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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Jul 16. 2023

죽음이 당신 앞에 성큼 다가온다면

무엇을 할까요

매사 긍정적이고 자기 앞에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하며 절대 옆길로 새지 않고 신앙심 깊으며 술이나 담배는 일절 하지 않고 채식을 즐기며 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갑자기 자신이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조직검사를 맡기고 그 사실을 나에게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 다 죽을 건데 어쩌겠냐고 말했다.


며칠 후, 정말 암이란 것을 알았다. 누구도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없다. 울먹이며 말하는 친구를 보며 나도 눈물이 절로 났다. 며칠 잠을 못 잤다.


내가 만약 죽음에 대한 선고를 받는다면



나는 가장 먼저 모든 것들을 정리할 것 같다. 우선 잡다하게 널브러진 것들을 버릴 것 같다. 나의 가장 취약한 점은 정리를 못 하는 것이다. 열심히 청소하면 며칠 만에 다시 원상태가 된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정리는 늘 나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이를 답답하게 여기는 이들은 지금 당장 정리를 하는 것은 어떤지 물을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쉬운 일이 다른 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나에겐 늘 새로운 내일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잡다한 모든 것들을 정리한 후에는 무엇을 할까.


소중한 딸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에게 그런 시간이 허락한다면 좋을 것 같다. 그게 전부다.


90을 앞둔 두 노모



엄마의 생신과 시아버님의 기일은 단 이틀 차이다. 가족모임은 직장 다니는 이들을 고려해서 주말에 주로 하게 된다.


요양원 등급 판정을 받으신 나의 엄마, 건강하신 나의 시어머님을 모두 뵙고 왔다. 두 분은 모두 89세시다.


엄마는 요양원 판정을 받으셨지만 정신이 맑으신 날이 많으시다. 여러 요인을 검토 후 다시 아파트로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신다. 심리적으로 늘 남편 혹은 자식이 주변에 있어야 안심인 분인데 아빠가 돌아가신 후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셨다.


시어머님께서는 정원을 가꾸시다가 어느 날 너무 힘들어하셨고 스스로 알아보셔서 실버타운에 입소하셨다.

시어머님께서 입소하신 곳의 창밖 풍경(왼쪽)/어머님께서 읽으시는 책(오른쪽)


죽음 그 단어가 낯설지 않음은


정밀 검사를 위해 입원한 친구와 통화했다. 잘 이겨내고 내년에 여행 가자고 말했다. 우린 스페인 여행을 함께 했었다. 셋이 다시 계획을 세웠다. 만나면 내년 여행에 대해 신나서 떠들며 들떠있던 우리에게 친구의 암 선고는 청천벽력이다.


우리는 기다리는 중이다. 친구가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으면서......


이제 나는 죽음이란 단어가 두렵지 않다. 낯설지도 않다. 다가온다면 맞이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최선은 다할 것이다. 나에게 남은 삶을 즐기기 위해서......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듯



전주에 폭우가 며칠 지속되었다. 공방은 꽤 안정적이다. 타프의 줄이 끊어졌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폭우 속에서도 꿋꿋한 나의 공방, 공간 모닝

잠시 해가 나와 물웅덩이를 말리고 잔디에 물기도 다소 사라졌다. 무성한 잔디를 지금 깍지 않으면 내일부터 비가 내린다고 한다.


잔디를 깎고 미친 듯 펼쳐진 나무도 정리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울타리 너머로 튀어나간 장미 가지를 가져와 묶었다. 그런 저런 정원 일을 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땀범벅이 되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 마쳤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삶과 죽음의 교차로



이번 폭우로 사망 및 실종자가 50명을 육박한다니 죽음이란 단어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실감한다. 시간이 주어진 죽음은 그나마 감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제발 죽음으로부터 멀리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지금 살아있는 이들이 즐길 인생에 건배한다.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위해 고개 숙이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인생길에서 소중한 오늘 하루에 감사한다.






이 글을 남길 당시 오송역 지하차도 참사가 일어난 직후였습니다. 최근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대하니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슬픈 현실을 극복할 대안을 찾아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서이초에는 많은 이들이 조문 중(지인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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