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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웃들과 사는 행복

by 실비아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을 떠나, 이곳 캐나다에서 이민자로 산 지 벌써 16년째가 된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온 지는 6년쯤 되었을까.

이사 후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펜스를 사이에 둔 바로 옆집에 한국 분이 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아저씨는 나와 같은 전라도 광주 출신이고 언니는 여수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언제든 땡기면 번개모임이 열린다. 냉장고와 팬츄리에 있는 안주거리를 뒤져서 파자마 차림 그대로 모여 앉아도 허물없는 사이이다. 옆집 언니는 나에게 친정 엄마 같고, 또 큰 언니 같다. 대부분 남자끼리 혹은 여자끼리 따로 골프를 치는 이곳 한인사회에서, 우리는 부부끼리 함께 즐기는 보기 드문 커플이다.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넷이 한차에 끼여 타고, 언니가 아침에 급하게 싼 김밥을 나눠 먹으며 잔디를 밟으러 나간다. 남편과 다퉈 님이 남이 될 위기에 처할 땐, 언니와 오빠야가 나를 달래고 우리 부부의 화해를 위해 애써준다.


우리 앞집에는 "스노우 앤젤"이 산다. 겨울이 6개월인 이곳에서 집 앞 눈 치우기는 중노동이다. 눈 치우는 기계 대신 여전히 삽질로 눈을 치우는 우리에게, 끝없이 쏟아지는 눈은 허리에 통증을 안긴다. 몇 년 전 남편이 한국 방문중일 때, 아침에 일어나니 30센티 넘게 눈이 쏟아진 적이 있었다. 눈치울 생각에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퇴근길, 앞집 앤디가 우리 집 드라이브 웨이와 도로까지 눈을 말끔하게 치워 놓았다. 앤디는 눈을 치울때면 미쉐린 타이어의 흰 붕대를 감은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하얀 원피스 작업복을 입는다. 성능 좋은 스노우 블로우어를 밀며 동네 곳곳을 치우는 앤디의 모습은 그야말로 "스노우 앤젤"이다. 덤으로 개들이 산책하는 골목길까지 눈을 치운다. 요즘 앤디의 반려견 벨라가 많이 아프다. 빨간 유모차에 벨라를 태우고 산책을 하는 앤디 부부에게 가까이 다가가 벨라를 쓰다듬었다. "벨라는 자기 빨간 람보르기니를 정말 좋아해요" 그 말에 나도, 앤디 부부도, 잠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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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옆집에는 변호사인 일레인과 "셧더맨" 남편 대런이 산다. 대런은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었지만 몸이 좋지 않아 이른 은퇴를 하고 16세 노견 스칼렛을 집에서 돌보는 게 그의 주 업무이다. 일레인은 경제 활동에 집안에서 몸 쓰는 일 (잔디 깎기, 눈 치우기, 쓰레기 정리)까지 모두 도맡아 한다. 하지만 어찌나 밝은지, 또 셧더맨 남편에게 얼마나 다정한지 모른다. 우리 집 뒷마당에 뱀이 나타났을 때 대런과 일레인은 가장 먼저 달려와 도와주었다.


대런집 옆집에는 에런과 의사와이프인 앤지가 산다. 이 집의 공주개 프란신은 우리만 보면 짓는다. 돌돌이가 살아있을 때에, 산책 중 돌돌이만 만나면 그렇게 공주 같던 개가 갑자기 사나운 늑대로 변하곤 했다. 그게 미안했던 걸까. 에런과 앤지는 종종 돌돌이 간식과 우리를 위한 쿠키를 만들어왔다. 돌돌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눈물을 흘려준 이웃이 에런과 앤지였다.


이렇게 먼 타국에서 좋은 이웃들과 함께 우리 가족은 오늘도 살아간다.

서로의 온기가, 이 낯선 땅을 조용히 "스윗 홈"으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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