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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

가을날 단상

by 루씨

공간에는 재봉틀이 두 대다. 하나는 공업용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용이다. 현대화된 공업용 재봉틀은 사용이 간편하다. 공업용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시작과 끝의 되돌아 박기와 실 절단이 아주 용이하다.


어린 시절, 우리 옷에 구멍이 나거나 뜯어지면 엄마가 손바느질을 해 주셨다. 하지만 크게 고쳐야 하는 경우 아빠가 발로 구르는 재봉틀을 이용해서 고쳐주셨다.


엄마가 재봉틀에 앉아계신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발로 페달을 구르는 수동형은 자동차로 말하자면 수동으로 기어를 변속하는 것과 비슷하다. 숙달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시절 전공으로 옷 만들기 과정을 해야 했을 때, 전기로 페달을 밟는 형식이라 다소 편리했다.


우리 집안 맏이인 오빠가 IMF에 에어컨 가게를 크게 열었다가 힘겹게 버틴 후 문을 닫았다. 손실은 어마어마했다. 그때 오빠가 빚을 다 못 갚을까 봐서 온 식구들이 걱정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부모님께서 조금 도움을 주셨던 것으로 안다. 아빠는 오빠의 가게 홍보용으로 만들었던 대형 현수막(플래카드) 천을 모아 두셨다.


모 대기업의 로고가 아주 크게 눈에 띄는 바지를 재봉틀로 박아 만드신 후, "이거 아주 튼튼하고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빠가 그 바지를 입으시고 마당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많은 돈이 날아가고 남은 광고 천이었기 때문이다.



국화와 감


가을이면 울적해지는 나의 마음을 달래듯이 아빠는 풍성한 감 박스와 만개한 국화 화분을 매년 들고 오셨다.


현재 우리 친정집 뒷 곁에는 감나무가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의 큰 감나무가 아니다. 아빠가 새로 심으셨던 나무들이다. 감이 열리면 아빠는 다섯 자식들에게 고루 분배하셨다. 친정집은 이제 막둥이 남동생의 집이 되었고, 착한 동생이 가을이면 대봉시를 따서 나눠준다.


다양한 국화는 화분에서 꽃을 피운 후, 정원에 심으면 해마다 예쁘게 자란다. 국화의 생명력은 잡초만큼이나 질기다.


지난주 대아리 수목원에서 얻은 공간 모닝의 감


국화 화분을 아파트 베란다에 두고 보면
예쁘잖아.


가을을 알리는 아빠의 언어가 귓가에 맴돈다.



재봉틀질


나는 종종 후회를 한다. 뭘 해 주겠다고 선뜻 말해버린 후, 동동거린다. 이웃 카페를 위해 작은 가림막 천을 바느질하는 중이다. 가림막 좀 해주라는 말을 듣고 선뜻 대답한 이유는 사각천의 가장자리만 박아 주면 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요구 사항은 좀 더 복잡하다.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되었다. 돈을 지불할 의사도 받을 생각도 없었다. '선물'로 생각하고 작업한다. 문제는 가림막 천 조차 내가 마련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광목천을 선택해서 먼저 물에 빨아 말린 후 다림질했다.


오늘 읽은 림태주 작가님의 책에 나오듯이 상대를 생각하는 정도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카페의 쥔장님과 나는 이리 시간을 들여서 할 정도의 돈독한 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이번 경우를 제외하고 내가 수공예품을 선물할 때는 애정이 듬뿍 있을 때다. 아직 우리나라는 바느질에 대한 경제적 가치 환산 비가 작다.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형편없다. 그래서 원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자신이 할 줄 알아도 선뜻 지갑을 열어 타인의 수공예품을 구매한다.


바느질을 내가 직접 하는 경우보다 전문가에게 맡길 때가 많다. 특히 수선의 경우는 놀랄 만큼 가격이 저렴하다. 나의 외국인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부분이었다. 기계가 다 알아서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단추 하나 달 줄 모르는 학생들도 있다. 수업시간에 손 바느질을 가르치면 짜증을 내기도 한다.


이런 걸 뭐하러 해야 해요? 어차피 세탁소에 맡기면 다 해주는데요.


그렇게 말하면 가르치는 것에 나 스스로 의문이 들면서 의욕이 상실된다.


재봉틀질은 먼지가 날리기 때문에 날이 좋은 경우에는 외부 나무 데크 위에서 작업한다.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질을 하다가 일손을 놓고 멍하니 정원의 꽃들을 본다. 안덕리 우리 농막 주변에는 아빠가 심어주셨던 목수국과 왕벚꽃 나무가 무시로 아빠를 그리워한다.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나의 공간을 정말 좋아하셨을 것이다. 정원 가꿀 때 옆에서 조언을 넘치게 하셔서 아마 다퉜을 것 같기도 하다. 매일 오셔서 간섭하셔서 그만 좀 오시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바느질을 시작한다. 아빠가 계셨다면 재봉틀질 하는 나의 곁에서 이리 박아라 저리 박아라 훈수를 하시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빠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다. 유난히 가을이면 아빠가 그립다. 아빠 기일에 모이면 동생이 박스에 담아 온 감을 나눠준다. 우리는 감을 나눠 먹으면서 가을에 떠나신 아빠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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