회를 하게 된다. 그래서 대학 입학 원서는 본인의 결정을 가장 존중한다. (일전에도 이와 관련된 포스트를 올린 적이 있다.)


청소년기에 전혀 방황하지 않고 모범생이었던 나는 대학에 가서 부모님의 말씀을 지독히 듣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래도 구순을 바라보시는 엄마의 기억은 많이 흐려지셔서 나는 착하디 착하며, 똑똑하고 무엇이든 잘하는 딸로 자랐다고 하신다.


인생은 짧고, 우리 삶은 곧 방황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지인이 '인생'에 대해 한 말이 생각난다. 어떤 이는 구불구불한 인생을 살고 어떤 이는 일직선 대로로 목적지에 도달했단다. 그들의 인생을 쫙 펼치면 구불한 인생을 산 사람이 훨씬 긴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지금 길을 잃고 헤매는 중이라면 심호흡을 하고, 자신을 쓰다듬어 주면 좋겠다.


괜찮아, 조금 헤매면 어때.


하늘의 별이 있음을 알지만 그 숫자만 세던 어린 왕자가 만난 사업가와 같은 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꿈을 꾸는 이들을 비웃었다. 나는 지금도 방황한다. 얼른 생산적으로 일을 하고 ‘나의 꿈’을 이룰 여유를 만들거나, 아무리 바빠도 하늘의 반짝이는 아름다운 별을 보려고 노력한다. 나의 꿈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평생 다닌 직장을 그만둔 후의 삶을 설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방황 끝에 얻은 나의 공간 <루씨의 아침>에서 이것도 심었다가 저것도 심어 본다. 이것도 만들었다가 저것도 만들어 본다.


그리고 조금 헤매면서 길가에 핀 꽃에게 인사도 하고, 아무 데나 담배꽁초를 버린 이에게 화도 내고 이것저것 돌아본다. '조금 헤매면 어때'라고 나에게 속삭이면서......

강화 소창 손수건, 프랑스 자수.
토끼와 바구니. 손뜨개 초 미니 바구니
루씨가 키운 방울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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